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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pr 10. 2024

살다 보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


언젠가 휴일 오후, 영화감독 홍상수의 영화 ‘여행자의 필요‘(2024)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문득, 사회적 왕따를 당하고 있는 홍상수 감독이 그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2012)의 제목처럼 외국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보려고 했던 영국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 2019)를 아내와 함께 보았다.



 지난 설날 무렵, 아내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와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영화를 찾아보니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볼 영화는 아니었기에 찾아놓고 그동안 선뜻 볼 수가 없었다. 휴일 오후의 한낮, 최근 출간한 공지영의 산문집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를 읽고 있는 내게 그 영화를 함께 보기를 제안했다. 창 밖은 봄비가 내리려는지 하늘이 어둑했다.



 공지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어떤 사람을 적극 옹호하며 사회적 구설에 휘말린 후, 몇 년 전부터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례 하동의 평사리 언덕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녀가 오랜만에 책을 출간했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사봤다. 계속 읽어갈수록 내가 기대했던 그런 산문집이 아닌 예루살렘을 여행한 성지순례 기행문에 가까웠다. 또한 자신의 과거 행동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용기 있게 고백하는 글은 매우 인상 깊었다. 잘못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한, 우리는 늙지 않는다.


오작교, 남원 광한루원


마지막 남은 몇 꼭지를 빨리 읽고 싶었지만 아내의 제안에 현명하게 행동했다. 그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처음보단 점점 영화가 진행될수록 묘하게 깊이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67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유럽영화 관객상을 받았던  이 영화의 수상경력이 말해주듯, 우리가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갈 때의 모습들이 각자의 다른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엔 그 영화의 내용 중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갈등이 많이 기억에 남았다.



십 년, 이십 년 전쯤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와 함께 그 소중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일은 결과가 중요하지만, 삶의 행복은 과정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입장에 서있지만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 또한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아빠 리키의 삶에 맞추어져 있지만, 엄마 애비와 아들 셉 그리고 딸 라이자 모두 그 영화의 주인공들이었다.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택배회사에 취업하지만, 하루 14시간의 고된 노동과 몰인정한 택배 노동시스템에 날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가족의 삶,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그의 아내의 일상을 통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늙음으로 인해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노년의 우리의 미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한국 영화, ‘소풍’(2024)을 보고 난 후, 늙으면 누구에게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그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듣고 아내는 ‘누구나 다 늙으면 그렇지, 뭐 어떻게 대단하게 연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의 말처럼 그렇지 않고 뭐 막 대단하게 다른 모습으로 신박하게 연출했다면, 사실 나는 또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 미안해요, 리키‘ 역시 택배노동자가 처한 고달픈 현실과 구조적으로 소외된 노동현장을 사실적으로  잘 연출한 작품이었다. 살다 보면, 리키처럼 누구나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영화는 온 가족이 서로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잘 극복해 내고, 조금만 더 고생하면 금방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그 어떤 섣부른 희망도 펼치지 않는다. 물론 위기에 처한 가족이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모습도 연출했지만, 그것만으로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구조적 모순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회적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아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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