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진 Feb 21. 2024

습관이 되는데 필요한 시간.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5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최근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다짐 같은 혼잣말이다. 다짐이란 일반적으로 ‘하자’와 같이 단호한 외형을 띌 때가 많은데, 나의 다짐은 본디 태어나기는 그러지 않았는데, 나로 인해 유약하게 길들여져 ‘해야 되는데...’가 많았다. 마음먹음과 동시에 나약해지는 것이다.      


        지독한 회피형 인간 쪽으로 선택하곤 했던 나였기에 도전했다고 할만한 일은 크게 없다. 당연히 이미 해버린 것에 대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꾸짖는 일도 없는 편이다. 정신적으로 고단했던 20대 때와 다이어트 이전, 이렇게 두 시기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다이어트도 20대에 한 결단이니 나는 그냥 20대 시절을 부정하고 싶은 건가 싶기도 하고. 20대 시절이야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절대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할 필요 없는 다짐이고, 그나마 다이어트 성공과 유지어터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 1N 년의 시간은 나 스스로도 몹시 대견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매일 ‘그때로 돌아가지 말자’ 하고 있다. 심지어 한 시기도 아니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던 그 모두를 부정하고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번 다짐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점은 기준점이 되는 날짜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 바로 2023년 11월 30일.      


        2023년 12월 1일. 뜻하지 않게 아니, 뜻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토록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는 걸 몰랐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어울리는 집을 만들기 위해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소위 말해 집 꼬락서니가 그 정도일 줄은 매일을 살면서 나도 몰랐다. 한 시간도, 하루도 아니고 대략 한 달이 걸려서 마무리된 대작업. 오로지 청소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는 걸 감안해도, 원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정말 방치의 끝을 살고 있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오늘이 83일째 되는 날이다. 먼지 한 톨 없는 집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때의 집과는 180° 달라진 집에서 순간순간의 행복을 느끼며 지난날을 참회(!)하고 있다. 지금이 너무 좋아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릴까 불안하다. 이것은 드라마나 영화 대사에 나오는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져’인가? 하하하.    

 

        문득 습관이 되는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일까 궁금해졌다.      


        습관이 형성되는 시간에 대한 이론은 다양했다. 1960년대 미국 의사 맥스웰 몰츠는 ‘무엇이든 21일 동안 지속적으로 하면 습관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 2010년 유럽 사회 심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영국 런던 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참가자들이 새 행동에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은 18일부터 254일까지 다양한 개인차가 발생했지만, 평균적으로 어떤 행동이 자동화되는 데는 66일이 소요됐다. 마지막으로 2021년 영국건강심리학저널에 게재된 논문 ‘루틴 기반 대 시간 기분 계획에 따른 습관 형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습관이 형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평균값은 59일이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한 가지 재미있던 사실은 21일과 66일을 붙인 다양한 분야의 자기 계발서가 출간되었다는 점이었다. 책이 굉장히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세상에 나오는구나 싶기도 하면서 연구가 사람들을 쉽게 현혹되게 만드는구나 싶기도 하다. 과연 그런 책을 보고 따라한 사람들의 행동이 습관으로 정착된 경우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졌다.      


        ‘빠지지 않고 매일 하면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가장 정확한 답임에도 ‘66일만 하면 습관 길들이기 끝’이라는 말을 더 믿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 숫자가 안정감을 주니까. 혹여 실패하게 되더라도 답은 알고 있으니 덜 불안하달까. 그 숫자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실패한 것이고, 다시 그 숫자를 향해 가면 된다, 는 사실 거짓말이고 책임을 내가 아닌 숫자에 돌리면 된다. 근데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건데 왜 숫자에서 찾는 걸까? 성공하면 숫자한테 공을 돌리지는 않을 거면서. 그야말로 나의 의지가 대단했다고 말이다. 내 얘기 맞다. 어쨌거나 때로 숫자가 시작을 더 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도 사실이고, 별거 아닌 도전을 더 대단하게 만드는 것도 맞다. 그래서 83일을 맞는 오늘이 벅차다. 시작할 때는 이런 날이 올 거라 상상도 못 했기에 더 감격스럽다. 83. 참 꿈만 같은 숫자다.


        사실상 모든 도전이 그렇듯,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나 나머지 반이 성공까지 가기란 쉽지 않다. 삶은 길고, 시작만 명확할 뿐 끝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전이란 성공으로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는 결심이 그제 흐트러졌다. 맥스웰 몰츠 박사가 주장한 21일을 바로 앞에 둔 19일째 찾아온 고비를 넘지 못했다.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도전이란 계속하는데 의의가 있는 거니까. 오늘은 다시 시작한 이틀째. 매일 쓰겠다는 약속을 어기게 됐고, 지금으로선 66일은 너무 멀다. 일단 맥스웰 몰츠 박사 의견에 한 번 더 나를 맡겨본다.


        아, 말을 정정해야겠다. 연구가 사람들을 쉽게 현혹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단지 내가 그런 걸 믿기 좋아하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