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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7. 2023

'지역감정' 뒤집어보기

대한민국에서 없애야 할 요소 중 하나로 '지역감정'을 이야기한다. 특별히 영남 호남을 싸잡아서 범주화해 버리고 지역감정의 대명사로 부르고 있지만 다른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멍청도가 어떻고 감자바우 강원도가 어떻고 깍쟁이 서울이 어떻다고 한다.


지역감정이라는 단어는 특히 선거철만 되면 귀신처럼 등장한다. 선거의 마지막 전술로, 투표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는 예외 없이 가감 없이 튀어나온다. 편을 가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정치로 인하여 단어의 개념이 달라지고 의미가 왜곡되는 저질의 현장이 아닌가 한다.


정치판 밖에서 '지역감정'이라는 용어를 들여다보자.


지역감정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강한 애향심과 향수, 그리움들이 배어있는 감정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지역감정은 지역민끼리의 유대감을 높인다. 희로애락을 함께 겪어가고 이겨내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고향사랑이라는 용어와 헷갈리고 있는가? 용어의 변형일 뿐. 결국 자기가 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사랑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현상을 안에서 바라보느냐 밖에서 바라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같은 의미를 다른 용어로 사용하면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지역감정은 증오와 편견의 산물이고 고향사랑은 애정과 사랑의 산물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게 벌어진다.


세상에 자기가 태어난 고향뿐만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집단, 조직에 애착심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바로 인연 때문이다. 자기와 연관된 어떤 조건, 어떤 상황이라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발로다. 동네에서 삥이나 뜯는 얼챙이 깡패조직에서도 자기들의 나와바리를 지키기 위해 뭉치는 이유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대한민국이 망해도 절대 없어지지 않을 조직 3개가 있단다. '해병전우회' '고대동문회' '호남향우회'다. 이들 조직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비아냥의 단어로 사용하나, 사실 내심에는 그 조직에 못 들어간 사람들의 부러움이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그만큼 그 조직은 탄탄하게 움직여서 철옹성 같은 조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강원도 출신에 대학도 다르고 군대도 면제받은 인간이라 위 단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요즘은 검찰 조직이 한국 사회를 말아먹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시선을 다시 바꿔보자.

인류사는 권력을 잡기 위한 투쟁의 연속일 뿐이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전쟁의 상흔들이 그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가족, 혈족, 씨족이 확장되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구성원 간의 유대는 생존의 필수 요소다. 공동체 전체가 살아남느냐 없어지느냐의 절박한 결정이다. 그 와중에 지역감정은 필수적으로 구성원들의 힘을 모으는 원천이 된다. 내부자를 결속시키는 끈끈한 정이다. 그래야 살아남기에 발현시킨 본능이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프로배구 등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지역 연고를 빼면 서운하다. 지금은 구단 기업의 소속감이 더 크게 작동하지만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빼고 광주에서 기아 타이거즈를 빼고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빼고 서울에서 두산 베어스를 빼고 감히 프로야구를 말할 수 없다. 간혹 경기결과를 놓고 양쪽 팬들이 거친 몸싸움도 벌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의 스포츠 권력은 그래도 가장 현명하게 감정을 추스르고 응원하는 쪽으로 갈등을 삭히고 있다. 지역감정이 가장 긍정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감정(感情 ; emotion)은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해 느끼어 나타나는 심정이나 기분"을 말한다. 원초적인 느낌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복합적 현상이다. 감정은 느낌을 만드는 단어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환경에 의해 학습되어 전이되기도 한다. 이 감정에 지역이라는 지리적 단위를 붙여 구획 지어 놓고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지역감정'이다.


한국사회는 정치판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내면에는 지역을 뭉치게 하고 긍정의 힘을 끌어내는 원천이다. 전 세계 곳곳마다 지역별 축제가 있다. 지금은 돈벌이로 전락하여 지방마다 무슨 무슨 축제들이 난무하나 사실은 그 지역민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행사 참여를 통해 주변 사람들의 동향을 알게 되고 서로 이웃임을 확인하여 미래의 불확실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그 규모가 커지면 국가적 제전이 되고 세계적으로는 올림픽이 되고 월드컵이 된다. 지역감정이 도시감정이 되고 국가감정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정치가들의 얕은 혓바닥에 놀아난 '지역감정'의 세계를 긍정의 힘으로 바꿔 놓을 필요가 있다. 프로야구장에서 보이는 뜨거운 응원을 보면 '지역감정'은 용광로처럼 녹아들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지역감정'이 하찮은 패거리 규합의 짧은 용어가 아니라 다양성의 범주를 확대하여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아주 밝은 측면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지역감정'을 비틀리고 좁은 창으로 꼬나볼 것이 아니라 세상을 높고 넓게 보는 창문으로 확대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로 발현되어 사회를 더욱 활기 있고 밝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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