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인듯 Aug 21. 2024

6755호실 (8)

싱과 율

일요일이면 나는 혼자였다. 하루 종일 누구도 작업실에 오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은퇴해서 매일이 휴일이지만 그래도 공식적인 휴일은 작업실 일정을 잡지 않는다는 이상한 결기 같은 것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가정적인 대소사를 직접 담당해야 할 나이였고, 그런 일들은 주말이나 휴일에 몰렸다. 어제만 해도 밍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작업실에 오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 아이들과 외식을 하러 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 작업실의 골목은 조용했다. 나는 사람들이 그려 놓은 그림들을 훑어보며 일요일을 지내곤 했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걸 보면 나는 정말 그림과 천생연분인 시계였다. 


오전의 싱그러운 햇살이 머물던 짧은 시간도 지나고 잠시 졸고 있는데 출입문의 키 판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밀번호인 1992가 정확한 것으로 보아 지나가는 애들이 장난치는 것은 아니었다. 

과연 문이 열리며 들어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싱이었다. 내가 알기에 싱은 기독교인이어서 일요일에 작업실에 올 확률은 제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긴장을 하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뭐? 왜? 무슨 일이냐고? 하긴 너도 이무기가 다 되었으니 궁금하겠지.”


싱은 들어서자마자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마치 사람에게 얘기하는 투였다. 

싱의 옷차림을 보니 교회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격식 있는 원피스에 굽이 있는 힐을 신었고 정장풍의 핸드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목에는 순결해 보이는 진주 목걸이가 얌전히 세팅되어 있었다. 작업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녀의 패션이었다. 분명히 그림을 그리러 온 것은 아니었다. 

싱은 내실의 소파에 가방을 던져놓고는 잠시 앉아 있더니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싱의 노래는 황홀했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젠이 부르는 노래가 거의 높낮이 없는 웅얼거림이라면 싱의 소리는 여름 숲의 푸르름과 폭포의 포말이 얼굴에 와닿는 청량감이었다. 그러나 한편 슬픔이 가득 묻어 있는 저 곡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곡조는 처량했다.

 

“어? 웬일? 오늘 교회 안 갔어요?”


생각지 않은 방문객은 또 있었다. 율이 뭔가 들어있는 편의점 비닐 백을 들고 들어섰다.

율과 싱은 둘 다 놀란 표정이었으나 곧 아무렇지 않았다. 


“밖에까지 노래가 들려요. 하긴 싱은 성악가니까 뭐. 그런데 노래가 비장해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율이 맥주 4캔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율은 왜 혼자 맥주를 마시러 온 것일까?


“그 정도는 알아야지. 율, ‘울게 하소서’야. 누구나 불러대지 노래 좀 한다면. 에이 씨.”


조금 전의 아름다운 소리와는 다른 약간의 심술이 묻어 있는 소리로 싱이 툴툴거렸다.

 

“뭐,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왜 울 일이 있어요? 교회가 싱을 울게 했나? 맥주나 한 캔 하죠?”


율이 멀쩡한 표정으로 싱에게 캔을 건네고 자신은 뚜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야, 점심도 안 먹었는데 치킨이라도 시키자. 맥주엔 치킨이지.”


“아니, 점심도 굶었어요? 배고프겠다. 그런데 배달 앱 있어요? 난 그런 건 없어서.”


“넌 젊은것이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뭐야? 내가 시킬게. 그런데 여기 주소만 가지고 찾을 수 있나? 상가들이 많아서. 간판이 없으니 못 찾고 헤매면 뭐라고 알려줘?”


싱이 전화기에서 메뉴를 고르며 어찌해야 할까를 물었다.

 

“간판? 만들죠 뭐. 우리 유리창에 쓰면 되지 뭐가 어려워요? 물감도 붓도 있는데.”


율이 자신의 아크릴 물감통과 붓을 들고나가려는 기세였다. 싱이 다급하게 불렀다.


“뭐라고 써? 우리 팀 이름도 없잖아.”


“그러게요. 무명이라고 할까요? 제목 없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클래식하고.” 


“무명은 이불 천 같잖아. 가만있어 봐. 너 66년이니? 수 오빠는 55년이라 제일 늙은 건 아는데.”


“아뇨, 67년생인데요? 뭐 생년월일이라도 적으려고 해요?”


“야! 6755 괜찮지 않니?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이에 다 들어가잖아. 물론 네가 뚝 떨어져 있긴 하지만.”


싱의 말에 율은 들고 있던 물감을 내려놓고 웃기 시작했다. 


“정말 신박하다. 과연 정리의 마이더스이며 잔머리의 대가다운 발상. 좋아요. 그런데 너무 올드하다. 노인네 부대라고 광고하는 듯.”


“그럼 우리가 노인이지 청춘이니? 너한텐 미안하지만. 일단 써. 맘에 안 든다고 하면 지우고 다시 쓰면 되지 뭐.”


율은 마시던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곤 밖으로 나가 빈 유리벽에 글씨인지 그림인지 커다랗게 쓰기 시작했다. 


<6755>


맞은편의 야채 가게 할머니가 신기한 듯 율을 바라보았고 싱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잠시 후 배달이 왔을 때 배달원은 간판을 물어봤고 싱은 '6755'라고 대답해서 흔쾌히 찾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 맥주와 배달된 치킨을 먹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드디어 내가 사는 곳이 6755라는 이름표가 붙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기억해야 했다. 


“그런데 왜 우는 노래를 불렀어요?”


율이 치킨의 기름과 맥주의 거품이 범벅이 된 입술을 휴지로 닦으며 물었다. 


“야, 우는 노래가 아니라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야.”


“그거나 그거나. 하여간 왜?”


다른 닭다리 하나를 다시 먹을까 고민하는 율의 표정이 재밌었다. 아직 맥주는 두 캔이나 남아 있었다.


“그만두려고, 솔리스트. 오늘 얘기했어.”


싱은 강남의 꽤 큰 교회의 성가대 솔리스트였다. 그 교회는 부활절이나 성탄절 같은 때 음악회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싱은 작업실 사람들을 초청했다. 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곧잘 참석해서 싱을 기쁘게 했다. 싱은 전시회보다는 음악회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노래하기도 쉽지 않단 말을 그전에도 종종 하곤 했다. 


“왜? 아직도 소름 끼치게 소리가 좋은데.”


율의 말에 싱은 웃는 듯하다가 갑자기 격하게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율이었다. 


“무슨 일이래요? 왜 그러는 데?”


율이 기름 묻은 손을 급하게 휴지로 닦아내는 동안 싱도 어느새 눈물을 닦아냈다. 


“뭐야? 다 울었어요? 과연 싱답다. 그런데 왜 그만둬요? 교회가 망할 리는 없고. 다른 데로 스카우트된 건가?” 


“야, 웃기지 마. 울다 웃으면 어쩐다잖아.”


어느새 싱의 표정은 맑아졌다.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사인 것은 알지만, 이럴 줄은 몰랐어. 성대 결절일 때도 치료받고 괜찮아졌잖아.”


싱은 목이 마른 듯 남은 맥주를 한꺼번에 마셔버렸다. 그러자 율이 바로 다른 캔을 따서 싱에게 넘겼다. 


“사실 은퇴하고 나면 시간적 여유도 있고 건강도 좋아질 것 같아서 친구들하고 갈라 콘서트를 계획 중이었거든. 물론 교회 솔리스트도 더 열심히 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목 상태가 급격하게 나쁘더라고. 후두암이라도 걸렸나 싶어 지난주에 병원에 갔더니 성대폴립이라더라. 내 경우는 수술해야 한대.”


“깜짝이야. 암이 아니면 수술로 되는 거 아녜요?”


“그게 노래하는 사람에게는 간단한 문제가 아냐. 하여간 후두에도 물혹 같은 게 보인다고 해서 검사해 놓고는 왔는데 모르겠다. 결과는.”


“그렇구나. 힘들었겠어요. 진즉 얘기하지. 병원에라도 같이 가면 좋잖아요.”


싱은 참는 듯했지만 다시 눈물이 뺨을 타고 방울져 내려왔다. 율이 일어나 싱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싱은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 울었는데 율도 덩달아 우느라 누가 울음의 원인이며 누가 위로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나도 너무 울적했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싱이 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더욱 슬펐다. 


“그런데 율, 참 미안하다. 네 생각 많이 했어.”


율의 포옹을 풀고 마주 앉은 싱이 여전히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자 눈이 벌게진 율이 무슨 뜻이냐며 표정으로 물었다. 


“너, 전에 수술할 때 우리가 너무 무심했어.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서.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때는 우리가 왜 그렇게 뭘 몰랐을까. 젊어서였을까?”


싱의 말을 듣던 율이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때는 다 현직에 있을 때고, 정말 정신없이 살던 때잖아요. 그리고 다 같이 문병도 오셨는데 뭘 그래요?”


“그래도, 젊은 애가 혼자 수술을 감당한다는 게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을까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이 나이에도 그런데. 암도 아닌 폴립 가지고 말이야.”


싱의 말에 율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율에게서 늦가을의 낙엽냄새라도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 잡고는 한 톤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는 아시죠? 괜히 혼자 고민하지 말고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남편 아니니? 그러니까 율 너도 결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이라도 해. 너만 바라보는 목수 아직도 미혼이잖아?”


싱의 말에 율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씰룩였다. 


“아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목수한테 정말 아무런 감정이 안 느껴진다니까요? 그냥 우리 시계를 만들어준 사람일 뿐이에요.”


둘은 가볍게 웃고는 남은 맥주와 치킨을 먹었다. 싱이 이따금 나를 올려다봤지만 목수를 생각해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참 시간 오래되었다. 그치? 6755를 써넣으니까 더 그러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너는 20대 햇병아리였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거의 30 초반이었어. 수 오빠만 빼고. 수 오빠가 30대 후반이었으니 뭐 그게 그거네. 지금도 생각 나.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수학을 한다는 게 멋졌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온 것도 신기했지. 그때만 해도 남자들이 특히 선생님들이 커프스버튼을 하고 다니는 경우는 드물었잖아. 하여간 깜짝 놀랐어. 아, 세월이여!”


“그거야 사모님 센스였죠. 뭐. 수가 그다지 패션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우리 간판 한 번 볼까?”


싱이 율과 함께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들어왔다. 


“손을 한 번 보긴 해야겠네. 너 글씨를 너무 못 썼다.”


6755호실 속에 있는 두 여자는 킬킬거리다가 우울했다가 잠잠했다가 떠들다간 저녁 무렵 떠났다. 

다시 작업실은 비었고 난 6755라고 이름 붙인 곳에 혼자 남았다. 이름이 있건 없건 혼자인 건 같았지만 걱정이 하나 생겼다. 

아무래도 싱의 목에 생긴 폴립은 가볍지 않아 보였다. 싱이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사실이고 계속 그리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림을 넘어서는 반짝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쯤 싱은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6755호실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