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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May 03. 2024

그게 뭔지 몰랐다

공부를 할 때 판판이 깨지고 좌절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개념과 원리를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답만을 고르게 만드는 교육방식이 양성해 낸 결과다.


수포자 양성 과정을 보자. 초등학교 때 구구단을 어떻게 배웠는가? 우리는 무조건 달달달 기계적으로 외웠다. 못 외우면 머리를 쥐어 박히며 웅변하듯 외웠다.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팔, 이오십 ---" 그러다 7단쯤 넘어가면 "~~ 칠오~~ 음음 삼십오, 칠육에 ~~ 음음음 뭐지 ㅠㅠ"가 된다. 이것도 못 외운다고 방과 후 나머지 공부하고 결국은 수포자가 됐다.


지금 손들고 구구단 중 8단을 외워보라. 줄줄이 외우는 사람?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절반정도는 헷갈릴 거다. 휴대폰에 계산기 다 있는데 굳이 안 외워도 되기에 잊힌 곱셈이 되었다. 그렇다고 구구단 못 외운다고 사는데 전혀 지장도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구구단 헷갈리는 내 머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 구구단의 원리를 안 가르쳐 주고 외우게 만든 한국 교육 시스템을 탓해야 한다. 4 곱하기 8 하면 기계적으로 32가 튀어나올게 아니고 4 곱하기 8이 뜻하는 의미와 뜻을 먼저 알게 가르쳐야 한다. 외우면 외운 것 하나밖에 해결 못한다. 응용이 안되고 숫자 단위가 커지면 무용지물이 된다. 구구단을 외워 버리면 생각하는 힘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렇게 수학을 교육시켜 왔다.

단순한 수학뿐만이 아니다. 모든 교과과정이 그랬다. 단어와 용어에 대한 기본 개념과 원리를 먼저 가르치지 않았기에 뭐가 뭔지 모르고 말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엄밀한 정의와 개념이 필요한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기율표에 나오는 92가지 원소들이 원자인지 분자인지, 이온인지, 동위원소인지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 원자가 뭐고 분자가 뭔지, 단어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다. 구분도 안된다. 기본 단어조차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데 생명과학이 어떻고 생물학이 어떻고 광물이 어떻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게 뭔지 몰랐다"는 깨달음과 자기반성이 없이는 공부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근본과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원자(原子 ; atom)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로 화학반응을 통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위를 말하고 분자(分子 ; molecule)는 한 개 또는 두 개 이상의 원자가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로 물질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는 가장 작은 단위 입자로 정의된다. 대기 중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를 비롯하여 산소 또한 원자가 아닌 분자 형태로 존재한다. 분자 형태의 물질은 생명체가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원자 형태로 이온화시켜야 생명의 원소로 사용할 수 있다. 원자 상태의 질소와 산소가 대기 중에 없기에 이를 생명이 사용할 수 있는 원자상태로 쪼갤 수 있는 박테리아와 미토콘드리아를 끌어들여 공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무엇을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핵심지식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근원을 추적하고 근본과 본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팩트가 없고 의견만 있으면 과학이 아니다. 인문이 다양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의견 중 하나일 뿐이다. 질문만 던지고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테지만 거기까지다. 코로 들어와 허파를 거쳐 헤모글로빈과 결합한 산소분자가 어떻게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TCA 사이클을 돌며 원자로 분해되어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그때서야 호흡이 뭔지 깨닫게 된다. 그전까지는 숨을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한 숨 한 숨에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음을 자지러지게 깨달아야 한다. 그때서야 긴 한숨을 내뱉을 수 있다. 사랑과 철학과 웃음은 그다음에 펼쳐지는 거품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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