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건가

선묘와 의상의 사랑이야기

by 봄날


양양 낙산사와 인제 백담사의 두 사찰순례와 함께 설악산의 단풍을 보는 것으로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서 출발하면 동서고속도로가 끝나는 양양에 있는 천년고찰 낙산사는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늘 쉼과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케렌시아 중의 한 곳이었기에 이미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었고 익숙했다. 바로 옆 낙산비치호텔은 침대에 누워서 동해일출을 직관할 수 있다. 특히, 의상대에 있는 해송인 관음송과는 이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의상대와 관음송, 낙산사


또한, 낙산사 대웅전 뒷벽에 채색으로 그려진 선묘 낭자와 의상대사의 사랑이야기를 모른다면 낙산사를 백번을 둘러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낙산사와 영주 부석사를 소개할 때 몇 번 언급했지만 네이버 검색의 수고로움을 대신해 간단히 소개하려고 한다. 신라의 기품 있는 청년 의상은 당나라로 불교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학업을 하는 동안 묵었던 하숙집에는 주인의 딸인 선묘라는 예쁜 낭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웃나라에서 유학온 의상을 보고 첫눈에 흠모하게 되었지만 의상의 신분이 스님이니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의상스님은 학업을 마치고 귀국을 하게 되었다. 마침 그날, 선묘 낭자가 봄나물을 캐고 돌아왔다. 곧 의상이 떠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뒷모습만이라도 보려고 바닷가로 달려갔지만, 벌써 돛단배는 유유히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에 크게 낙담한 선묘 낭자는 바닷가 절벽 끝에서 혼이 되어서라도 따라가겠다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원통보전, 낙산사


그렇게 의상을 태운 돛단배는 황해로 나아갔고, 귀국하는 동안 큰 비바람이 불고 풍랑이 덮쳐 좌초위기에 놓였을 때 선묘 낭자의 영혼이 용이 되어 그 배를 휘감고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의상은 그 뜻을 펼칠 역사를 영주의 봉황산 자락에 사찰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의상을 못마땅해한 그 동네 건달들이 방해를 했다. 의상은 충분히 그들을 제압할 힘과 용기가 있었지만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련암, 낙산사


의상은 지혜를 발휘해 산밑의 커다란 반석 위에 놓여있던 바위를 번쩍 들어 보이며 그 동네건달들을 놀라게 해 물리쳤고, 지금의 천년고찰 부석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 괴력은 당연히 선묘 낭자의 영혼이 함께 바위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의상은 선묘 낭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모시고자 지금의 부석사 무량수전 오른쪽 뒤편 언덕에 선묘각이라는 사당을 세웠고,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낙산사 대웅전(보타전) 뒷벽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왼편 언덕에는 지금도 그 부석(뜬돌)이 넓은 반석 위에 그대로 놓여있으며, 그 밑으로 명주실을 넣어 통과시킬 수 있을 정도로 조금 떠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의상대사는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고 훗날 또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양양의 낙산사를 창건했다. 그때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도량을 닦았던 곳이 지금의 의상대이다. 그런 연유로 낙산사 대웅전 뒷벽에 채색으로 선묘와 의상의 사랑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낙산비치호텔, 낙산사 후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런 사랑이야기를 모르고 아무리 기도를 올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도 있다. 오래전에는 소설가 신경숙이 단편소설 ‘부석사’로 권위 있는 이상문학상(2001)을 수상했음은 물론이다. 정월 초하루 두남여가 우연히 함께 부석사로 여행을 떠나지만 갑자기 내리는 폭설로 차 안에 갇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처럼 이 세상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많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


무지개, 낙산사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사랑을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천년사찰이 영주 부석사와 양양 낙산사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인해 두 사찰에서 기도를 올리면 그 사랑했던 사람을 이번 생에 한 번쯤은 서로 스치듯 만날 수 있다는 B&G(뻥 앤 구라)가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또한, ‘가질 수 없는 너’(뱅크, 1995)의 그 슬픈 사랑의 주인공 선묘 낭자, 그 마음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시를 하나 소개한다. 시인 류근은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것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그가 쓴 시 ‘어쩌다 나는’이란 시이다. 사랑할 땐 멜로디가 들리고 이별 후엔 가사가 들리는 법이니까.


꿈을 이루는 길

어쩌다 나는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명랑한 햇빛 속에서도 눈물이 나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깊은 바람결 안에서도 앞섶이 마르지 않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무수한 슬픔 안에서 당신 이름 씻으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가득 찬 목숨 안에서 당신 하나 여의며 사는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이 삶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 건가

어쩌다 나는 당신이 좋아서

어디로든 아낌없이 소멸해버리고 싶은 건가

류근 시집 ‘어떻게든 이별’ 중에서 ‘어쩌다 나는’ 전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