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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안 Aug 31. 2022

별의 전쟁

그 직원은 왜 과속운전 벌금을 70만 원이나 냈을까


내가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만난 어떤 직원은 매사 성실하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가장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동료였다. 하지만 외근을 나가거나 워크숍을 갈 때면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싶어하는 직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운전대를 잡았다 하면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 키호테처럼 돌변해 과속을 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느긋한 사람이 차를 몰기만 하면 왜 180도 바뀌는 걸까?


사실 그는 이전에 전자제품 A/S 방문 기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가 담당하는 지역은 터무니없이 반경이 넓은 반면,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턱없이 많았다. 동선을 고려해 담당 지역을 재배치해 달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지만 회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먼 거리를 오가며 일해야 했다. 하지만 고객이 기다리는데 늦었다가는 별점 만점(5점)을 받기가 어려워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는 "고객에게 별점 만점을 받지 못하면 반성문을 쓰고 급여를 삭감당했다"며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래도 그렇지 과속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지각으로 별점 만점을 받지 못해서 깎이는 급여 액수가 너무 커서, 차라리 과속딱지를 떼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심할 때는 한 달에 과속운전 벌금으로 70만 원을 낸 적도 있다고 했다. A/S 방문 기사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잘못된 운전 습관을 고치려 했지만, 여전히 과속하는 버릇이 남았던 것이다. 그 때서야 알게 됐다. 왜 A/S 기사님들이 설치나 수리를 마치고 나면 그토록 별점 만점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는지를.



별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별은 우리네 먹고사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잡플래닛에서 별점을 확인한 뒤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고, 퇴사를 하고 나서도 별점을 매긴다.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은 고객의 별점 평가가 곧 인사고과로 직결된다. 크몽과 숨고 등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도 별점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영업은 배달의 민족 등 플랫폼 별점에 따라 가게 매출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별이 주는 특별한 이미지라도 있는 걸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류 기업마저 별에서 이름을 따 왔다. 삼성은 쓰리스타, 엘지는 럭키골드스타다. 왜, 어떤 유명한 침대의 라디오 광고도 '별이 다섯 개!'라고 강조하지 않던가. 어릴 적부터 그 광고에 익숙해진 입장에서는 무슨 별이 다섯 개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회사도 별을 내세운 광고 카피 덕에 인지도가 높아졌다.


별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별점을 보고 구매 의사를 결정하고, 물건을 구입한 다음에도 별점을 남긴다. 중고거래를 할 때도 거래자가 얼마나 매너 있었는지 별점으로 평가한다. 여행을 가거나 음식점, 카페를 방문할 때도 별점을 확인하고, 택시를 타고 내릴 때도 별점을 남긴다. 영화와 웹툰을 볼 때도 별점으로 작품성과 흥행 여부를 가늠하고, 감상하고 난 뒤에는 점수를 매긴다. 스마트폰에서 온갖 앱을 설치하거나 지울 때도 별점과 리뷰를 남긴다.



너도 나도 별의 노예


요즘 '별점 테러'가 이슈다. 별점 테러란 일부 소비자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플랫폼에 악플을 남기면서 악의적으로 별점을 낮게 주는 것을 일컫는다. 어떤 진상 고객은 자신의 주문 실수를 가게 탓으로 떠넘기면서 별점 테러를 한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1점을 드렸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후기도 있었다. 자영업자 중 악의적인 별점 때문에 억울하게 폐업을 한 경우도 있다. 별점 테러에 시달리다가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이까지 생겨났다.


어느덧 별은 구매 의사결정의 키를 넘어 신종 갑질의 무기가 되었다. 동네 주민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별점 테러를 당한 자영업자도 있었다. 어떤 이는 여성 업주가 운영하는 매장을 찾아 별점을 빌미로 성희롱을 일삼기도 했다. 물론 고객만 별점을 악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근에 경쟁 매장이 생기자, 조직적으로 별점 테러를 해서 새로 생긴 가게를 문 닫게 만든 자영업자도 있었다. 기업도 별점을 무기로 노동자 위에 군림한다. 카카오택시는 고객의 별점에 따라 콜 배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콜센터 직원이나 A/S 기사들은 별점 만점을 받지 못하면 고객 만족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반짝이는 저 별은 과연 진실할까


별이 사람 잡는 세상이 되자, 별은 진실성을 잃게 됐다. 일부 가게는 품질 개선보다 별점 조작에 손을 댔다. 돈을 주고 별점 5점을 남겨줄 리뷰어를 구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들은 내부 직원들을 동원해 잡플래닛 별점을 조작하고 퇴사자가 남긴 1, 2점짜리 리뷰를 지우기도 한다. 너무 5점만 남발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테니 중간중간 적당히 4점을 넣어주는 요령까지 부린다. 별점이 몽땅 5점이어도 쉬이 믿지 못한다는 것만 봐도, 우리는 이미 별이 신뢰의 영역을 벗어났음을 잘 알고 있다.


별은 좋고 나쁨의 정도를  눈에 보여준다. 무언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걸리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여주니 참으로 편리하다. 헌데 바로 이것이 맹점이다. 눈에 보이는 별점 뒤에는 복잡한 맥락이 숨겨져 있는데, 별만 보다가는 내막을 이해하고 추론할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별점 테러와 별점 조작이 알려주듯, 별이 보여주는 평가란 진실과 괴리되는 측면이 있.  이런 평가가 나왔는지 직접 경험하거나 제대로 살펴보지 않을 경우, 거짓말에 속거나 상대방을 오해할 수도 있다. 분명 별점이 높은 맛집이었는데, 직접 방문해 보니 실망했던 적이  번씩은 있지 않은가.



"제 점수는요" 평가 이전에 떠올려야 할 것


물론 별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진상 고객이 있듯이 진상 사장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별점을 보고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되돌아보기는커녕 왜 별점을 낮게 줬냐며 고객에게 욕설을 하는 업주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낮은 별점을 남기는 이유는 다른 고객들이 자신처럼 피해를 입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군가가 남긴 유용한 리뷰로 도움을 받을 때도 많다. 별점이 마냥 악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가게를 방문했더니 남다른 친절과 정성, 특별한 품질에 감탄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그 가게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별점 5점과 함께 호평을 남기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고, 사회인이라면 마냥 회피해서도 안 된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나를 발전시키고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만, 평가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사람을 위한 수단으로 머물러야 한다. 평가 지상주의가 사람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순간, 본래 별점의 취지 또한 퇴색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별이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잡으면서 우리는 서로를 쉽게 평가하는 것을 버릇으로 들이고 말았다. 이제는 별점을 매기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고려하고, 별점만 보고 섣불리 단정짓기보다는 속 앓는 이웃의 처지와 숨은 맥락을 살펴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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