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고 뻔한 말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나는 선택을 잘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시나 이 말을 싫어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서 선택을 잘 못했다. 선택이란 건 내 문제인데도 말이다. 나는 항상 선택이라는 함수 속에는 모 아니면 도라는 값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혹시라도 도라는 값이 나올까 봐 선택의 기로에 서면 항상 한 발자국 뒤에 서서 내 선택을 관망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내 선택인데도 말이다. 관망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결정의 순간까지 선택을 번복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내 선택을 맡기거나 관련된 후기를 쭉 찾아보면서 확률상 성공할 것 같은 것으로 내 선택을 맡겼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아주 사소하게는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에도 적용되었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되는데 새로운 음식을 먹었다가 실패할까 봐 항상 먹었던 음식만 먹었다. 대학 때는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수강하면 되는데 점수를 무난하게 딸 수 있는 강의를 듣는다던지 동기가 같이 듣자고 하는 강의를 듣는다던지 했지, 내가 듣고 싶은 강의를 듣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들으라는 강의를 듣고서는 학점을 말아먹기도 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이렇게 계속 답답하게 살아온 이유는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니까 다른 사람을 따라서 결정한다거나 했던 일만 한다거나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이유를 또 따지고 들다 보니 결국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나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사실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을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걸 내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안단 말인가라며 자존심을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지 않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고 (엄밀히 말하면 나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서 후회하는 날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를 수도 있지 굳이 알아야 되는 거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안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에 대한 이해가 되어있지 않으면 옳지 않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닐 수도 있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물론 타인의 의견이 도움이 되는 때도 있겠지만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의견 없이 타인의 의견만 따른다면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나처럼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왔냐고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알아가면 되는 것이다. 일찍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하루빨리 자신을 찾으려고 급급해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알아가기로 했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것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세월도 당장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한 시작은 그저 외부로 집중되었던 나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그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