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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02. 2024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또 그 얘기야!!

상처


 주말 오후 해 질 무렵, 아내와 함께 올림픽 공원에 미쓰김 라일락도 볼 겸 산책을 다녀왔다. 마침 야외잔디마당에서 음악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공연장 옆을 지나 미쓰김 라일락이 있는 자연학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미쓰김 라일락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 키 큰 라일락은 모두 지고 없는데 미쓰김 라일락은 이제 보랏빛 좁쌀 같은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었다.



 미쓰김 라일락은 키가 낮으며 풍성하고 일반 라일락보다 그 향기가 진한데 한국이 원산지이다. 미쓰김 라일락을 미국에 처음 가져간 사람은  미더(Elwin M. Meader)라는  미군정청 소속 식물채집가로 1947년에 북한산 백운대에서 이 라일락을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자신을 도와주던 타이피스트의 성을 따서 미쓰김 라일락으로 학명을 정했다. 미쓰김 라일락의 꽃말은 ‘달콤한 첫사랑의 추억’이다.


미쓰김 라일락


 지금은 반대로 개량종 미쓰김 라일락은 수입할 때 로열티를 내야 한다니 우리의 토종 수수꽃다리, 미쓰김 라일락을 도둑맞은 느낌이다. 아무튼 자연학습장의 야생화 꽃밭을 둘러보고 난 후, 산책로를 따라 야외 공연장 뒷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때 이른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조금 전 산딸나무꽃을 기억 못 한 아내에게 이게 무슨 꽃이냐고 물었더니 바로 아카시아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서울에서 자란 아내에게 산책하면서 각종 나무와 꽃이름을 가르쳐줄 때만 유일하게 경쟁우위에 선다.


하얀 산딸나무꽃


 오월 초순에 피는 뽀얀 아카시아꽃을 좋아한다. 아내에게 아카시아꽃을 제대로 볼 생각이면 오월 초순에 피자도 먹을 겸 광장동 워커힐언덕에 산책을 가자고 말했다. 덧붙여, 대학 입학하고 만났던 여자친구가 워커힐 아파트에 살았다.


그 뒷길의 아카시아꽃이 필 때 몇 번 집에 바래다준 적이 있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실수했단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는 대범하게 그 시절에 그런 추억도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며 웃었다. 왕따보다 더 무서운 게 오버란 걸 깜박했다.


아카시아꽃


 공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가 옆에 앉은 내게 카톡을 보냈다. 카톡을 보니 인스타그램의 릴스 “아내가 받은 상처를 또 얘기한다고? “라는 제목이었다. 조금 후 아내가 아까 보내준 그 동영상을 봤는지 확인했다. 좋은 주말 저녁 분위기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그 릴스를 제대로 보는 것이었다. 길지 않은 내용이었고 다행히 산책 중의 오버와는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인즉슨, 누구를 칼로 찌른 후 그가 자꾸 아프다고 얘기하면 이미 다 지나간 일인데 또 얘기한다고 구박하면 이상한 것처럼, 똑같은 이치가 ‘아내가 받은 상처를 또 얘기한다’고 면박주는 것과 같다는 얘기였다. 칼에 찔린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니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아프니까 자꾸 아프다고 얘기하는 것이니까.


 아내가 또 지난번에 했던 얘기를 거듭하면, 또 그 얘기냐며 면박을 줄게 아니라 그 상처가 아직 제대로 아물지 않았구나 깨닫고, 그만 얘기하라고  말하는 대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들어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 또는 기분이 나쁠 때마다 또 똑같은 지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각시 붓꽃


그럴 때마다 디테일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또 그 얘기야”하고 말하지 말고, “여보, 그 얘기 지난번에 했었는데 또 하는 걸 보니 당신한테 큰 상처인가 보네, 오늘은 그 얘기 좀 해보자. 그래, 어떤 점이 많이 힘들었어 “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 불편한 똑같은 얘기를 계속 말한다는 것은 그 상처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나 또한 치열한 사회생활을 할 때, 아내에게 그런 적이 없지 않았고 많이 반성하고 있다. 여유가 없었고 사실 이런 걸 잘 몰랐다.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으로 미래지향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데 자꾸 과거 얘기, 아픈 상처를 끄집어낸다고 비난하기보단, 현존하는 전쟁 위안부, 강제징용자들이 살아있는 한 그들의 상처를 먼저 돌보고 치유하는 게 우선이며, 그 방법은 진정한 사과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보내준 그 동영상을 일본말로 번역해서 일본 정부 당국자에게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잘 몰라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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