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Mar 03. 2020

영화 <정직한 후보> 후기

한국의 선거판을 가볍게 풍자한 영화

세계적으로 좋지 않은 시기에 개봉 날짜가 잡혀, 1주일 개봉이 미뤄진다는 말도 있었으나 본래 예정대로 개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타격을 받긴 했겠으나 오히려 그대로 진행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정직한 후보> 메인 포스터

개봉 전부터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갔었다. 기대를 넘어서지는 않았으나, 기대에 못 미치지도 않은 영화,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한국의 선거, 혹은 정치계를 잘 보여주면서도 콕 집어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문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며 전체적인 양상을 잘 드러냈다 생각한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단 14일 남은 시점에서 시작한다. 배우 라미란이 맡은 주인공, '주상숙'은 젊었을 적엔 정의감에 불탄 진짜 '정직한' 사회운동가였으나 현재는 별의별 부정부패를 저지르며 참 많이도 해 먹은 한국의 정치인이다. 온갖 입바른 소리와 마음에도 없는 말들로 사람들에게서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해 움직이고 심지어는 대국민을 상대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실상이다.


상숙은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의 염원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영화의 스토리가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고 간 터라 거짓말을 못 하게 된다는 설정을 알고 봤는데, 그 내용이 나오기까지 앞부분이 조금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당 설정을 알고, 거짓말쟁이였던 정치인이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장면들을 보러 갔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장면들이 꽤 시간이 지나야 등장한 게 조금 아쉬웠다. 물론 여러 인물의 성격이나 상황, 배경 설정을 보여줘야 했고 너무 루즈하다고 느끼기 전에 넘어갔기 때문에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또한 상숙이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고 재미있어서 앞부분이 길어진 점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무엇보다 재밌다고 느꼈던 점은 상숙 본인이 과거를 직접 밝히면서 범죄라고도 칭할만한 일들이 드러나게 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솔직하고 이제껏 본 적 없는 정치인이라며 더욱 좋아하던 부분이었다. 자서전을 대필시키거나 공약이 거짓이었던 것이 드러난다면 솔직히 반감을 가질 것 같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상숙을 좋아하는 장면들로 상숙의 인기를 부각시킨다. 인기가 더 큰 인기를 불러오듯 말도 안 될 정도록 많은 사람들이 쉽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모습이 그저 유행을 좇는 사람들로 비치기도 했다.



영화 <정직한 후보> 캐릭터 포스터 (상숙과 옥희, 희철, 만식, 은호)

<정직한 후보>는 주인공 주상숙과 조연들의 케미가 특히나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주상숙을 키운 할머니 '김옥희', 바로 곁에서 보필하는 '박희철', 주상숙의 남편 '봉만식'과 아들 '봉은호', 그 외의 4번 후보였던 '남용성'이나 상숙을 뒤에서 봐주던 '김상표', 3번 후보였던 '신지선', 만식의 어머니까지 많은 조연들이 함께해서 더욱 재미가 가미된 영화였다.

희철은 어릴 적부터 상숙을 지지하며 보좌하던 인물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도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숙을 믿고 따르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희철이 상숙을 따르게 된 계기가 대사로만 잠깐 나온 데다 그마저도 가볍고 웃기게 넘어가서 크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다른 장르의 영화였다면 그 내용만으로도 깊은 스토리를 다루지 않았을까 싶었다.

남편 만식은 사실상 집에서 놀고먹는 백수지만 상숙의 당선을 위해 그래도 옆에서 많이 도와주는 모습을 보였는데, 상숙이 거짓말을 못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티키타카가 특히나 웃음을 주었다. 만식이 김장을 하러 가기 전 계속 백수라고 말하는 모습이나 시어머니가 더 이상 못 오게 되었을 때의 상황, 그리고 아들까지 합세하여 함께 돈을 달라고 하는 장면까지. 예상치 못한 대사와 배우들의 빠른 호흡이 착 맞아 떨어지는 장면이 많아 영화의 재미를 한껏 높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대선 후보 3번이었던 지선은 과거의 상숙처럼 비리를 캐내려 하고 부당한 일들을 밝혀내려는, 후보들 중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정직한 후보이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상숙이 썼던 가발과 같은 가발을 쓰고 등장하여 상숙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은 깨달음을 얻고 다시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으로 돌아왔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지선처럼 권력을 얻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쉽게 변질될 수 있고 다시 예전처럼은 돌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주상숙의 당 이름은 대한당, 당 색은 보라색이고 당 마크는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이용해 만들었다. 특정한 당이나 정치인을 뜻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모든 인물과 상황을 아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한 데 묶어 보여주고 있다고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있을 대선 선거에 맞춰 사람들에게 재미와 풍자를 함께 느끼게 해 줄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하는데, 좋지 못한 상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누군가는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가 없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특정한 사건을 지칭하며 비판하는 영화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어둡고 잔혹하게 실상을 파헤치기보다 가볍지만 재밌게 풍자하며 즐길 수 있는 <정직한 후보>를 추천해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작은 아씨들>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