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나이 60이 보내는 시그널
10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다. 10월 한 달은 연차휴가를 냈다. 누구에게나 올 시한부 직장생활이다. 나에겐 이제 왔을 뿐이다. 場은 옮겨가는 것이지만 한 場을 끝낸다는 것에는 어떤 매듭이 필요하다. 출근을 안 하는 시간까지의 심정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
이번달말로 정년퇴직이라는 소리는 이번달에 생일이 있다는 소리다. 기업마다 퇴직일을 적용하는 조건들이 달라, 생일이 있는 달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기도 하고 아예 연말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생일달까지가 근무일이다. 나는 10월 7일생이다. 법적으로 나흘이 지났다. 집에서는 아직 음력 생일을 챙겨준다. 어찌 되었든 올해 생일이 되었다는 것은 환갑이 되었다는 거다. 숫자로 세면 60이다. 나이의 숫자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의 의미가 아직 와닿지 않는다. 정년퇴직이라는 현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 생일이 빨라 상반기에 지나간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는 숫자 60이 주는 현실은 거의 충격 수준이다. 나는 겨우 생일이 며칠 정도 지나지 않아 현실감이 떨어질 뿐인 듯하다. 이미 올해 생일이 지나간 동갑내기 친구들이 전하는 나이 60의 현실은 이렇단다.
일단 병원에 정기진료를 가면 진료카드에 찍히는 숫자가 60으로 나오는 순간 노인 취급을 받더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 심리와 불안적 요소가 강해서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이가 60이 찍히면 간호사들의 눈빛이 측은함으로 변해서 꽂히더란다. 물론 개인적 자격지심일터다. 그런데 나이 60이 넘으면 병원에서 혈액검사도 무료로 해준단다. 나이 듦을 배려하는 여러 사회적 조건과 혜택들이, 지금 당사자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로 다가온단다. "아직 그 정도로 약하지 않은데, 아직 기운 팔팔해 돌도 씹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118번 버스에서 뛰어내리며 낙법으로 한 바퀴 굴러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은데---" 생물학적으로 이미 폐기 처분되는 대상으로 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란다. 법적으로 60을 찍는 순간, 사회에서는 한물간 사람, 뒷방 늙은이로 취급되고 있음과 마주해야 한단다. 정년퇴직하고 몇 달 편히 쉬며 놀다가 노는 것도 지쳐서 여기저기 일자리 알아보려 기웃거려 보면 확연히 체험하게 된단다. 일단 이력서에 있는 나이 60의 숫자를 보는 순간, 실무자들의 태도는 정중한 양해로 바뀜을 눈치채야 한단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필요로 하는 경력과 연륜과 조건들에 맞지 않아서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으나 그 온도차이가 상당함에 당혹스럽단다. "자기에게 일을 맡기면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급여 많이 안 받아도 출근할 수 만 있으면 야근을 불사하면서라도 일할 수도 있을 텐데, 젊은 직원들 비위 맞춰가며 분위기 어색하지 않게 잘할 수 있을 텐데 ---" 숫자 나이 60은 주홍글씨의 낙인처럼 '쓸모없음'의 대용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더란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은행에 가보니 실감하게 되더란다. 나이 60이 넘고 퇴직을 하는 순간, 아파트 담보대출조차 안 받아주더란다. "아니 현물인 아파트를 담보로 하는데도 돈을 안 빌려줘?"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현실이란다. 대출 이자를 조달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더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겪었던 숫자 60의 현실을 엄혹한 충격으로 받아들였기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어깨가 움추러들게 하고 자신감이 줄어들고 자존감마다 떨어지게 만든다.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할 열정을 멈칫거리게 만든다. "에이~ 지금 해봐야 안될 텐데 뭐. 에이~ 이 나이에 굳이 해야겠어, 그냥 안 할래, 안 갈래" 시도가 멈추고 도전이 사라진다.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고 세월이고 나이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작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으면 근력이 떨어지고 더불어 면역력도 떨어지는 이치와 같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를 찾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숫자 60의 굴레와 경계를 그어놓고 퇴물로 취급하는 분위기는 스스로 넘어야 하는 선일뿐이다.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은 나의 체력과 나의 정신력과 평생 종사해 온 업력의 범위로써만 가능하다. 갈 수 있지만 안 가는 것과 갈 수 없어서 못 가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기업들의 정년 연장과 국민연금 수급조절의 틀이 같이 움직이는 변혁기에 있다. 어떻게든 숫자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 틀림없다. 법적, 사회적으로 그어놓은 선들을 상향조절하여 물리적, 생리적 숫자를 늘리는 것이다. 그만큼 신체 나이도 변화되어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바뀌는 것이 맞다. 나이 60 된 환갑들을 붙잡고 물어봐라 "당신 꼰대인가요?" "뒷방 늙은이인가요?" 백이면 백 부인할 것이다. 자기는 "법적 숫자 나이만 60을 가리키고 있을 뿐, 마음은 이팔청춘이요, 몸은 40대 중년이다"라고 할 것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경우다. 법과 사회는 숫자와 몸과 마음이 같은 나이가 될 것을 강요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고착화된 60의 숫자에 맞춰진 정년퇴직과 은퇴라는 단어로 말이다.
숫자는 숫자에 불과함을 깨는 것은 자신의 신독에 달렸다. 하지만 나이에 맞게 자신을 재세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 신체적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체력을 과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몸과 마음을 자신의 숫자나이보다 대여섯 살 정도 젊게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 그것이 숫자 60을 대하는 현명한 대처법이 아닌가 한다. 나이 60에 30대 체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욕심은 몸에 대한 만행일 뿐이다. 정신은 20대로 유지하겠다고? 그것은 정신병일 가능성이 크다. 나이 들면 깜박깜박 잊히는 것이 정상이다.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야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