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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사탕 Dec 19. 2020

나를 찾아야 할까

뭐 먹으러 갈래?
음... 아무거나...


친구들과 음식점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내가 항상 하는 말은 '아무거나'였다. ‘뭘 먹을지도 잘 모르겠고, 뭐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으니, 그냥 이미 결정한 너의 의견을 따르겠다’는 뭐 이런 의미였다. 이런 경우가 비단 음식점에서만 있는 일이었을까. 뭔가를 살 때도, 어디를 갈 때도, 항상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아무거나’였다. 그러다가 아무거나가 안 통하면 '네가 하고 싶은데 로 해'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예전에는 이런 말과 태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살았었다. 굳이 내 주장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정말 먹고 싶은 게 없어서였을까.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거나'를 외쳐댔다. 그러다가 20대 후반, 그 끝자락에서 나를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친해진 동기는 항상 조잘조잘 대면서 자신의 취향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곤 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런 음식이 좋은데, 너도 좋지 않느냐'고, '나는 이런 부류의 음악이 좋은데, 너는 어떠냐’고 말이다. 그때 당시의 나는 이 친구처럼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친구도 처음이었지만, 자신의 취향을 이렇게 확고하게 말하는 친구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괜히 이 친구가 나에게 나의 취향을 물으면 그냥 '나도 그래'하고 말아버리곤 했다. 


동기의 스스럼없는 질문 폭격에 나도 그렇다고, 나도 괜찮다고 말해버리면서 내심 들었던 생각은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막힘없이 말하는 그 동기가 솔직히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취향의 불호를 쉽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지 신기했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볼까. 나는 뭐 하나 고르려면 한-참- 생각하다가 고르는 편이다. 이렇게 고민 끝에 한 번 고르고 나면 그 이후에는 골랐던 것만 골랐다. 음식이면 그 음식만 먹고, 옷이면 그 스타일의 옷만 입고, 음악이면 그 스타일의 노래만 들었다. 내심 나름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결정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볼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정말 아쉬운 순간들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러려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동기로 인해서 많은 생각이 변했다. 이렇게 유난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연애라도 일찍 했더라면 혹시 나도 이 동기처럼 자신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굳이 연애라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선택의 폭을 넓혀서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았더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서 20대의 끝자락에 왔다. 여전히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는 알게 되었다. 나는 여태 나 자신으로 살아왔는데, 그래서 나만큼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나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을수록 정말 나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더라.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나를 찾아보려고 한다. 


누군가는 서른을 두려워하는 나이에 무슨 자아를 찾냐고, 그냥 남은 이십 대를 즐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누군가는 네가 아직 고생을 덜해봐서 배부른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휘둘렸고, 눈앞의 일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 내 남은 인생도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지대로 휘둘려서 살게 될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나를 찾아보려고 한다. 아니 지금이라도 나를 찾아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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