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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은 늘 가장 값싼 기준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 대기업 김 부장 이야기

by 봄날


요즘 트위터를 둘러보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올라오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jtbc)이다. 아마도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그 주변인들이 많아서 그 드라마 이야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시절을 통과했기에, 한마디 보태지 않고 참는 게 어른이지만 참전할 수밖에 없다. 그 드라마를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고 그 시간을 놓치면 넷플릭스에서 찾아 아내와 함께 보기도 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 철원


그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주인공인 오십 대 초반의 25년 차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김 부장(류승룡)에 대한 연민이 앞섰다. 드라마에서는 그 김 부장이 꽉 막히고 무능한 직장 상사로 표현되었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사실 현실의 삶 속에서 적지 않게 목격하고 있는 일이다. 국내 주요 명문대학들 중 하나를 졸업하고 대기업 그룹 공채 또는 공사,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나름 승승장구해 왔고, 그 회사생활이 곧 내 삶이라고 여기다 문득 퇴직하는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그 김 부장의 삶을 그냥 조롱거리로 삼는 것 같은 시선들과 어느 젊은 친구의 트윗 글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꼰대가 틀림없다. 그 드라마 속의 김 부장은 누군가의 다정한 아버지였고, 누구보다 생계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 삶의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이니까. 또한, 트윗글의 누군가는 “아버지가 회사에선 어떤 사람인지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을 해보게 됐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누군가는 “진짜 실력도 없으면서 세상 살려고 바둥대는 게 불쌍하다” 는 글을 올린 젊은 트위터리안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그 김 부장의 삶을 이미 관통한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얘기해 줄 수 있다. 그렇게 가볍게 얘기한 그 친구는 아마도 높은 확률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그 김 부장처럼 되지 못할 수 있다. 적어도 그 김 부장은 국내 주요 명문대학을 나왔고, 대기업 그룹의 공채로 입사해 관계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곧 임원을 바라보는 선임부장까지 올랐다.



한편, 성실한 남편을 존중하고 배려함은 물론 서울에 자가인 아파트를 마련했고, 자녀교육에 집중해 아들을 신촌에 있는 Y대학에 보낸 박하진(명세빈)같이 예쁜 아내와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을 조금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쉽게 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조롱하지 못하니까. 임원이 되면 성공, 안되면 실패인가. 삶의 과정일 뿐, 그렇지 않다. 타인의 시선은 늘 가장 값싼 기준일 뿐이다. 성공의 잣대가 그렇다면 정량적으로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먼저, 국내에 있는 주요 명문 대학에 입학하려면 특목고가 아니라면, 서울의 일반고에서는 반에서 3등, 전교 20등 안에는 들어야 우리 공교육의 승리를 보여줄 수 있다. 둘째, 서울에 있는 그 김 부장이 다니는 ACT 텔레콤의 S그룹 공채에 합격하려면 100대 1 이상의 1차 서류전형 및 실무면접, 과제 PT, 최종 임원면접등을 통과해야 한다. 또한, 입사 후 25년 차 대기업 김 부장(연봉, 1.6억)이 되려면 최소 5번의 승진을 누락 없이 해야 하고, 엄선된 그룹 입사동기들 중에서 10% 안에 들어야 한다.



또한, 박하진(명세빈) 같은 다정하고 예쁜 아내를 얻으려면 몇 번은 죽네사네 하는 연애를 경험해야 하며, 그룹공채시험보다 더 높은 경쟁을 뚫고 그녀의 간택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우수한 스펙은 물론이고 정성적 평가, 즉 잘난 외모와 매너, 유머 등등 갖추어야 할 기본기는 차고 넘친다. 마지막으로 아들을 SKY대학에 보내는 건 그 자체로 자녀교육을 평가받는 시대일뿐더러 서울의 자가 아파트면 평균 15억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한강이 보이면 최소 20, 30억 이상이다.



순자산 10억 이상이면 전국가구수 10% 안에 들어 2차 민생지원금도 못 받지만, 퇴직금 3억, 위로금 2억을 더 받았다. 최소 20억이면 1%가 30억이니 전국가구수 5% 안에 든다. 72년생 50대 초반이니 중소기업에서 10년만 더 버티면 은퇴 후 국민연금도 매월 2백만 원 이상 나온다.


만약, 더 일하기 싫으면 아파트를 팔지 않아도, 그 5억을 IRP(퇴직연금) 계좌에 넣어두고 매달 5백만 원씩 10년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훗날 서울의 그 아파트 처분하고 외곽으로 이사하면 최소 10억 이상, IRP 5억 매달 안 받고 10년 운용했으면 합계 20억은 남는다.



그런 김 부장이 임원이 못되고 명퇴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드라마의 팀후배들 포함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는 없다. 단지, 그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회사를 너무 믿었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1997년, IMF 구조조정을 겪고 난 후 회사와 회사원 사이의 상호신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니까. 프로야구 선수처럼 실적과 성과로 보상받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업계 내에서의 경쟁력뿐이다. 즉 내가 회사에 필요한 존재가 아닐 땐 언제든 방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이제 공기업포함 월급루팡들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회사와 늘 긴장감을 가지고 생활해야 될 뿐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중에서 ‘Who moved my cheese?(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란 책이 있었다. 쥐 두 마리와 두 사람을 통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여차하면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매고 뛸 준비, 또는 튈 준비를 하는 것이다. 가끔 그 김 부장처럼 불현듯 명퇴를 통보받고 인사차 찾아오는 후배들이 있었다.



주변에선 대개 그 사람들이 명퇴를 당할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공통된 말은 “ 내가 명퇴를 당할 줄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기 확신이 문제다. 자기 확신에 빠지면 드라마의 김 부장처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리고, 쉽게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그 드라마의 김 부장이 25년을 밖에서 싸우며 가족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버텨온 그 가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준다.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내가 건넨 “고생했어”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그는 “미안해”로 받아낸다. 그런 아내와 사는 그 김 부장은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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