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밀어내는 비와 바람입니다. 내일모레이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한 주는 여름으로 가는 기온이었습니다. 나뭇가지에 달린 색 바랜 입새조차 떨어져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망설이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막바지 가을의 정취를 남기고 자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산으로 들로 향하게 했습니다.
서울은 오늘도 기온이 아직 20도에 육박하는 19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철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겉옷으로 걸친 카디건을 벗어서 손에 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이런 온화함을 시샘하듯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아침입니다. 햇빛은 비구름 장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어둑어둑한 아침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7시 반을 향해가는 지금 시간에도 창밖은 어둠에 잠겨있고 창은 전등빛의 실내를 그대로 차경하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바깥의 저 비구름이 대지로 다 내려오고 나면 그 공간은 차가운 공기로 채워질 것입니다. 차고 기울고, 넘쳤다 줄어드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입니다.
다행히 집에서 나와 전철역으로 오는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손에 들었던 우산을 접어 백팩 모서리에 끼워 넣고 손을 자유롭게 합니다. 밤새 많은 비가 내렸는지 보도에는 온통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비가 안 왔다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냈을 텐데 비에 젖은 낙엽은 꼼짝할 생각도 안 하고 어떤 소리도 안 내고 있습니다. 보도블록이 보이지 않고 낙엽 위를 걷는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을 싣고 옵니다. 낙엽밑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닥쳐오는 막연한 불안감입니다.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게 움직입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따라 상황이 보입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전철역에 도착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플랫폼에 도착하는 전철을 타는 관계로 나와 똑같이 시간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발치로 보입니다. 다들 발길은 개찰구를 향해 움직입니다. 목표를 향한 발걸음입니다. 전철이 플랫폼에 들어오는 시간을 맞춰 제시간에 타기 위한 총총걸음입니다.
그런데 저 멀리 개찰구 주변을 서성이는 남자 한 명이 눈에 띕니다. 한 손에 우산을 들었습니다. 얼굴에 흰색 마스크를 쓰고 있으나 행색은 남루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모습에서 직감했습니다. 누군가 찾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앞으로 두 명의 학생이 걸어가고 있는데 무시하고 저에게 다가옵니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분명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눈치였음을 알아챘습니다. 그 남자가 저에게 다가오면서 "베트남 사람입니다. 안산으로 일하러 가는데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름 또박또박한 한국말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베트남 사람인지는 선 듯 알아볼 수가 없으나 눈 주위의 관상과 어눌한 한국말투로 보건대 그쪽 사람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어느 쪽 플랫폼에서 전철을 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일을 할 건데 지금은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돈을 달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행색을 보건대 전문적으로 구걸하는 외국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금 당장 작은 도움이 필요한 상태 같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구걸하는 사람이 멀지 감치 감지되면 일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외면하게 됩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간절함을 외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멀리서 나를 타깃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 본능적으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음에도 옆으로 다가와 도움을 청하고 있는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어요?"라고 물어봅니다. "4년이 지났고 5년째 되고 있다"라고 합니다. 한국말을 제대로 배웠습니다. "일 열심히 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산을 가야 합니다"
일할 곳이 안산인데 왜 이곳 서울의 동쪽 끝인 망우역에 새벽시간에 나와있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뿌리치고 가기에는 마음 한편이 개운치 않아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 꺼내 건네줍니다. 만원 한 장이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일할 곳이 있는 안산까지는 갈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걸과 같은 행위를 만나는 일이 요즘에는 거의 없습니다. 아침에 일찍 전철로 출근하고 저녁 퇴근시간에만 똑딱이처럼 왔다 갔다 하니, 구걸하는 모습을 거의 못 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서울시내에서도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진 듯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좋아진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가끔 출근시간 전철에서 사탕과 껌을 들고 지나가며 팔아달라고 하던 사람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본 적이 없습니다. 점심시간에 가끔 찾아가는 광화문 교보문고 지하 통로에는 종이박스로 얼기설기 엮어만든 바람막이를 놓은 노숙자들은 보지만 그들은 직접 구걸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구걸하는 행위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간절함이 있어야 감히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벌릴 수 있고 도와달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상습적이고 전문적으로 갈취를 일삼는 직업꾼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비도 제법 내리는데 먼 타국에서 맞이한 하루가 그에게 힘겹게 다가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을 벌겠다는 일념이나 큰 포부를 가지고 한국에 왔겠지만 외국살이가 그렇게 만만치 않음도 체감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가보니 사람 살 곳이 못되더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할 정도의 용기의 소유자라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인연이 돌고 돌아 사람에 대한 정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만 원어치 더 움직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기꺼이 지불한 만 원은 열 배 만 배가 되어 되돌아올 것이 틀림없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