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건조해지자 손톱 주위에 다시 거스러미가 일기 시작했다. 한창 유행인 네일아트나 손톱관리와는 인연이 닿은 적 없는데다 물어뜯는 버릇을 여태 고치지 못해 고운 데 하나 없는 손가락들이거늘, 새까만 반점처럼 피어오른 거스러미들이 고난의 역사를 더해주고 만다.
“손만 보고 있으면 한 20년 간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고 산 사람 같구먼.”
엄마의 핀잔에 울컥하는 것도 잠시, 다른 일에 집중하며 내 흉측한 손 따위 잊고 있던 나는 문득, 내 입이 손톱 거스러미를 잘근잘근 뜯어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검지와 중지 손가락은 무리하게 뜯어낸 탓에 실선처럼 피가 비치고, 방금 뜯어낸 왼손 약지는 방금 뱃속을 갈라낸 연어마냥 새빨간 핏방울들을 뱉어내고 있다.
아차-싶으면서도 어느새 남은 거스러미까지 모두 뽑아낸 나는, 저녁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싸아한 고통에 신경을 기울이다 신경질을 토해낸다. 조금 전까지 넘기던 책장 군데군데 묻은 피가 곰팡이처럼 굳어가는데다 그 찰나의 해찰이 불과 몇 분 전까지 머릿속에서 부유하던 모든 지식들을 깡그리 앗아간 탓이다.
손톱 물어뜯기만이 아니다. 그리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수년 혹은 수십년 째 고치지 못하는 ‘습관’들이 내게는 몇 개나 있다. 한 번 호되게 변비를 앓은 뒤로 매일 영양제마냥 변비약을 삼키고,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생각나지 않거나 당황할 때면 윗니로 혓바닥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좋은 습관들도 있으련만, 실컷 나쁜 습관들을 행하고 나면 나 자신이 ‘나쁜 요소들’로만 이루어진 오물덩어리인 것만 같아 자괴감에 휩싸인다. 혹은 AI라도 된 양, 저 멀리 어디선가 나의 몸을 누군가가 조종하는 듯한 망상으로 도피할 때도 있는 것이다.
‘습관’이란 흔히들 ‘나 자신과의 투쟁’이라고 한다.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는 삼시세끼를 챙겨먹고 유산소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의지력을 발현하라는 충고들을 해마다 몇 번씩이고 찾는다. 책에서, 방송에서, 유튜브에서, 하다못해 블로그에서도 이렇게나 ‘떠먹여주는데도’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없다면, 이이는 ‘예견된 실패자’라는 매서운 호령도 수십 번 수백 번 마주한다.
그러나 초조함도 그때뿐. 잠시 떠나는 듯했던 ‘내 나쁜 습관들’은 예고도 없이 쳐들어온 친척들마냥 불편한 동거를 강요한다. 나는 다시 반복 명령만을 수행하는 로봇마냥 나쁜 습관에 지배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한다. 신랄한 자기반성과 습관화된 무기력이 공존하는 기묘한 삶이 지금의, 그리고 이제까지의 나 자신임을 인식하면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나는 올해도 새로운 다이어리 첫 줄에 이렇게 적었다. 손톱 물어뜯지 말기, 하루에 한 페이지씩은 글로 생각을 정리하기, 혓바닥 씹지 말기…. 고작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내 손톱 사이에는 피가 맺혔고, 생각의 편린들은 불규칙적인 문장들로 정리되다 그마저도 사라졌다. 혓바닥 위 이빨 자국들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쓴다. 손톱 물어뜯지 말기. 글로 생각 정리하기. 혓바닥 씹지 말기. 작심삼일이 문제라면 사흘마다 작심삼일을 하면 된다는 어느 우문현답처럼, 이번에는 나의 짧고 빈약한 의지력을 새로 세워보기로 결심한다. ‘작심삼일 반복하기’. 꽤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