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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Feb 22. 2022

해답은 자존감에 있다

 고속도로에 갇혔다. 5시간째다. 귀경길의 도로 정체란 대한민국 설 명절의 연례행사건만, 온종일 내리는 가루눈 탓에 운치와 습기가 한데 뒤섞여 뒤죽박죽이다. 카시트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세 살배기 딸아이는 안전벨트가 답답하다며 칭얼대고, 운전대 위에 할 일없는 두 손만 올려놓은 채 멍하니 앉아있는 남편은 라디오 볼륨을 올린다. 


 경제 전문 프로그램에서는 주식 예찬론이 한창이다. 두 패널이 종목 평가에 열을 올리다 한 채널이 불현듯 젊은이들의 경제 교육 세태를 탄식하더니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는다. 지방대 특강기다. 자신 같은 전문가가 아는 지방대 교수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KTX를 타고 지방대까지 갔더니, 강의 시작도 전에 1/3은 엎드려 있고, 2/3는 핸드폰만 보고 있더라는 이야기에 상대 패널이 깔깔댄다. 개중 자기 이야기를 경청한 몇몇이 부자가 되리라는 자화자찬 끝에서, 나는 이 몇 분짜리 경험담 속 ‘지방대’라는 단어의 언급 횟수를 헤아려본다. 지방대까지 갔더니, 지방대 교수가, 지방대까지 거리가, 지방대 학생들이, 이러니 지방대의 미래가…. 자칭 전문가의 우스갯소리 아래 그의 고정관념이 불투명한 농도로 비친다. 


 ‘지잡대’라는 혐오표현이 하나의 일반명사로 자리잡아버린 사회에서 지방대 출신들이 당당히 학벌을 밝히긴 어렵다. 그나마 의대나 교대, 일부 사범대 등의 특수계열이면 또 모를까, 대다수 지방대 출신들은 학교를 물으면 그냥 집 근처 다녔어요, 얼버무리거나 아예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청년들이 주 사용자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한두 번쯤 ‘이 대학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마주한다. 질문의 대상에 내로라할 명문대가 오르는 일은 없다. 어중간한 서열의 수도권 대학들이나 지방 국립·사립 대학들이 주를 이룬다. 곧 어김없이 조롱, 암울한 미래에 대한 노스트라다무스적 예언, 통계에 근거한 체념 권고로 주를 이룬다. 


 지방대 혐오는 지방 혐오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인구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서울권 대학에 가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게으르다, 노력이 부족하다, 무식하다는 사회적 평가가 형성된다. 갓 스무살이 된 학생들에게 대학 이름이 고기 등급표처럼 따라붙는다. 사회 전반의 계급을 형성하는 ‘사다리 걷어차기’ 공작들에, 학벌은 지대하게 공헌한다. 각종 자격증과 경력으로 덧대어보아도 지방대라는 출신성분이 붙어있는 한, 기껏해야 ‘용쓴다’는 비웃음이 따른다. ‘학력과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 남녀, 종교, 연령과 같은 엄연한 인간 차별 행위이고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외침은 ‘노력 부족’이라는 신랄한 비판으로 되돌아온다. 고작 스무 살을 경계로, 이전의 선택이 이후의 노력을 모두 부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가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사회 인식의 확산은 지방대 출신들의 자존감 하락을 넘어 패배의식의 팽배로 이어진다. 매해 대입 인구 중 지방대 비율을 고려할 때, 청년층 중 약 65%가 학벌로 인한 사회적 소외에 시달리게 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처럼 인서울 명문대 입학 여부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세태 속에서 청소년들의 지방대 혐오도 커진다. 결국 지역 우수 인재들의 이탈을 기반으로 지방 발전 하락과 사회 불균형 조성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탈하지 못하고 지방대에 남겨진 이들은 체념에 적응한다. ‘출신 성분’의 도달이 허용되는 사회적 자격의 한계를 규정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바라보는 상민들처럼 대기업 공채를 선망하며, 평등의 마지막 보루인 공무원 시험으로 몰려든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 자격증으로 전락한 지금, 지방대는 곧 ‘공무원 시험 응시 자격증’ 정도로 취급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방대 위기에 대한 성토는 십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고 했던가. 학령인구가 급속히 감소하며 지방대 정원미달이 속출하는 지금 위정자나 전문가들은 해외 우수 사례들을 근거로 지원 확대이니, 대학통합네트워크니 대책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지방대 편견과 지방대 출신들의 패배주의가 유전되는 한 기계적인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대, 그리고 지방대 출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이십 년 남짓의 시간이 일구어낸 학벌 따위가 남은 내 인생을 결정할 수 없으리라는 자신감의 근간이 절실하다. 지방대생은 명문대생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모두가 기회와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는 사회적 인식을 확장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지방대 자존감 향상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지방대 출신 성공 신화부터 블라인드 채용을 통한 지방대 출신들의 취업률 향상 등과 같은 객관적 사례 적립이 필요하다. 지방대 출신들이 지레 겁먹어 패배주의에 매몰되지 않도록, 기회 평등의 심리적 수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게임의 자잘한 규칙 따위가 아닌 게임 그 자체를 바꾸기 위해, 이제 시선의 방향을 달리해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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