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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8. 2024

사라지지 못하고 남아버린 어떤 말에 대하여.


        아주 오래전, 친구들과 그 당시 ‘핫’하다는 사주 카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신점을 제외하고 사주나 타로는 종종 보던 때였다. 보통 사회생활 3,5,7,9년 차에 슬럼프나 권태기가 찾아온다고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때가 딱 일을 시작하고 한 3년쯤 됐을 때였다. 처음으로 슬럼프를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날의 일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하는 이유는 용하게 잘 맞췄다거나, 내 미래를 아주 기분 좋게 풀이해 줘서는 아니다. 그가 풀이를 끝내고 마지막에 내게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희망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도 않은 묘한 뉘앙스의 말이었다.     


        작가 팀을 세팅할 때 ‘경력’을 최우선으로 보기는 하지만 혼자서 맡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같이 합을 맞추는 팀원들의 나이가 ‘내림차순’이 되도록 고려한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는 ‘나이’가 경력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시작이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되었다. 나로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원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을 더 기다릴 것이냐, 일단 빨리 일을 시작할 것이냐. 워낙 알음알음으로 일을 하는 분야고, 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곳의 구인은 몹시 드물었다. 자리가 난다고 해도 그것이 내 자리가 된다는 보장은 더더구나 없었다. 때를 더 기다리기만 하면 나이만 많아지는 입장이었기에 일단 일을 시작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다음에는 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갈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면서... 그렇게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내 이상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러 있었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돌파구를 사주에서 찾아보려 했다.     


         ‘연애는 어때요?’     


        분명 일 때문에 찾아간 사주카페였는데 뭐가 궁금해서 왔냐는 그의 질문에 냅다 연애 운부터 물어봤다. 열심히 사주를 풀던 그는 되레 나에게 물었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어요?'


        이미 사주 카페를 좀 다녀 나름 ‘짬바’가 있었던 나에게 그의 첫 질문은 아주 신선했다. 그리고 1초쯤 고민하다가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자기는 남자를 잘 만나서 사주팔자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어요'라는 그 말을 시작으로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대충 나는 신데렐라가 되길 꿈꾸는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남자를 1순위에 두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긴 했는데, 돌려서 말했을 뿐 결론은 내 사주에는 남자가 없다는 말이었다. 원래 목적이 그 질문에 있지 않았던 만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 오려했던 이유를 챙겨 일에 관해서도 물었다. 일의 부침이 있기는 할 테지만 사람 복이 있어서 지인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먹고는 산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요. 앞으로도 잘 버텨봐요’     


        이것이 단순히 남자가 없는 삶을 잘 버티라고 한 말인지, 앞으로 헤쳐나갈 일을 두고 한 말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지금까지 버티는데 상당히 의지가 된 말이기는 했다. 하하하. 그때는 그가 던진 질문의 덫에 빠져 그의 대답 가이드라인을 내가 짜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내가 만약 ‘네, 신데렐라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면 그는 뭐라고 했을까 궁금해진 것은 더 이상 사주나 타로를 보지 않기로 결심할 즈음이었다.

     

        미래는 잘 못 맞힌다고 하던데 신기하게도 그의 말이 다 맞았다. 연애 문제 있어서도, 나의 일에 있어서도. 정말 내 사주 때문에 일이 이렇게 풀린 것인지, 아니면 그때 내 사주를 같이 들은 친구들이 ‘사람 복 있다’는 그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나를 위해 노력해 준 탓인지 알 수 없지만 둘 중에 하나가 맞다면, 나는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 차의 고비를 넘고 4년 차가 된 무렵부터 친구들의 소개로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에서 계속 경력을 쌓을 수 있었고, 그의 말처럼 그럭저럭 잘 버텨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닌데, 그냥 내가 버티고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런데 ‘버티는 것도 능력’이더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지속됨이었고, 일을 잘한다고 까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버틸 수 있었으리라.      


        버티는 삶이 적잖이 서글프고, 피곤하기는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았다. 그러니 가능한 한 오래오래 더 버텨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사라졌는데,  그의 말은 아직도 사라지지 못하고 남겨졌다.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요. 앞으로도 잘 버텨봐요’     


     더 이상 사주나 점사가 아닌 오로지 위로와 응원이 되겠다는 듯 단단히 버티고 있는 그 말이, 나는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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