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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8. 2023

그대 이름만 떠올려도 기분 좋아집니다

머릿속에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는 단어를 몇 개나 품고 계시나요?


갑자기 생각해내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가만히 침잠하여 하나씩 하나씩 들춰내보시지요. 5개 이상의 단어는 나열할 수 있으신가요? 2-3개도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기분 좋아지는'이라는 형용사를 앞에 붙이는 단어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기분 좋아지는 노래' '기분 좋아지는 영화' '기분 좋아지는 말' '기분 좋아지는 책' '기분 좋아지는 사진' '기분 좋아지는 사람' 등등 말입니다. 


그런데 단어 하나 자체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고유명사 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단어말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단어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은 단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흔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시나요? 좋아지는 사람이 있을 테고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바로 그 단어에 물든 감정의 농도가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의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없으면 만들어야 합니다.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정이 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분(氣分 ; feeling)'은 "좋고 나쁨의 감정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앞에 '좋다'거나 '나쁘다'거나라는 형용사가 붙어야 마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것은 감정입니다. 곧 나의 감정을 좌우하는 데 있어 좋고 밝은 쪽으로 생각하게 하는 발원지의 역할이 바로 '기분 좋아지게 하는 단어'에 있습니다.


바로 단어가 감정이고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은 단어로부터 시작됩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기억'으로 인하여 감정이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운동신경으로 표출되어 말이 되고 언어가 되고 손동작까지 가미되면 글이 됩니다.


떠올리는 단어가 생각을 넘어 행동까지 지배합니다. 그 사람의 품격이 되고 아우라가 됩니다.

다시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 나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단어가 있습니까?"


집에 있는 배우자의 이름이 떠오르거나 아직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나요? 현관 앞에 나와 꼬리를 흔들고 있는 반려견의 모습이 떠오르나요? 상황이 아니고 그 상황 속에 있는 이름을 떠올려도 기분이 좋아져야 진정한 '기분 좋음'입니다.


좋은 감정에 물든 단어는 끊임없이 회상해도 기분 좋아집니다. 이미 '좋다'라는 형용사를 부적처럼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문으로 비춰 들어오는 '아침햇살', 뺨을 스치는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 풀잎에 걸린 영롱한 '이슬', 향긋한 꽃내음 풍기는 노란 '프리지어', '해변 바위에 부딪혀 잔잔히 들려오는 '파도소리', 돌틈 사이를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 아침 알람시간에 맞춰 들려오는 '클래식의 선율' 등등 모두 나의 오감으로 전해지는 외부 환경을 단어로 치환한 것입니다.


치환되는 단어에 좋은 이미지가 붙어 있기에 좋게 보이고 좋게 들리고 좋게 느껴집니다.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내가 노출되어 있었는지, 그 안에서 어떤 좋은 경험을 했었는지가 단어에 좋은 형용사를 덧입히고 그 덧씌워진 이미지로 세상을 봅니다.


좋게 보면 좋게 보이는 것이 세상 모습입니다.


내가 만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좋게 보이나요? 더럽고 치사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으신가요?


내가 주로 떠올리는 단어가 나의 심상을 만들고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고 평생 삶의 길을 결정합니다.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은 결국 나의 오감이 만들어낸 느낌이 쌓여 형성된 감정과 그 감정에 물든 단어로 인하여 겉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 쉬는 호흡에 집중해 봅니다. 길게 숨을 들이쉬어 보면 내가 얼마나 지금 긴장하고 있는지 금방 눈치채게 됩니다. 호흡의 길이를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천천히 가져가 봅니다. 찡그리고 있던 얼굴 근육조차 느껴집니다. 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밑으로 밑으로 내려 보냅니다. 몸이 편해집니다. 그때부터 나의 기분을 좋게 하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얼굴에 긴장 대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 단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도 좋고, 나만 보면 꼬리 치는 반려견도 좋고, 믿고 있는 종교의 신도 좋습니다. 서서히 눈을 뜨면 세상이 밝게 보이고 앞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좋다 좋다 최면을 걸고 살면 좋아 보이게 되고 좋게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착각이라고요? 착각이면 어떻습니다. 나에게 좋게 보이는데 그보다 더 좋은 착각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의 이름만 떠올려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대 계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늦가을 향기 가득한 국화 한다발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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