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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사탕 Apr 10. 2021

내향적이라는 부정적 프레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나를 보면 하던 말이 있다. 얘는 숫기가 없어서 큰일이라는 말이었다. 그 어린 시절은 부끄러움이 많던 나의 성격이 어른들이 그렇게나 왈가왈부하며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리라고 판단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린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의 숫기 없음은, 내향적인 성격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말은 내 머릿속에 박혀서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기도 전에 남들이 나더러 숫기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줬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지만 마음 한켠에는 나는 숫기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내향적인 특성 때문에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성격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외향적인 특성들도 가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양한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나의 외향적인 성향도 점점 강해졌던 것이다. 내향성에 대해서 유명한 책인 <콰이어트>에 따르면 인간의 성향은 내향성과 외향성 딱 2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성향은 내향성과 외향성이 공존하고 있지만 거기서 어느 성향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내향형 인간, 외향형 인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성향도 마찬가지로 내향성과 외향성 모두 가지고 있지만 그 정도의 차이 때문에 좀 더 내향적인 사람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https://unsplash.com/photos/PGnqT0rXWLs


나의 어린 시절 어른들은 왜 나의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혀를 끌끌 찼던 것일까. 내향적이라는 특성은 외향적이라는 특성에 비해서 부정적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 시절에는, 아니 사실 지금까지도 외향적이라는 특성은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를 받는다. 요즘 인싸 문화는 누가 봐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내향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더 낫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한 부분이다. 잘 놀지 못하면 아싸가 되고 잘 놀면 인싸가 되며 사람들은 그런 인싸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향성과 외향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써 사용되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향적인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성향은 어떤 모아니면 도의 것이 아니라, 어떤 스펙트럼 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향성부터 내향성까지의 스펙트럼 상에서 좀 더 외향성일수도 내향성일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과거에는 나의 내향성에 대해서 아쉬운 점 중 하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처럼 성향을 스펙트럼적인 것으로 본다면 외향형이든 내향형이든 상관없이 성향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버리게 되었다. 


대부분 이분법적인 사고가 사람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고, 또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성향에 좋고 나쁨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그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고 그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성향이 달라지는 것 일뿐. 거기에 있어서 나쁨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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