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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2. 2024

전주를 사랑하게 된 이유

어제 그제 1박 2일 동안 전라북도 전주에 다녀왔습니다. 5월 1일이 노동절이라 대부분 직장인들이 휴무인지라 화요일 오후 늦게 KTX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전주에 간 이유는 어제부터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 전야행사인 음악회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있거나 영화제에 오는 배우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음악회가 열리기까지 기획하고 수고한 진행팀의 한 분께서 지인 몇 명을 초대했는데 그 틈에 끼어갔습니다.


제 인생에서 전주는 하루를 머물 정도의 위치가 아니었는지, 여행 목적지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멀리 땅끝마을이나 목포, 변산반도를 가느라 지나가는 길에 들어 비빔밥을 먹고 가는 경유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간다는 한옥마을조차 시선의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랬던 전주가 지난 이틀 동안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들어섰습니다. 말이 이틀이지 화요일 밤 7시에 도착하여 음악회 보고 어제 오전, 팔복예술공장에 들러 엔디워홀 작품전을 보고 점심때 서울로 올라왔으니 볼거리와 먹거리에 홀딱 빠진 것은 아닙니다. 이곳 사람들의 힘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음악회에 출연한 공연팀과 성악가들의 퍼포먼스도 훌륭했지만 저는 이 음악회 개최를 주관한 사람들의 끈끈한 힘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들이 그렇게 잘 모일 수 있는지를 눈으로 보고 느낀 자리였습니다. 꼭 전라도 사람들이 아니라 큰 행사를 준비하는 팀에서는 당연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직업상 크고 작은 이벤트나 행사들의 진행에 발을 들여놓거나 방관자로 옆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준비되고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이 어떻게 조율되고 해결되어 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특히 지연이나 학연으로 엮인 행사들을 참석해 보면 그 색깔이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회 같은 큰 행사를 치르기까지 수많은 기획자와 주최, 주관하는 사람들이 엮이고 각자의 역량이 발휘되고 군집되어 집단의 힘이 응집되어야 합니다. 역시 사람이 관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전라도 사람들의 응집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음악회도 그렇습니다. 벌써 25회째나 진행했답니다. 지방정부의 후원도 전혀 받지 않고 순수 민간단체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매년 행사를 했고 전주국제영화제의 전야행사로까지 발전했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바로 행사를 주최하고 주관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기꺼이 행사진행 비용을 매년 선뜻 내놓은 지역 기업가들의 헌신과 자신의 역량을 재능기부하여 음악회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 사람들의 결집입니다. 자기가 사는 지역이자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선한 영향력을 극대화시키고자 자신을 기꺼이 내려놓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 힘의 원천은 음악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음악회는 그저 힘을 모으는 발화점일 뿐입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행사를 진행했던 사람들의 뒤풀이가 '경기전막걸리'집으로 이어졌습니다. 음악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초대한 사람들까지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엄청난 뒤풀이 자리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면입니다. 단순히 막걸리 한잔 오고 가는 시간이 아니라 큰 행사를 잘 치르고 수고한 모든 사람들과 지인들이 함께 어울려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소속감을 심어주고 그 유대를 강화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정도 뒤풀이 정도는 많은 행사에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다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전라도를 폄하하는 지역감정은 그런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르상티망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숙소로 쓰이고 있는 호텔도 전주국제영화제 지정 호텔로 할인을 해서 묵을 수 있게 했습니다. 전주 온 도시가 영화제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러 로비로 내려와 있는데 진행팀으로부터 휴대폰 문자가 옵니다. 지난밤 술을 많이 드신 분들을 위해 아침식사 겸 해장국 식당으로 오라는 권유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비용을 철저히 진행팀에서 부담합니다.


설마 그럴 리가? 이틀 내내 뒤통수를 잡고 있던 물음이었습니다. 슬쩍 저를 초대해 주신 분께 여쭤봅니다. "기부금 얼마 내셨어요?" "한 푼도 안 냈는데요. 저는 홍보기획하고 포스터 만드는 재능기부만 했는데요" "오잉! 그러면 이 많은 비용을 어떻게 누가 다 부담하나요?" "매년 운영팀에서 후원을 받아 해결해 왔답니다"


음악회 열고난 다음에 뒤풀이하고 아침 해장하고 정도는,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과정 속에서 사람들을 끌어 잡아당기는 분위기는 다른 지역의 모임이나 행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마력이 있습니다.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뼛속까지 배어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강원도 출생에 서울에서만 살아온 관조자의 눈에는 참 부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전주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ps  : 2023년 11월에 썼던 글을 같이 공유드립니다.

       "지역감정 뒤집어보기" URL : https://brunch.co.kr/@jollylee/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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