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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Feb 29. 2024

누구든 칼을 많이 쓰면 언젠가는 손을 베이게 마련이다

한국영화


겨울이 끝나갈 무렵, 눈이 녹아 비가 온다는 우수에 가까운 쇼핑몰에 있는 브런치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시간 맞추어 예약해 둔 한국영화를 보았다. 추위를 싫어해 밤산책을 제외하곤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겨울 내내 영화를 보거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했다. 특히 한국영화를 응원하기 위해 새로 개봉하면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데드맨’, ‘소풍’, ‘시민덕희’ ‘파묘’ 또한 그랬다.


 모두가 알다시피 코로나를 기점으로 우리 영화산업은 매우 위축되어 있다. 좋은 영화의 개봉도 흔치 않지만 넷플릭스등 급격한 인터넷 기반의 OTT(Over The Top) 시장이 활성화된 탓이기도 했다. 또한 요즘은 케이블 TV, 네이버(시리즈온)등 영화를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가 많아졌고, TV화면의 대형화와 함께 집에서 스마트 TV를 많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월드몰


시의성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노트북이나 USB로 TV와 연결해서 보면 된다. 이미 개봉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 영화나 명화들을 저렴하게 찾아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영화시장의 저변이 넓어졌고, 관객들 수준 또한 웬만한 영화평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늘 인터넷 예매를 하고 가까운 영화관을 찾지만 최근 들어서 영화관은 언제나 한산하고, 그와 비례해 영화관들은 인력을 줄이고, 영화관 입장 시 검표를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런던 베이글, 월드몰


 어쩌다 검표원이 각 영화관을 돌면서 예약한 숫자와 관람객 숫자를 대충 체크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여성 관람객들은 비인기 영화인 경우 영화관을 가는 게 더욱 두렵다고 한다. 낮시간에는 겨우 네댓 명 앉아있는 수준이니 어떤 사람들이 들어올지도 모르고, 인력감축으로 청소나 위생상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그 한국영화도 상영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그 넓은 영화관에 아내와 둘 밖에 없었고, 상영이 임박해 두세 명이 더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 영화는 막대한 마케팅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개봉한 지 열흘 만에 예매순위가 한참이나 뒤로 밀려있었지만, 조진웅배우와 김희애 배우를 믿고 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토리, 개연성, 연출등 뭐 하나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산업이든 누군가 10년에서 20년 일하면 통찰력이 생기는 법이다. 특별한 개연성 없이 너무 잔인한 장면이 많았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이다.



 대개 범죄집단이나 조폭이 등장하는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리만도 아찔한 전기톱, 섬뜩한 면도칼로 사람을 해치는 디테일까지 표현하고 야구연습장의 타석에 주인공을 앉혀놓고 야구공을 슈팅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그 잔혹한 장면에 기함을 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졸고 말았다.


 한참을 졸고 눈을 뜨니 아직도 영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고도로 창의적인 두뇌를 활용치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그럴 시간에 오히려 더 영화의 스토리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고, 좀 더 개연성 있는 영화 연출을 해야 했다. 그 영화 관계자들은 이번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길 바란다.



 이제 한국영화가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고 하지만, 최근의 한국축구와 마찬가지로 장기적 투자가 아닌 나 홀로 성장한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감독등, 두세 명의 세계적 감독과 좋은 배우들 덕분일 뿐이다. 더욱 궁금한 것은 유독 한국영화에서만 전기톱등 상상을 초월한 폭력적인 디테일의 연출을 자주 목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구든 칼을 많이 쓰면 언젠가 손을 베이게 마련이다.



 보통 그런 범죄영화는 전기톱, 도끼, 회칼, 장기밀매등, 그 잔인함에 치를 떨 정도의 혈흔이 낭자한 연출을 자주 보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에서 전기톱을 이용해 살인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어느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그런 영화감독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환경과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기에 그런 미친 상상력을 발휘하고 연출하는지 묻고 싶다.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더 학습하고, 좋은 배우들은 대본을 더 꼼꼼히 살펴보고 출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관객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면 영화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범죄영화라면 오래전 보았던 미국 영화, ‘맨온파이어‘(Man On Fire, 2004)나 프랑스 영화 ‘테이큰‘(Taken, 2008)처럼 그렇게 연출할 수는 없는지, 아니면 한국은 총을 사용할 수 없고 칼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굳이 집단 유혈난투극을 연출하는지, 그런 감독에게 묻고 싶었다. 또한, 중국은 지금 미국과 함께 G2국가로서 치열하게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그 중국을 언제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집단과 인신매매 소굴로만 연출해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편견을 심을 것인가. 한국수출수입의 약 25%를 차지하고, 달나라를 정복했으며 유사 이래 우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성인이라면 독재자 푸틴 때문에 러시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석촌호수(동호)


 지금 한국은 세계적 거대 자본이 참여하고 있는 넷플릭스등, OTT시장으로 좋은 감독과 배우를 빼앗기고 있으며 영화산업이 점점 쇠락해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지난 영화의 재개봉이 늘고, 광고 마케팅, 홍보를 하는 좋은 드라마, 영화는 모두 우리나라에 진출해 있는 인터넷 기반의 OTT시장에서 밖에 찾아볼 수 없다.


 최근의 과대 포장된  한국축구처럼 영화산업 또한 ‘기생충’과 ‘미나리’에 가려진 한국영화의 투자, 배급등의 독과점적 구조가 개선되지 못한다면, 세계가 인정하는 수준 높은 관객들을 가지고도 그 다양성과 희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영화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고, 해결해야 그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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