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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사람보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by 봄날


주말 아침, 우연히 영화채널에서 대배우 나문희, 김영옥 선생님 그리고 박근형 선생님이 출연했던 영화 ‘소풍’(2024)을 다시 봤다. 작년 아내와 가까운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삶과 죽음, 그리고 늙는다는 것’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들었던 영화였다.


영화의 구성은 달랐지만 오래전 보았던 ‘델마와 루이스’(1993)가 떠올랐고,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직선의 삶, 위만 바라보는 수직의 삶과 함께 바쁘게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봐야 할 영화이다.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수평의 삶, 그리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바쁘더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곡선의 삶, 우리 삶의 화두인 ‘상승과 안정’이라는 그 두 가지의 균형, 그것이 우리 삶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지킬 수 있는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말하듯, 인생 너무 복잡하고 심각하게 살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는 아무도 이 인생이라는 함정에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



“60년 만에 찾아간 고향, 16살의 추억을 만났다. 요즘 들어 돌아가신 엄마가 자꾸 꿈에 보이는 은심(나문희). 마침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금순(김영옥)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자, 은심은 금순과 함께 고향 남해로 떠나기로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자신을 짝사랑하던 태호(박근형)를 만나며 잊고 지낸 추억을 하나둘씩 떠올리게 되는데…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야” 한 편의 시가 되는 우정, 어쩌면 마지막 소풍이 시작된다.”



공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40대에는 혈기왕성하니 성적 욕망을 조심하고, 50대에는 무엇이든 인생에서 꼭 이루고야 말겠는다는 성취욕에 휘둘리지 말 것이며, 60대부터는 모든 것에 대한 욕심, 즉 노욕을 지극히 경계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나이대의 기간을 통과하며 새삼 공자가 왜 인류에게 큰 가르침을 준 세계가 인정하는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의 삶에서 가끔 우리 몸이 아플 때만큼 우리 자신이 겸손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메멘토 모리, 우리의 삶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사는 것만큼 우리가 삶에 감사하는 경우도 드물다. 영화 소풍은 그 두 가지 경우에 더해, 우리가 늙는다는 것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것이 수직과 직선의 삶만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조용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 우리 인생은 한바탕 놀고 가는 즐거운 소풍‘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자귀나무,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며칠 전 트위터에서 읽은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문득 떠올랐다. 이어령 교수의 딸, 이민아 씨는 암으로 인해 아버지보다 10년 먼저 돌아가셨다. 그리고 따님이 생전에 쓴 책에서 이런 대목이 있었는데, 이게 아버지 이어령 교수의 마음에 계속 남아 후회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자기 전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아버지가 글을 쓰고 있는 서재 문을 두드렸다. 오늘따라 특별히 예쁜 잠옷을 입었기에 아버지가 '굿 나잇‘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손을 흔들기만 했다. '오늘도 역시‘하는 생각에 시무룩해 돌아섰다.”



이 글을 읽고 이어령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하찮은 굿 나잇 키스보다는 좋은 피아노를 사주고, 널 좋은 승용차에 태워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빠의 행복이자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느낀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나의 사랑 그 자체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옛날로 돌아가자. 나는 그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 나잇!’ 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고 서 있지 않아도 된다. “ 그의 후회는 아마도 앞만 보고 인생을 경주하듯 살아왔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2024)의 대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우리가 자식이고 부모였던 시절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인생 너무 심각하게 살 필요 없다. 재미있게 살고, 사랑할 땐 사랑한다 말하고, 고마울 땐 고맙다 말하고,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결국 열심히 사는 사람보다 그런 소소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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