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안다는 착각이 낳은 비극
애매한 지식은 위험하다. 어느정도 안다는 생각에 더 알아볼 의욕을 잃고 자신이 아는 정도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는 편협하고 그릇된 시각을 갖게 만든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가족들이 그랬다. 흔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으로 가족을 꼽는다. 그러나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쟤는 원래 저랬어"라는 자기 확신으로 소통의 장을 닫는 것. 가족들은 이런 생각으로 절연의 위기까지 갔다.
김은희는 김은주의 차가운 모습에, 김은주는 김은희의 책임감 없는 회피성 때문에, 이진숙은 김상식의 폭력적인 모습에, 김상식은 이진숙에 대한 일방적인 오해로 더는 연을 이을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그들을 회복시킨 건 서로에 대한 탐구와 그로 인한 더 많은 지식이었다.
그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김은희는 자신을 낮춰보던 버릇을 버렸고, 김은주는 타인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이는 관계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함께 가졌기 때문이다.
자매인 두 사람은 수년간 연락하지 않았다. 김은희가 김은주에 실망하며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것. 김은주 역시 애써 연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절연한 상태로 지냈다. 시작은 김은주에 대한 김은희의 오해였다.
김은희는 9년 사귄 남자친구가 3년 넘게 바람 피운 것을 알게됐다. 심지어 세컨드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분노했다. 가장 친한 친구 박찬혁까지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에 혼자 견디기 힘들어진 김은희는 김은주를 찾아갔다. 그러나 김은주는 평소와 같이 차갑고 이성적인 태도로 질책과 해결책을 내놓았다. 김은희를 위로하지 않은 것. 공감을 바랐던 김은희는 화를 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락을 끊었다.
김은희의 애매한 지식은 김은주가 피도 눈물도 없이 이성적이기만 하다는 것이다. 자신에 애정을 갖고 공감하고 위로해주기 보다는 자기 입장에서 맞는 말만 늘어놓는다는 것. 그러나 당시 김은주는 유산을 해 자기자신도 힘든 상태였다. 김은희의 회피 성향을 걱정하며 늘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김은주의 상황과 마음을 모른 김은희는 김은주에 실망 밖에 느낄 수 없었다.
김은주의 애매한 지식은 김은희가 힘든 상황을 회피하며 밝은 척 하고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다. 그런 김은희가 답답하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 늘 조언하고 도와줬다. 그러나 김은희는 어릴 때 엄마인 이진숙이 자신을 데리고 가출한 것을 기억하며 또 언제 버려질 지 몰라 예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회피와 밝은 척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김은주는 이를 알지 못했다.
둘의 화해는 결국 대화를 통해서였다. 김은희는 김은주가 남편 김태형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흔들리는 것을 봤다. 김은주는 차갑고 가시 돋힌 말로 김은희를 밀어내지만 김은희는 끝까지 옆에 있어줬다. 김은주가 차갑기만 한 냉혈한이 아니라는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애매한 지식이 더 큰 지식으로 나아가며 상황이 해결됐다.
이진숙과 김상식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억측으로 틀어졌다. 김상식은 고졸인 자신을 대졸인 이진숙이 부끄러워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진숙이 유명한 화가인 김은주의 친아버지와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열등감과 질투심에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진숙은 다른 남자의 아이인 김은주를 임신한 채로 김상식과 결혼했었다.
이진숙은 김상식이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평소의 절반 정도인 월급을 줬으며 종종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오해가 쌓여 이진숙은 김상식에게 졸혼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은 100% 오해였다. 이진숙은 김상식을 제외한 남자와 연락한 적 없었다. 특히 김상식은 정황도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 이진숙을 오해했다. 이에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김상식의 달라진 행동은 자신이 저지른 사고 때문이었다. 김상식은 교통사고로 한 노인을 죽게 만들었다. 이에 노인의 어린 손자가 홀로 남았고, 김상식은 죄책감 때문에 이 아이를 책임지게 됐다. 그러다보니 이진숙이 있는 가정에는 소홀해진 것. 이진숙이 생각하는 여자 문제는 없었다.
두 사람의 오해는 김상식의 반성과 고백으로 풀렸다. 김상식은 불의의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22살로 돌아간 김상식은 이진숙과 아무런 오해가 없던 때, 이진숙을 애타게 사랑하던 때만 기억했다. 그래서 해맑은 모습으로 이진숙을 대했다. 이에 이진숙은 불편해했다. 그러다 기억이 돌아오며 자신의 잘못을 하나 둘 깨닫게 되고 이진숙을 떠나주기로 결심했다. 이진숙은 달라진 김상식의 행동과 서로에 대한 오해를 알게 되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22살로 돌아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았다.
가족들은 관계 회복뿐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기도 했다. 관계란 타인과 나의 연결점이다. 관계를 돌아본다는 것은 타인을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나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 가족들은 다시 뭉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김은희는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살았다. 자신보다 남들을 더 위하며 미움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둥근 세상을 사는 게 꿈이었던 김은희는 더 큰 목표가 없는 자신을 더욱 낮췄다. 그래서 꿈도, 사랑도 포기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았다.
그러나 자신의 단점을 돌아본 김은희는 과감하게 출판사 일을 그만뒀다. 자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 플랜B인 출판사에 일했던 김은희가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은희는 짝사랑하는 상대를 높이며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버릇도 고치게 됐다. 박찬혁과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며 호감도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부정하고 회피했다. 그러나 자신의 회피성향을 깨달은 김은희는 박찬혁과 연인 관계를 시작했다. 동료의 "너는 너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더 잘하는 경향이 있더라"라는 말을 듣고는 박찬혁에게 달려가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족의 발전을 이룬 김은희였다.
김은주 역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이혼을 택한다. 안락한 삶을 버릴 수 없던 김은주는 남편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도 결혼생활을 이어가려 했다. 결혼은 장녀로서 집안을 책임졌던 김은주가 집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김은주는 의사 남편과 좋은 동네,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애쓰는 가족들, 그리고 이 삶에서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김은주는 결국 이혼을 택했다. 당위가 아닌 감정을 향해 살기 시작한 것.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게 된 김은주였다.
애매한 지식은 위험하지만 완전한 앎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갖고 더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제목 그대로의 전개를 보여준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관계의 기본을 알려주는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