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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사탕 Feb 20. 2021

누구도 이 지독한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도 하고 그 관계를 정리하고 또 다른 사람을 찾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굳이 계속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 정리하는 방법은 많다. 조용히 연락을 끊는다던지 싸운다던지 말이다. 과거의 나에게 인간관계란 그냥 아주 보통의 관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내게 타인의 싸움이나 손절은 생소한 광경 중 하나였고 이런 일들이 내게는 절대 찾아오지 않을 일이라 생각했다.


https://unsplash.com/photos/zHJ4ph3GRyg
누가 싸우자고 들면 너도 지지 말고 싸워


어린 시절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그때는 워낙 어렸을 때라 친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내가 걱정이 되어서 내게 저런 말을 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난 다른 친구와 싸운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성적인 성격에 누구 하나 말 붙이기 힘든 타입의 성격이라 싸움의 쌍시옷도 일어날 일이 없었다. 운다면 매일 보고사는 동생 정도이려나.


시간이 흘러 중고등학생이 되자 내 나름의 인간관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중고등학생이 되었다고 해도 나의 내성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성격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  적극적으로 나 설일이 별로 없어서 다른 친구들과 싸울 일도 없었다. 그때의 인간관계는 그냥 평화 그 자체였다. 굳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와서 시비 걸지 않는 이상 말이다(간혹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게 시비인 줄도 몰랐다). 이렇게 평화로운 인간관계를 유지해나가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안정적인 인간관계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부터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과 싸우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게 되었다(여기에 더해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야 된다고도 생각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로 유유하게 나의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갔다. 과거에도 옳았으니 앞으로 그리라는 말도 안 되는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정말 웃긴 건 과거의 내 생각대로 대학 때까지 한 번도 타인과 싸우지 않고 살아오게 됐다는 거다. 앞서 말했듯이 남이 시비를 걸었을 수도 있는데 그걸 캐치 못했다면 그건 예외다.


https://unsplash.com/photos/VIO0tyzXL4U


그러던 어느날 믿었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아 왕따가 되어보고, 일적으로 완벽을 기했던 나에게 여기가 무슨 삼성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냐며 다른 사람과 싸우기를 연달아하기도 했으며, 몇 명의 지인과 말도 안되는 사소한 문제로 손절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르시시스트의 먹이로 감정노동까지 하게 된다. 그것도 약 2년 동안만에 말이다.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길까 봐 벌벌 떨던 내가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등을 돌리는 일을 겪게 되었다. 물론 나보다 더 심각하게 타인과 문제가 생겨봤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 간 한 번도 타인과 싸운 적이 없었던 사람이 단기간에 인간관계가 바닥을 쳐버리게 되면서 배우게 된 게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그 2년간의 말도 안 되는 기간이 내게 알려준 건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나만의 색깔이 없는 회색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회색의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다른 색깔)에게 그저 맞춰주기만 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위치에 있기만 함으로써 싸움이라는 것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아니 이렇게 잘 맞춰주는데 굳이 싸움이 일어날 리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가 극악으로 바닥 쳤을 때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이 말했듯이 회색 인간이면 오히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날 일이 없지 않으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태 버텼는데 색이 짙은 사람들의 색을 내게 입히며 잘 지내왔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어서 돌아왔다. 나는 내 주관이 없었던 것이다. 내 주관이 없다 보니 색이 짙은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어서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지게 되었다. 너덜너덜해진 나를 보살피기 위해서, 생전 타인과 문제가 있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 타인과의 문제로 인해서 드디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를 되돌아봤을 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나의 자아가 약하다는 이었다. 래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를 찾으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나를 찾으려고 다짐을 했을 때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내 색깔을 찾아간다는 건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만의 색깔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나의 주관이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서 나의 말과 행동이 결정되게 되기 때문이다(물론 부모님이나 책과 같은 것들의 영향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도 지독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나는 나를 찾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아닌가. 지독하리만큼 지독한 이 인간관계 속에서 진정한 나의 색깔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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