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보면 앙증맞은 하트 옆에 숫자가 붙는다. 내 게시물을 몇 명이나 좋아하는지 누구나 볼 수 있다. 남의 시선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나이지만 숫자가 초라하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무심한 척해도 나 또한 타인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나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밉기도 했다. 왜 부와 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시물에 어마어마한 사랑을 주는 걸까? 행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꼭 남에게 확인 받아야 하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이 또한 무능력한 사람의 합리화는 아닐까 번번이 기가 죽었다. 아무리 내게 좋은 것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이 가닿지 않는다면 의미라는 날개가 돋치기나 하겠는가.
인스타그램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졌다. 이상했다. 웃음이 전염되듯 행복도 전염되는 거 아니었나? 행복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것인가? 다른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보는데 왜 나는 점점 심사가 꼬이고 울적해지는 걸까? 그러면서도 왜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몇 시간씩 매여 눈빛이 흐릿해지는 걸까? 이 정도면 자학 중독이었다.
인스타그램은 비교를 조장한다. 누가 더 돈이 많은가. 누가 더 잘생겼는가. 누가 더 행복한가. 그러다 결국 ‘나는 왜 저렇게 살 수 없을까.’에 다다른다. 사실 그렇게 살 며리가 없는데도 그렇다. 비교 속에서 우리는 각자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비교할 수 있는 가치에 더 환호하는 법이니까. 토너먼트 방식으로 최강자를 가리고 피라미드 계급을 나누고 이 모든 과정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너나없이 비교에 열을 낸다.
어느 순간 조회수나 좋아요 수가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 속 화폐로 보였다. 그렇게 치면 나는 극빈층이었다. 그러면서도 어처구니없게 남을 저울질했다. '음, 이 사람보다는 저 사람이 더 예쁘지.'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속에는 나 같은 사람이 차고 넘쳤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사람들의 관심은 아주 값비싸다.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관심 받을 만한 것이 없었다. 나 같아도 나에게 '좋아요'를 눌러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남에게 '좋아요'를 누르는 것 뿐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람들의 관심이 값비싸다면 내 관심도 그만큼 값비싼 거 아닌가?
내가 가진 게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니었다. 나는 가장 막강한 권력인 관심을 내 의지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였다. 그동안 봐온 그 어떤 대상보다 내 관심 자체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주체가 될 수 있는데도 객체만 자처했으니 정말이지 까막바보가 따로 없었다.
심장근과 달리 안구 근육은 수의근이다. 즉 의지대로 움직인다. 관심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부분에 눈길을 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해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사실 우리가 엿볼 수 있는 타인의 삶은 온통이 아니라 한 귀퉁이일 뿐이다. 보기 좋은 부분만 보이도록 슬며시 각도를 틀어놓는데 당연히 보기 좋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당신의 삶이 초라해 보인다면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는 각도로 보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살짝만 카메라 각도를 바꿔도 사진 속 인상이 달라지는데 삶이야 다를라고?
요기조기 꼼꼼히 살펴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못난 사람은 아닌 성싶었다. 물론 자산 규모나 학벌, 외모로 본다면 못난 사람이 맞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 예컨대 누구에게나 장점이나 매력을 발견하는 능력, 남을 이기려들기보다 공동체 정신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을 본다면 암만해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면은 절대 숫자로 환원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란 걸 설득하는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다들 알지 않은가. 삶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한때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은 살아 나와야 하는 곳이었다. 삶은 인스턴트가 아니기에 일상에 지나친 공정은 필요 없다. 이제 나는 일상의 행복을 인스타그램에 전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관심 없이 혼자서도 그것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정을 없애지는 않았다. 가끔 들어가서 몇몇 게시물에 하트를 눌러준다. 관심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