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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n 18. 2020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후기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메인 포스터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는 거의 2시간이 다 되는 러닝타임임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였다. 또한 인물 간의 관계에 있어 내 예상을 많이 빗겨나가는 영화였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스틸 이미지 (매기, 그레이스, 데이빗)


주인공 '매기'는 세계적인 슈퍼스타 '그레이스'의 비서로 3년간 일을 해오며 틈틈이 프로듀싱을 독학한다. 그레이스의 곡을 나름대로 믹싱하여 프로듀싱해 봤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매니저 '잭'이 몇 달간 공들인 프로젝트를 망친 초짜가 되었을 뿐이다.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던 상황에서 우연히 마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데이빗'을 만나고, 그의 곡을 프로듀싱하게 된다. 자신이 프로듀서라고 속이면서.



이 영화에서 매기라는 인물은 사실 소위 말하는 '발암 캐릭터'로 보일 수 있다.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온 데이빗을 속여 프로듀서 행세를 한 데다 그레이스의 오프닝 무대에 데이빗을 그조차도 모르게 몰래 세우려다 무대 자체를 망치게 된다. 그레이스의 곡을 멋대로 믹싱한 것도 모자라 그레이스에게 당연히 신곡을 내야 한다며 팬심을 가장한 설교를 늘어놓기까지 한다. 실제로 매기는 그레이스가 과거의 곡을 뛰어넘는 신곡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레이스에겐 그저 성공을 향한 디딤돌로 이용하려는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매기와 그레이스 모두 이해되었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캐릭터 포스터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나이와 인종, 성별을 무시하고, 열정과 젊음의 패기만으로 무작정 일에 뛰어들기엔 너무 많은 경험을 해버렸다. 그녀가 직접 겪어 온 삶이 그녀를 겁쟁이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안전하고 쉬운 길을 제시하는 잭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신곡을 쓰고 싶어 가사를 끄적이고, 결국 또다시 두려움에 가로막혀 괴로워하는 그레이스가 이해되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면, 그것도 직전에 실패했던 일을 다시 성공하려 한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더라도, 혹은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욱이 큰 용기가 필요할 테니까.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캐릭터 포스터 (매기)

반면 매기라는 캐릭터 역시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물론 매기가 앞뒤 안 가리고, 주변 사람들은 생각도 않은 채 일을 벌인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나는 매기의 행동에 공감이 많이 가기도 했다. 그건 아마 내가, 그리고 내 친구들이 현재 '사회 초년생'이라는 타이틀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기는 세계적인 대스타와 함께 일하며 이미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자신 역시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막상 무언가 해내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 뿐이었고, 그 분야의 선배가 보기에는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프로듀싱을 해본 경험이 없는 매기는, 프로듀서가 단순히 곡을 멋있게 믹싱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를 믿고 신뢰받는 역할이란 것을 뼈아픈 실수로 배운다. 그레이스와 데이빗의 신뢰를 잃는 실수로 말이다.

이런 장면들이 이제 막 사회에 나가 회사일을 배우고 혼나고 실수하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업에 물들어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스틸 이미지 (그레이스, 잭)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에서 가장 놀라웠던 캐릭터는 사실 잭이었다. 초반에 나는 잭을 오해한 채로 영화를 지켜봤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아티스트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인물인 줄 알았다. 또한 그와 함께 일한 아티스트인 그레이스는 그에게 속고 있으며, 어릴 적부터 이제껏 함께 일해 온 정이 눈을 가려 그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매기가 잭의 실체를 그레이스에게 밝히며 결국 잭과는 이별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영화를 봤었다.

그러나 잭은 힘들게 활동했던 그레이스가 이제는 편안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생각했던 거였고, 그의 말과 태도가 가벼워 보였을지라도 그것이 정말 그레이스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레이스의 입장에서는 히트곡을 다시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잭이 원망스럽고 씁쓸할 수도 있었을 텐데, 힘들게 활동해 온 그레이스 역시 잭을 이해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내 예상보다 복합적인 모습에 놀라웠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스틸 이미지 (그레이스, 매기)


또한 매기와 그레이스의 관계가 구축되는 전개도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영화임을 보여주었다. 3년간 함께 일해온 만큼 친분이 많이 쌓였을 거라 예상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사이 좋아 보이는 장면들이 나오다가도, 그레이스는 매기의 성조차 모르는 그저 비즈니스 관계임을 보여준다. 매기는 그레이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레이스는 매기에게 프로듀서의 꿈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관계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매기의 실수와 그레이스의 깨달음으로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하게 되는 과정이 단편적이지 않고 두 캐릭터의 내면을 깊게 다룬 점에서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에서 정말 놀랐던 것은, 이 점은 아마 영화를 본 모두가 놀랐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마지막에 나온 반전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설정이었는데, 영화를 다시 되새겨보니 몇몇의 장면들이 복선이었나 하고 깨닫는다. 데이빗이 떠난 어머니 얘기를 하는 장면이나, 연예계 뉴스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그레이스를 소개하는 장면들이 그랬다. 갑작스러운 반전에 놀라우면서도 그러한 반전이 있어서 이 영화가 더욱 꽉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스틸 이미지


사실 음악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음악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데, 영화에 나온 모든 음악들로 귀 호강을 할 수 있었다. 제작한 사람들조차 음악에 감동받을 거란 자신이 넘칠 만큼 좋은 음악들이었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엔딩 크레디트 맨 마지막에 음악 때문에 자리에서 못 일어날 거란 확신을 했겠나. 

개인적으로 내가 팝송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이 영화를 좀 더 즐길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영화 속 대사에 나온 수많은 곡들과 아티스트들을 그저 흘려들을 수밖에 없던 것이 안타까웠다. 반대로 팝송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공감하며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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