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택시 기사가 두 명 있다. 두 명의 호칭은 극과 극이다. 한 사람은 ‘놈’으로, 한 사람은 ‘분’으로 불린다. 먼저 그놈 이야기.
23년을 대구에서 살다가 24살에 첫 출근하게 된 방송국은 서울, 청담동에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집을 구해 살고 있었는데, 우리의 보금자리는 건국대학교가 있는 광진구 화양동 모처였다. 서울 생활 6개월 차. 겨우 지하철로만 출퇴근을 할 수 있었던 나는, 지상으로 회사와 집을 오가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왕복 7호선 한 개 노선만 이용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출근 방향, 퇴근 방향조차 자주 헷갈렸으므로 버스를 타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욕심이라 치부해 꿈도 꾸지 않았다.
헤매게 되더라도 그나마 정상적인(!) 출퇴근 시간은 괜찮았다. 몇 번을 실수해도 다시 타면 되니까. 문제는 야근. 당시에는 새벽 한두 시가 되어야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택시 밖에 없었다. 요즘이야 택시 어플을 이용하는 시대니 따로 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때만 해도 택시 승객이 원하는 루트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했다. 땅 아래로만 다니는 내가, 땅 위로 가는 법을 제대로 알 리도 없었을뿐더러 설명하는 것도 애당초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었다.
‘(몹시 상냥한 말투) 제가 서울 지리를 잘 모르니까
기사님이 알아서 가주세요.’
알아서 가주세요. 이 한 마디면 될걸 ‘서울 지리를 모른다'는 TMI까지 남발한 것은 전적으로 내 실책이었다. 내 딴에는 기사님을 존중하는 의미였다. 아니다. 지방 출신 길치를 배려해 달라는 뜻이었으려나? 아무튼. 이것이 빌미가 되어 매일 새벽 서울의 밤거리를 2-30분씩 헤매다가 집에 도착하는 호구가 되어 버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방송국에서 영동대교만 건너면 바로 집이었다. 시간으로는 8분이면 되는 거리. 물론 어느 정도 눈치채고는 있었다. 어떻게 택시를 타는 게 지하철 타는 것과 비슷하거나 더 걸린단 말인가. 그것도 차가 한적한 새벽 시간에. 다만 그 정도는 집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이자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나는 돈이 안 되는 기본요금 손님이니까. 그것도 길을 모른다고 자백한 손님. 그들 입장에서도 굴러들어 온 길치의 행운을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충분히 양심적이지는 않았어도 그나마 안전한(!) 기사들이었다. ‘그놈’에 비하면.
내가 그놈을 만난 것도 아직 영동대교의 정체를 모르던 어느 날이었다.
'아가씨! 나랑 데이트 좀 해야겠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모든 게 불쾌했다. 세상 음흉한 목소리 톤도, 데이트라고 정의하는 지금 이 상황도, 백미러로 보는 나를 보는 그의 정체불명의 눈빛도. 그 순간 눈에 들어온 이정표는 ‘잠실 롯데 월드’. 집으로 가는 수많은 루트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는 경로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려는 것 같았다.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 그가 말하는 데이트의 의미가 뭘까. 단순히 길을 돌아가려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모든 가능성을 혼자서 생각할 뿐 승객의 당연한 권리인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라는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당시 뉴스에는 택시 기사 강도, 강간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고 있었다. 억울하지만 그의 공간에 스스로 갇힌 건 나였고, 핸들을 잡고 있는 그가 나를 어디로든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 그래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 순간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그의 의지대로 서울의 밤거리를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가 멈춰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바보 같은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동거인인 친구였다. 퇴근할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어! 아직 안 자고 기다렸구나.
오늘은 평소보다 시간이 좀 걸리네?
아마... 곧 도착할 것 같아. '
곧 도착하긴 개뿔! 거짓말이다. 원래 우리의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 친구는 알겠다고 하고 여느 날처럼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안전하고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택시에서 탈출할 방법은 통화를 하면서 집에 도착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오늘 방송 봤어?'
친구가 전화를 끊는 것을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아무 말을 쏟아냈다. PD님이 어쩌고, 작가 선배들이 어쩌고. 잠시 후 달리는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원래 그 정도에서 핸들을 돌릴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친구의 전화로 마음을 고쳐먹은 걸까. 혹시라도 방송국에서 일하는 티를 낸 것이 그의 흑심에 작은 금을 가게 만들었을까. 물을 수도 없고, 답하지도 않을 의문들이 내가 비로소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했다.
그날은 모든 퇴근길 중에서 가장 오래 걸렸다. 무려 한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가게 된 것을 가장 감사했던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영동대교를 건너면 단 8분 만에 집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기사님을 만나 퇴근길 불안 트라우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 일은 100% 그 기사의 잘못이 맞다. 나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그런데 적어도 ‘솔직함’과 ‘오버’는 착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아는 척할 필요까지는 없었어도 ‘굳이’ 모른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 스스로 위험을 자처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함은 특히 더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솔직함이란 없던 신뢰를 만들기도 하지만 ‘굳이’라는 영역의 선을 넘는 순간 언젠가는 나를 위협하는 약점이 되기도 하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그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가장 다른 점은 나의 어떤 바람이나 생각이 모두에게, 모든 순간 공평하게 적용될 필요가 없음을 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사람을 구별한다. ‘솔직해도 되는 사람’과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나는 이것을 구별이라고 생각하지만 차별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괜찮다. 어차피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지 내가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므로.
그 후로 오랫동안 택시 기사들을 ‘굳이 그럴 필요 없는 사람’으로 구별했다.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