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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비어있다면 머리는 아무 소용없다

선물

by 봄날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성공리에 끝났다. 5개월 전만 해도 그 준비가 미흡했고 제대로 챙겨지지 않아 또다시 새만금 잼보리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 여론이 들끓었다. 그 결과 국무총리가 총책임자가 되어 경주 APEC을 준비하고 챙기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천년고도 경주가 천년의 문화와 시스템 등 지방도시 치고는 컨벤션을 열 수 있는 최적의 도시이긴 했지만, 미국과 중국 등 21개국 정상과 초청국 UAE가 참석하는 만큼 그 수행원들의 수를 고려하면 숙박시설이 큰 걱정거리였다.


시루봉&학소대, 청송 주왕산


그 숙박문제는 다행히 1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크루즈선박 두척을 바다에 띄워 무사히 해결했다. 특집뉴스로 제공하는 경주 APEC을 보면서 경주 불국사와 아름다운 천년고도 경주의 잘 단장된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화적 자부심이 더욱 고양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폐막 만찬공연이 그 대미를 장식했고, 참석자 모두의 핸드폰을 꺼내 들게 했던 존재 자체가 아티스트인 우리 GD공연은 당연히 그중 최고의 압권이었다.


용추폭포, 주왕산


하지만, 미국, 중국과의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두 정상이 주고받은 선물이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반영해 경주 금관총에서 발견된 신라금관의 모형, 즉 왕관을 선물했고 그와 더불어 그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리더십을 평가해 금색 찬란한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했다. 한국이 미국 대통령에게 훈장을 주며 격려하고, 그 훈장을 당장 목에 걸고 싶다며 좋아했다는 것은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 트럼프의 전횡에 반대하는 리버럴(Liberal)들의 노킹스(왕은 없다)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한편으론 조금 미안한 일이었지만 우리의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두고 ‘The Daily Show’에서 “Please, just give him a sack of money like a normal country."(그냥 보통 나라들처럼 돈자루나 쥐어줘라)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했다. 물론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두 번씩이나 그런 트럼프를 뽑아놓은 그들이 할 얘기는 아니다.


주산지의 가을(데칼코마니), 청송


함께 생사를 나눈 동맹들(한국, 일본, EU)에게만 중고교 일진들이나 할 행동으로 지난 일 년 동안 약탈적 관세협상을 했는데,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제대로 한번 목소리도 내지 않던 그들이었으니까. 그 리버럴들이 이제 와서 트럼프의 전횡이 불편하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낸다는 게 동맹들에게 돈보따리나 쥐어주라며 비아냥거릴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물론 그 결과 우리는 일본보다 좋은 조건의 관세협상과 핵추진잠수함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1년 만에 방문한 중국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함께 핵추진잠수함을 만들기 위해 중국을 언급한 것 때문에 약간의 우려는 있었지만, 중. 일 정상회담에서 보았듯 평소 잘 웃지 않는 시진핑 주석을 파안대소하게 만들었다. 중국에는 바둑을 좋아하는 시주석의 취향을 배려해 본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과 나전칠기 쟁반, 찻잔과 화장품을 선물했다. 한편 중국은 샤오미핸드폰과 옥으로 만든 벼루와 붓등 문방사우와 도자기 찻잔을 선물했다.



그때 엄격하고 근엄하며 진지한 시주석이 한국산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며 샤오미폰을 선물하자 이대통령이 “통신보안은 잘 되느냐 “며 반문했다. 그러자 시주석은 그 순간 “뒷문(backdoor)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라며 티키타카를 했고, 두 정상은 박장대소하며 잇몸이 보이게 파안대소했다. 엄근진 시진핑주석에게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배짱과 자신감이 돋보였다. 그런 농담은 그동안 상대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이다.



해외비즈니스를 할 때, 상대가 한국을 방문하거나 또는 해외를 방문할 때 모든 준비를 잘 마치고 가장 마지막의 화룡점정은 선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스타일과 취향을 여러 경로를 통해 조용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선물을 마지막 비장의 무기로 챙겨간다. 그럴 때마다 고려하는 것은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며 상대, 또는 상대의 부인이 좋아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인사동과 갤러리등 각종 장인들의 리스트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가슴이 비어있다면 머리는 아무 소용없으니까.



오모테나시( おもてなし), 일본 역시 마음이 담긴 환대와 선물을 트럼프에게 주었다. 고인이 된 아베수상이 썼던 골프채와 취향이 반영된 황금골프공을 선물로 주었다. 일본은 관세협상 포함, 선물에서도 한국에 완패를 했다. 그 결과 일본 내에서 비굴한 관세협상과 핵잠수함건으로 일본네티즌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오모테나시’의 나라인 일본의 준비와 아이디어, 즉 정성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었다. 총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누가 총 맞아 암살당한 사람의 물건을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뜻밖에도 국익에 가장 유익하고 좋은 선물은 깐부치킨을 대접하고 받았던 엔비디아 젠슨황의 선물이었다. 품귀현상의 최신 GPU(Graphics Processing Unit) 26만 장을 한국에 우선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AI국가를 선도하겠다며 GPU 5만 장 확보를 공약했다. 삼전출신 모 정치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그 공약지를 찢는 퍼포먼스를 했다. 현재 겨우 16000장을 가지고 있지만 그 GPU 26만 장을 확보하면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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