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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17. 2024

생각이 너무 길어지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이다

비정성시, 대만 지우펀


 두 달 전 대만 총통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보면서, 언젠가 보았던 대만 영화, ‘비정성시’(1989)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그 영화를 만들기 일 년 전에 만든 영화, ‘연연풍진’(1988)도 연이어 찾아보았다. 두 영화 모두 타이베이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옛 금광촌의 번영을 누렸던 도시, 대만의 지우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 ‘비정성시’의 한 장면, 지우펀의 비탈진 골목길의 한 식당에서 청년지식인들이 항일가를 부를 때, 멀리 구름과 안개 낀 바닷가 풍경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문득, 함께 영화를 보던 아내에게 멀지 않으니, 더워지기 전에 지우펀을 다녀오자고 말했고, 그렇게 나는 지우펀을 다녀왔다. 무엇이든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풍경보다는 역사적 서사가 있는 도시나 건축물, 그리고 어떤 호기심이나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을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의 교훈은, 뭐든 기회가 있을 때 실행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이 너무 길어지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이다. 여행이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니까.



사실 그동안 대만에 너무 무지했고 별관심이 없었다. 오래전 보았던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과 십 년 전쯤 회사 비즈니스로 타이베이를 한 번 다녀온 일이 있었을 뿐이다.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랜드마크인 101 빌딩의 88층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 밖에 없다. 또한, 20세기 홍콩 누아르 영화의 대표작, ‘천장지구‘(1990)의 여주인공인 대만 배우 ‘오천련’를 좋아해서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음식남녀’, ‘반생연’등을 챙겨보았던 추억이 있다.



 대만 지우펀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대만영화 ‘연연풍진‘(1988)의 영어제목이 미국의 락밴드,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kansas)라는 것을 보고 그 노래를 열 번도 더 들었다. ‘Dust in the Wind’는 사랑, 시간, 삶의 무상함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지나가는 현실을 노래해 그 영화와 일맥상통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노래처럼 우리들의 삶도 어찌 보면 바람 속의 먼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두 번째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비정성시’는 슬픈 도시의 영화이자 지우펀의 말없는 사람들의 침묵과 고통스러웠던 삶을 매우 잘 표현하고 연출했다. 영화 속 임 씨 가문의 3대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는 1945년 일제 식민통치에서의 해방부터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퇴하기까지 1947년 2.28 사태를 포함, 파란 많았던 대만 현대사를 관통한다. 하지만, 지금 대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있다.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이 되었던 금광촌의 도시, 지우펀은 1920년부터 금광 채굴로 번성을 누리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 후 금광 채굴이 몰락하면서 버려진 도시처럼 되었다. 그리고,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만든 영화 ‘비정성시’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의 배경이 되었다는 아메이찻집 (阿妹茶樓)은 정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우펀을 방문한 적도 없고, 단지 그의 상상력 속의 산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아메이찻집 (阿妹茶樓), 지우펀(Jiufen)


 그 지우펀에서 캔자스의 ‘Dust in the wind’를 듣고 있으니 너무 비현실적이고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노래처럼 모든 게 바람 속의 먼지 같은 존재이고,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감상적인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뜬금없이 입안에서 ‘희망가’의 가사,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에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 를 흥얼거렸다. 여행은 눈을 뜨고 꾸는 꿈같은 것이니까.



 굳이 누가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밀라노 출장에서 보았던 이태리 가정집 테라스에서 펄럭이던 무지개색 깃발, PACE(평화) 그 평화를 갈망하고 싶다. 유수의 세계언론이 새해 초부터 언급해 왔던 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두 곳, 대만해협과 한반도라는 우려가 사실이 아닐 수 있도록 전쟁이라는 말보다는 평화라는 말이 강물처럼 넘쳐흐르기를 기도했다. 여행은 우리가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는 몸짓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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