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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r 27. 2024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년으로 적고 싶다

영화, Past Lives


 지난해 가을,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쫒는 아이’(2008)란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이유로 조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디아스포라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접한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감독이 연출한 영화, Past Lives(2024)란 영화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개봉하면 꼭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유태오란 배우의 서사가 있는 삶과 그의 생각을 응원하고 있다.



 그 영화가 개봉한 첫날, 예약을 하고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Past Lives, 이전의 삶 또는 전생이라는 뜻으로 삶의 인연을 섬세하게 잘 연출한 작품이었다. 셀린 송 감독의 아버지는 영화 ‘넘버 3’(1997)의 송능한 감독이라는 사실과 가수 장기하가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보았던 영화 ‘넘버 3‘는 한석규, 최민식, 이미연, 송강호가 출연한 범죄영화의 명작이었기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인연인가 싶었다.



 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관통하는 주제인 사랑과 인연 때문인지, 또는 영화의 플롯 때문인지  홍콩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1995)의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금성무의 내레이션이 떠올랐다.


"실연당했을 때 나는 조깅을 한다. 그럼 수분이 빠져나가 눈물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에는 유통기한이 적혀 있다.

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것은 없는 걸까?

기억이 통조림 속에 들어있다면 기한이 영영 지나지 않길 바란다.

만약 사랑에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난 그 기간을 만년으로 적고 싶다.
사람을 이해한다 해도 그게 다는 아니다.

사람은 변하므로..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것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별개이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오래갈 줄 알았다.

연료를 가득 채우고 나는 비행기처럼 멀리..
비행기가 항로를 바꿀 줄은 몰랐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 대만 단수이


 또한, 우리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2001) 중 “이 세상 아무 곳에다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라는 대사도 생각났다. 슬픈 사실은 그 엄청난 확률의 인연조차도 문제는 영화,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먹는 그 파인애플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처럼 두 남녀 주인공들이 12살에 만나 다시 직접 컨택하게 되는 24살, 36살의 서로는 매번 12년 전의 나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존재 그 자체도 변함이 있겠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성장을 통한 새로운 존재의 이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연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셀린 송 감독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는 연출과 함께 그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애틋함과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했다. 그리고, 두 주연 배우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연기 덕분에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의 ’ 슬픈 절제‘는 공감을 하면서도 한 없이 안타깝고, 또 한편으로는 그냥 추억일까, 사랑일까, 그  ‘절제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처럼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것이 인연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다지만, 그 소중한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두 남녀 주인공들의 뉴욕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도 그 기간을 만년으로 적을 것이다. 아니 유통기한을 없애고 싶다.



 피천득의 수필, ’인연’ 중에 나오는 구절,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라는 글처럼, 뉴욕에서의 만남은 차라리 아니 만난 것만 못하지 않는가. 첫사랑을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남편 품에 안겨 우는 여주인공 노라를 보면서 쓸쓸함을 생각했다. 쓸쓸함이란 울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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