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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20. 2024

수신차단을 당하며 든 생각.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아무런 신호음도 나오지 않고 바로 안내 멘트. 음... 이상하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어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네?! 혹시...? 에이 설마! 다시.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네 번의 연결 실패 후 나는 내가 차단당했음을 90% 정도 받아들였다. 나머지 10%는 ‘설마’였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럴 리는 없었다.      


        거의 매일 엄마와 통화한다. 그에 반해 아빠는 상당히 부정기적이다. 엄마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일 때도 있고, 길어지면 한 달에 한 번일 때도 있다. 엄마와 통화가 안 된 적은 많다. 못 받는 쪽은 열에 여덟아홉 번 엄마다. 결혼 초 몇 년을 제외하고 엄마는 평생 일을 하다가 은퇴 나이에 이르러서 전업주부로 컴백했다. 나는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한없이 그냥 있는 스타일인데, 엄마는 완전히 달랐다. (사실 아빠도 그런 편이다. 그럼 나는 돌연변이인가? 흠...) 사회생활을 하는 나보다 스케줄이 더 빡빡했다. 노래 교실, 동네 주민센터 생활 체육 수업, 아침&저녁 개인 산책, 고향 친구를 비롯한 동네 친구들과의 모임 등등. 내가 ‘집에만 있을래’ 스타일이라면, 엄마(아빠)는 ‘집에만 있으면 뭐 해’ 스타일. 우린 완벽히 달랐다.     


        노래 교실이나 생활 체육 수업 등은 고정적인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피해 전화를 거는 쪽은 항상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재중 전화가 될 때가 많았다. 워낙에 활동적인 사람이라서 외부 활동이 많았는데, 귀는 밝지 못했다. 그래서 진동과 전화벨 동시 설정이었지만 집이 아닌 밖일 때면 엄마는 전화를 자주 놓쳤다.      


        나를 수신 차단한 것은 엄마였다. 엄마는 귀도 밝지 않았지만 눈도 좋지 않았으므로 스마트폰을 거의 전화받는 데만 쓰는 편이었다. 내가 늘 엄마는 시대를 너무 일찍 태어났어. 나보다 늦게 태어났어야 하는 사람인데,라고 말할 만큼 엄마는 모든 면에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성과도 좋았다. 단 하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외하고.      


        설 연휴 본가에 갔을 때, 엄마는 카톡과 문자 보내는 법 그리고 메시지 지우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었다. 문자 보내는 법은 이미 몇 차례 수업을 했었다. 금방 배웠지만 엄마가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 핸드폰 보는 것 자체를 눈도, 엄마도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서 엄마가 문자를 보내오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연중행사 같았다. 내 생일날 아침에 ‘딸 사랑해’라고 보내는 것. 어쩌면 그날을 위해 배우고 또 배우는 건가 싶을 만큼 아주 드문 일이었다.      

        문자 보내는 법은 이내 적응했다. 메시지 지우는 법은 처음 해보는 것이지만 그다지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기에 금세 배웠다. 배움이 빠른 엄마를 지켜보며 나는 또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너무 시대를 앞서 태어났다고.      


        다음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반전은 없었다. 나는 정말 차단당한 거였다. 배운 걸 복습하고 또 복습하다가 터치를 잘못한 게 틀림없었다. 배운 걸 까먹지 않으려고 혼자서 스마트폰 화면을 이리저리 톡톡 치는 엄마를 상상하니 귀엽기도 하고 이런 실수에 괜히 상처받을 엄마가 안타깝기도 했다. 모른 척 넘어갈 수 있는 일이면 좋으련만 통화가 안 되니 티를 안 낼 수가 없다. 카톡을 보낸다.     


    “엄마 전화 좀 해줘. 내가 걸었는데 연결이 안 돼.”     


        10분 후,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고도. 엄마의 휴대전화를 개통한 집 앞 대리점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차단에서 풀려난 나는 엄마에게 서러움을 장난으로 토해냈다. 세상에 딸을 수신 차단하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 거라고. 그러자 엄마는 22년 10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던 새벽을 말했다.      


    “그때 너 계속 전화 안 받았을 때 엄마 심정을 이제 좀 알겠어?”     


        그날 나는, 어떤 비극이 나를 피해 간 것에 안도되는 것이 아니라 ‘나였을 수 있었다’라는 생각을 하고 또 하다 잠들었다. 언제나처럼 잘 때 무음모드로 해 놓은 게 엄마 아빠의 애간장을 태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모르겠다. 잠만 쿨쿨 잤던 내가 그날의 엄마 아빠 심정을 어찌 알겠는가. 무엇보다 엄마와 나, 우리의 통화 불가가 감히 그날의 일에 비할 수 있는 일도 아닐 테니까.


 다시 통화가 된다. 언제든 통화를 할 수 있다. 그 평범한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는 것. 그것만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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