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되었다 - 정년퇴직 백서 13
10월 말이면 정년퇴직이다. 10월 한 달은 연차휴가를 냈다. 누구에게나 올 시한부 직장생활이다. 나에겐 이제 왔을 뿐이다. 場은 옮겨가는 것이지만 한 場을 끝낸다는 것에는 어떤 매듭이 필요하다. 출근을 안 하는 시간까지의 심정 그리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
10월.
10월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했다. 생일이 있는 달이기에 그렇다. 생일을 챙긴다는 것은 존재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뜻일 게다. 이 세상에 우연히 등장한 행운을 이어가기 위한 확인작업일터다.
그런데 올해 10월에는 더 많은 사건과 이정표들이 달라붙어 있다. 붙여야 할 의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예전과 다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올해 10월은 전환의 달이다. 시간적으로는 나이 60세의 환갑의 선이고, 사회적 공간에서는 현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일단 물러나는 일이다. 두 가지 모두, 삶을 사는 데 있어 커다란 개인적 전환임에는 틀림없다.
제일선은 생활의 루틴을 바꾸는 일이다. 35년을 한결같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던 루틴을 바꾸는 일이다. 휴가를 내고 한 달 가까이 출근을 안 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5시 반 전후로 눈이 떠진다. 주말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는 현상과 유사한 듯하다. 그나마 휴일에는 눈을 떴다가 "아참! 오늘이 토요일이지. 안 일어나고 더 누워있어도 되겠군"이라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잠을 다시 자게 하는 여유로 등장하지만, 지금은 아예 출근할 필요가 없는 시간임에도 휴일 아침의 여유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지배한다. 지금은 그 여유가 약간의 초조로 바뀐 듯하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동하는 모양이다.
아니 눈이 떠졌는데 그냥 누워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습관처럼 배어있어서 그런 듯하다. 새로운 루틴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아침에 눈이 떠지면 무조건 일어나 침구류를 정리하고 양치하고 샤워하고 출근할 때의 시간과 비슷하게 움직임을 시작한다. 회사로 가는 대신, 시카고로 어학연수를 가서 비어있는 막내 녀석의 방을 임시 서재로 쓰고 있다. 컴퓨터를 부팅해 봐야 체크하고 팔로 업해야 할 이메일도 없지만 자꾸 회사 이메일로 손이 간다. 이것도 이번달 말이 지나면 아예 접속이 안되어 보지 못할 테지만 눈길을 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이메일을 열어보지는 않는다. 제목만 열람하고 넘어가고 있다. 회사 이메일 말고 개인적 메일함과 페이스북, 카카오톡도 넘겨다본다. 어떤 일들이 어떤 관계 속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목표가 뚜렷하게 없다. 일단 놀고 본다는 심사다. 그렇다고 심적으로 불안하지는 않다. 35년을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몇 달 논다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보상이자 위로일터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단순한 걱정일 뿐이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 평생직장생활이 '홍보일'이다 보니 새롭게 만나는 사건이나 현상에 대처하는 일이 대수롭게 생각되지 않는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일들이 생기면 대응을 해야 하는 일이 '홍보'라는 부서에서 했던 일이었기에 그렇다. 이제 나에게는 성과를 내야 하는 의무도 없고 반드시 지켜내야 하고 막아야 하는 대상도 없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세상에 이처럼 편한 일이 있을까?
이렇게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할 수 있도록 되는 시간을 정년퇴직이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시간이 있을까? 화양연화의 시간이다.
시간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엄청난 자유임을 한 달을 지나 보며 깨닫는다. 내 마음대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유 말이다. 단적으로는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소주라도 한잔 마시려면, 예전에는 항상 시간의 굴레에 묶여있었다. 내일이라는 시간 때문이다. 내일 아침 반드시 출근을 해야 하기에 소주잔을 들었다가는 내려놔야 했다. 밤 10시 넘으면 집으로 가서 자야 한다는 심사로 자꾸 시계를 쳐다봐야 했다. 35년을 한결같이 내 삶의 기둥은 직장 우선, 생업 우선이었기에 그렇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내가 밤 10시까지 들어가든,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든, 나를 구속할 그 어떤 조건도 없다. 와이프가 현관문의 걸쇠를 걸어놓지 않는다는 전제만 있으면 된다. 내일 아침 출근 때문에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조건은 일상의 루틴을 바꿀 수 있는 절대적인 변수다. 늦잠을 잘 수 도 있고 한나절 내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릴 수 도 있다. 그도 지치면 네플릭스 아이콘을 수없이 내려볼 수 도 있고 오랜만에 책을 한 권 집어 들 수 도 있다.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경이가 밀려온다. 남들은 생업의 현장에서 간 빼놓고 쓸개 빼놓고 일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한 두세 달 지내봐라. 노는 게 지겨울 거다. 노는 방법을 습득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라"
이 길을 지나간 많은 선배들이 주신 조언이다. 그래도 나는 그 지겨움이 올 때까지 놀아보고 싶다. 아직은 한 달도 안 돼서 그런지 지겹지 않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의 하루를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를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초등학생이 방학 때 원 다이아그램으로 하루 생활시간표를 그리듯이, 대강의 얼개로 시간 배분을 한다. 놀아도 아무 생각 없이 놀아서는 안된다는 관념 때문이다. 대강의 시간 얼개조차 마음대로 변형이 가능하다는 가변성이 있지만 돌발적 상황이나 계획이 없으면 지켜야 할 하루의 루틴은 반드시 만들어놔야 한다. 시간의 여유를 신독(愼獨 ; 홀로 있을 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삼가다) 하지 않으면 게을러지게 되어 있다. 시간이 많은 것과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것과의 관계를 철저히 경계하고 깨부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