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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24. 2024

멋진 사진에 속다

근무하고 있는 부서가 커뮤니케이션실이다 보니 매일 아침 종이신문을 모두 일견 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발행하는 종이신문은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사무실 입구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당직자들이 매체별로 한 부씩 정리해 놓고 나머지는 그냥 쌓아놓습니다. 출근하는 순서대로 선호하는 신문들을 하나씩 집어갑니다. 남겨진 신문들을 보면 직원들의 매체 선호도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종이신문을 읽던 형태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종이신문 넘기는 직원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직업상 언론사들의 기사를 봐야 하는 부서임에도 그렇습니다. 기사를 읽는 수단이 변해서 그렇습니다. 종이 대신 온라인 화면으로 기사를 읽습니다. 당직자가 매일 아침, 기사를 스크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기사 검색을 하고 관련기사를 편집까지 해서 전 직원에게 이메일로 보내줍니다. 일일이 신문에 우리 회사와 관련된 기사가 뭐가 있는지 뒤져볼 필요가 사라진 겁니다.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직원들이 종이신문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요즘은 '거의'가 아니고 '완전히' 읽지 않습니다.


저는 꼰대세대인지라 종이신문이 더 눈에 익고 손에 잡힙니다. 검색해서 정제된 기사만 보는 게 아니고 신문을 넘기면 다양한 분야의 기사와 칼럼을 통해 여러 지식들을 훑어볼 수 있습니다. 은근히 관심 없는 척하면서 넘기는 정치면조차도 제목 몇 개 지나쳐 넘기면 어제 정치판에서 어떤 일이 화두였는지 눈치챌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는 어떤 팀이 이겼는지도 척 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가장 시선이 머무는 지면은 오피니언면입니다. 전문가들이 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담겨 있습니다. 온라인 기사 검색으로는 거의 접할 수 도 없고 읽기도 힘듭니다. 종이신문을 넘기며 우연히 눈에 걸려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주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나 매일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키워드 하나, 소재 하나 잡아채는 보고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오늘은 종이신문을 읽는 행태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매체 1면에 실린 사진기사 때문에 문득 드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 신문중에 맨 앞에 있는 신문을 손에 잡았는데 1면에 하얀 연기 네 쌍이 꽃처럼 펼쳐지는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오 멋집니다" 초록의 바탕 위에 마치 조팝나무꽃이 펼쳐지듯 은은한 흰색이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리로 와서 컴퓨터를 부팅하면서 신문에 눈길을 줍니다.


오잉! 신문 1면의 꽃 같던 사진이 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초대형 방사포 4발에 모의 핵탄두를 탑재해서 발사했다"는 무시무시한 기사입니다.


잠시 혼란이 옵니다. "아름다움과 공포가 같이 움직이는 이 현상은 뭐지?" "이 사진을 1면에 배치했을 정도라면 기사비중이 높다는 건데?" "무얼 착각하고 무얼 간과하고 있는 거지?"를 되묻게 됩니다.


신문 매체의 편집 기술에 독자가 당하는 형국일 수 도 있습니다. 초대형 방사포와 모의 핵탄두 탑재를 예쁜 사진 한 장으로 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사진 밑 캡션으로 본질을 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혼자의 느낌일 수 있어서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안보 불감증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오는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 중의 하나가 남북이 휴전선을 두고 대치하면서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안해서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천하태평으로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더 좋은 줄은 압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북한 아이들은 깜도 안 되는 수준이라 개무시하는 것일 수 도 있습니다. 


이런 비교우위를 무시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미화시켜 보게 하여 불안을 약화시키게 하는 접점이 궁금할 뿐입니다. 신문 매체의 고도의 심리적 전략이 숨어 있는 사진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멋짐'에만 집중하여 편집한 사진일 뿐이었을까요?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심각하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요?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언론사에서 기사 하나하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엿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물론 개인적 주관이 지배하는 부분이 더 클 수 있으나 그것은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몫일 겁니다. 매체에서는 이런 사진이 실리면 독자들은 어떻게 읽어내고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하고 상의하고 토론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의 긍정적 감시견이 되고 안내견의 역할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그만큼 엄중하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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