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말로 풀어낸 청춘 이야기, '청춘'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청춘을 노래하는 드라마는 많다. 2017년 방영됐던 KBS 2TV '쌈, 마이웨이'는 지금까지 회자될 만큼 인기였다. 꿈을 위해 힘든 삶을 견디다가 우회로라마 꿈을 이루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다. 그러나 '쌈, 마이웨이'가 회자되는 이유는 주인공 고동만(박서준 분)과 최애라(김지원 분)의 애정 장면이다. '로코 장인' 박서준의 설레는 연기에 주목한 것. '힐링 청춘'이라는 장르가 무색할 정도다. '쌈, 마이웨이'가 잘못돼서일까.
그건 아니다. 청춘 드라마의 한계에 더 가깝다. 청춘 드라마는 대부분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 그로 인해 얻는 성과'로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힘든 환경'을 설정해야 하고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혹은 성공하기 어려운 분야를 주로 다룬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좋은 학벌, 좋은 집안은 성공과 직결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쉽게 성공해 악역으로 등장하던 이들이 청춘드라마 주인공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 그러니 드라마 속 청춘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현실 고증을 못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면 배경이나 조건을 떠나 청춘이 겪는 심리에 집중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런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왔다. '지금은 힘들어도 노력하면 결국은 잘 될 거다'라는 메시지는 이제 식상하고 더이상 시청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드라마 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노력을 하는 주인공들은 결국 성공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력을 해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결국 드라마 그 자체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청춘기록'이 나왔다. 그런데 '청춘기록'은 이때까지 있었던 청춘 드라마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형태를 풀어냈다.
사혜준은 정상을 찍은 7년 차 모델이다. 그러나 경호원, 식당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그마저도 제대로 일당을 받지 못했다. 안정하 역시 대기업에 다니다 퇴사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시작했다. '대기업'이라는 타이틀로 능력을 인정받은 후 꿈을 위해 바닥부터 올라간 것. 그러나 자신을 질투하는 상사에게 갑질 당하며 힘든 매일 보내고 있다.
사혜준은 언뜻 보면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모델은 패션쇼는 커녕 화보도 한 번 찍지 못해 어려움을 겪지만 사혜준은 7년 경력을 쌓고 탑모델이 됐다. 사혜준이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는 그를 따라다니는 팬들이 넘친다.
안정하 역시 언뜻 보면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대기업이라는 안정적인 곳을 버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는 꿈을 위해 도전한 것.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라는 암묵적 진리가 안정하에게는 통하지 않아 보인다. 현실을 버리고 이상을 좇을 만큼 멘탈이 단단한 것 같이도 보인다. 그런 사람에게 잠깐 힘든 현실은 아무렇지 않을 것 같고, 언젠간 성공할 것처럼도 보인다.
'청춘기록'은 이렇게 언뜻 보면 성공한 것 같은, 행복할 것 같은 이들의 힘든 현실을 그렸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힘들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차별화 요소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디테일로 만든 차별점이다.
'청춘기록'의 또 다른 차별점은 사혜준이 변할 것을 암시했다는 점이다. 사혜준은 바르고 곧다. 그래서 정의롭지만 그래서 부러져왔다. 꿈을 위해 노력하며 꼼수는 부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지는 못했다.
사혜준은 7년 일한 소속사 사장과 언쟁을 벌이다 현실을 모른다는 식의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화가 난 사혜준은 소속사 사장에게 주먹을 들었지만 곧 내려놨다. "내가 당신을 때리지 않는 건 때릴 가치가 없어서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배우가 될 때까지 스폰해주겠다던 디자이너 찰리정의 제안도 거절했다. 5년 전부터 한결같이 사혜준에 구애하던 찰리정, 군대 영장과 오디션 탈락 등 사지에 몰린 사혜준에게 달콤할 수 있는 제안이다. 그러나 사혜준은 끝가지 거절했고, 찰리정도 사혜준에게 현실을 모른다며 폭언을 쏟아냈다.
그러던 중 사혜준은 영화 오디션에서 자신이 친구 원해효보다 더 높은 호응을 받았지만 SNS 팔로워 수 때문에 밀렸다는 사실을 들었다. 인지도에 밀린 것. 사혜준은 '비교하며 경쟁하지 않는 걸 좋은 성품이라고 속였다'라고 혼잣말하며 변화 할 가능성을 드러냈다.
흔히 청춘드라마 주인공은 정의롭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진 않는다. 사혜준 역시 그랬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을 알리려 최선을 다해야 성공한다. 사혜준은 그런 현실에 맞춰 변화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기존 청춘드라마와의 차이점이다.
안정하는 사혜준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후 대화까지 이어가는 '계 탄 덕후'가 됐다. 안정하는 사혜준의 덕후다. 상사에게 이유 없이 갑질을 당해 힘들 때, 안정하는 사혜준의 사진을 보며 "오늘 하루도 너 보면서 버틴다"라고 혼잣말 할 정도로 사혜준에 호감이 크다.
그런 안정하는 패션쇼에 출장 나갔다 사혜준의 메이크업을 담당하게 됐다. 가까이서 보는 걸 넘어 작은 스킨십까지 할 수 있었던 안정하는 계탄 덕후가 됐다. 그러나 안정하의 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정하는 또다시 상사에게 갑질을 당했고, 혼자 복도로 나가 사혜준의 사진을 보며 혼잣말했다.
그때 사혜준이 등장하며 "내 팬이었어요? 나 좋아했어요?"라고 물었다. 얼마나 설레는 장면인가. 심지어 사혜준은 안정하가 자신과 동갑임을 알고 친구하자고 했다. 이를 안 원해효는 패션쇼 끝나고 같이 밥 먹으면서 스포츠 경기를 보자고 제안했다. 힘든 일상 속 작은 판타지를 선물하며 극의 재미를 끌어올린 '청춘기록'이었다.
조금은 촌스러운 장면들, 비현실적인 대사 티키타카(누가 현실에서 그렇게 말을 주고받을까) 등 어색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정이 좋은 드라마 '청춘 기록'. 현실 청춘들의 공감과 호응을 받을 수 있을까. '청춘기록'이 보여준 디테일이 어떤 전개를 이끌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