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말만 들어도 엄청 공부 잘하고 연구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들만 가는 곳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그렇다면 대학원이라는 곳은 어떤 사람이 다니는 걸까.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 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 내 생각에는 모두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그냥 대학원에 가고 싶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다.
대학원에 있다 보면 대학원 진학 관련해서 상담을 종종 하고는 한다. 자신이 대학원에는 가고 싶지만 나 같은 사람이 가도 되냐고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처럼 도피성으로 가면 안 된다던데, 자신은 공부를 잘 못하는데, 자신은 실험을 잘 못하는데 가도 되는 건지 등등 갖가지 이유로 자신이 대학원에 가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말한다. 그렇게 자신이 대학원에 가면 안 되는 근거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렇게 상담을 했던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최근 들어서 대학원 진학 비율이 확실히 늘었다고 체감을 하는 것 중 하나는 블로그나 브런치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뿐만 아니라 유튜브에도 대학원 생활과 관련된 콘텐츠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블로그나 브런치에서는 올바른 대학원 생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들을 글로 남기기도 하고, 유튜브에는 대학원 생활 브이로그가 그 콘텐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물론 코로나 시국이 대학원 진학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나 많은 대학원생들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많은 사람일까. 아니면 연구에 열정이 많은 사람일까. 아니면 왜 대학원에 진학한 것일까?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든, 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든, 내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대학원 진학에 대해서 지금 후려치는 거냐고 화를 낼까 봐 부연 설명하자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것에는 많은 내용이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연구를 하고 싶거나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혹은 연구직과 같이 학위증이 필요한 직무를 하고 싶어서, 부모님이 모든 것을 지원해줄테니 가라고 해서, 취업에 실패해서 등등의 많은 내용이 포함된다.
과거에 나에게 대학원 진학 상담을 해온 사람들에게 나는 냉정하게 평가해서 '대학원에 가도 좋을 것 같다' 혹은 '대학원에 진학하면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냉정하게 말을 해줘도 어찌 되었든 이 두 부류는 모두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즉,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는 대학원을 진학하고자 하는 결정은 내렸는데, 그에 대한 확신이 안 서서 확인을 받고자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학원 진학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과 부합하는 답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상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원 가면 힘들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아무런 생각 없이 '당신은 대학원 가도 잘할 것 같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자마자 대학원 원서를 쓴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어느 기점부터는 나에게 대학원 진학 상담을 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대학원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수백수천 가지도 댈 수 있다고, 그냥 가고 싶으면 가는 거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책임해 보이는 상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당신이고, 그렇게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마음속에 대학원을 가고자 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대학원에 가면 안 되는 사람의 유형을 분류해서 적은 글들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게 많다. 이런 사람들은 이 글들을 읽고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을까? 대부분 아니다. 한 번은 이런 글을 대학원 진학 고민하는 사람에게 보내준 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진학을 하기도 한다. 역시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인 사람에게 또 하나의 말을 해주고 싶다. 대학원 진학을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이후의 삶은 본인의 역량과 책임에 따른 거라고 말이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졸업을 해도 관련 직무를 선택하지 않기도 하고 아예 대학원 학위조차 필요하지 않은 직무를 선택하는 경우들도 종종 보기도 한다. 그분들의 삶은 실패한 걸까? 아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삶에 뭐가 맞는지를 대학원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와 관련한 경우들을 보다 보니 추가적으로 대학원에 진학 후 정말 여러 가지 이유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하루라도 빨리 자퇴하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물론 회사를 다니다가 혹은 다니는 중에 대학원을 진학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경우 한 학기에서 1년 정도 대학원에서 어떤 경험을 해서 소비했다고 해서 다른 분야로 돌릴 기회가 사라질 정도로 시기가 늦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그냥 끝까지 버티는 것 같긴 하다).
나는 대학원 진학을 추천하지도 비추천하지도 않는다. 그저 본인에게 필요하고 원한다면 가라고 말해줄 뿐이다. 왜냐하면 대학원이라는 곳이 자신에게 기회를 가져다 줄 곳인지 아닌지, 필요한 곳인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미 마음을 먹었다면 자신의 인생이니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