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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2. 2024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비밀이며, 오늘은 선물이다

오르페우스의 교훈

 

 휴일 아침,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3)를 다시 보았다. 십 년 전쯤 동네 영화관에서 보았고 영상미가 매우 아름다운 영화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파이의 두 가지 인생이야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보니 또, 이 영화가 왜 85회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엔터업계에서 일하는 후배가 초대한 베르디의 뮤지컬 ‘아이다‘(Aida)를 본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 이미 두 번이나 보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이 띄엄띄엄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보았던 아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가 새롭게 이해될 정도로 몰입했다. 그리고 아이다가 이렇게 매력적이었나 새삼스러웠고, 한편으로는 그런 내 자신에 대해 놀랐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그저 먹고사는 문제 외엔 깊이 생각하기 싫었고, 또한 치열하게 생활하는 일상의 삶 속에서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수록 회사나 인간관계 속에서 많은 음악회, 오페라, 뮤지컬등 문화적 공연의 관람기회는 정비례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수없이 많은 문화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그 순간까지 머릿속은 온통 회사 일로 꽉 차있을 때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인생의 봄날이다.


가리왕산, 정선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은 온다. 물론, 어떠한 경우든 ‘반드시 좋은 것도, 반드시 나쁜 것도 없다’는 말을 믿으며 산다. 그래야만 좋은 일에 교만하지 않고, 나쁜 일에 기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안 좋은 일은 안 좋은 일대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런 경험들이 내 자신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긍정적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막상 당하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고 삶의 내공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 자신의 콘텐츠는 그만큼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콘텐츠가 빈약한 대부분의 케이블 TV 채널처럼 과거에 이미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재방송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반면 과거에 집착하기보단 지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우리 자신의 콘텐츠는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나 모임도 마찬가지다. 그 인연의 과거를 소환하고 재생하기보단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채워나갈 필요가 있다.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그릇을 깰 이유가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콘텐츠가 빈약한 사람과의 만남이 재미가 없는 이유는  ’화제의 빈곤‘이다. 쌀로 밥 짓는 이야기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좋다.


병방치 스카이워크


 또한, 불편한 경우는 옷 입는 것이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되지만, 마인드가 촌스러운 것은 용서가 안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주관적 경험에만 얽매여 생각이 닫혀있는 사람, 팩트체크가 없는 주의주장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호불호를 떠나 일단 재미가 없다. 인연은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인연에 너무 얽매인다든가, 지나간 얘기만 하기엔 인생은 너무나 짧다.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노자)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삶이 과거에 매몰되거나 인생 너무 멀리 내다봐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중 오르페우스가 숲의 정령인 아내 에우리디케와 행복하게 살다 그녀가 뱀에 물려 죽자 저승의 신, 하데스를 찾아간다.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를 감동시킨 후 에우리디케를 이승으로 데려올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동강할미꽃


 하지만, 지상의 빛을 볼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경고를 잊고 그녀가 무사히 따라오고 있는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결국 아내를 데려오지 못하고 슬픔에 잠겨 지내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우리는 오르페우스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비밀이며, 오늘은 선물(present)이니까.



*글 제목 - 더글러스 태프트(Douglas Taft) 전 코카콜라 회장의 신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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