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팁 문화가 한국에 수입되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서 내린 특단의 조치일까. 음식과 서비스의 단가를 올리는 것보다 소비자에게 덜 불편하게 다가갈 것이라 판단한 것일까. 배달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소비자들이 팁 문화를 잘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팁 문화는 작년 처음 미국에 가서 겪은 가장 신기한 경험이었다. 식당이나 카페, 택시를 이용할 때 서비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팁 비용을 추가로 계산을 한다. 애초에 영수증에 5%, 10%, 15% 등 팁 비용을 선택하게끔 되어 있어 팁이 기본(default)인 데다, 현지 동료들에게, 팁을 주지 않는 것은 종업원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 배워 꼬박꼬박 잘 내고 다녔다. 이 정도면 애초에 가격에 팁을 포함시키는 게 편리하다 싶지만, 팁 비용을 선택하는 것도 일종의 평가(feedback)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보통 팁은 미리 주는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할 때 주는 것이라서, 종업원에게는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팁 문화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작용하는 큰 술집(pub)에 가본 적이 있는데, 종업원들이 명찰을 달고 굉장히 친절하게 서빙을 한다. 높은 톤과 뚜렷한 발음, 밝은 표정, 그리고 따뜻한 말투로 저마다 주인의식을 뽐내며 손님 테이블을 오가는데, 정말 특별한 광경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그런 장면이 연출되려면, 직원들에게 시중 가격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주는 매장이어야 할 것이다. 계산을 할 때 팁 비용과 함께 서빙한 종업원의 이름도 함께 입력하면서, '팁 문화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종업원이 베푼 높은 친절에 나는 15% 팁을 내며 보답했다 (법카로).
요즘에는 팁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미국 현지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업주들이 팁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팁을 고려해서 일부러 인건비를 덜 주거나, 딱히 서비스받을 여지가 적은 매장에서도 팁을 당연하게 받기 때문이다. 고객이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음료도 직접 받아서 나가는 카페에서도 팁을 낸다 (심지어 키오스크에서 결제 전 팁을 선택하는 창이 뜬다.)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30405/118687070/1
한국에도 팁이 아주 없진 않았다. 고급 식당 중에는 종업원에게 따로 팁을 주는 곳들이 종종 있는데, 특히 참치회를 내는 식당에서는 팁이 거의 국룰이다 (작년에 처음 알았는데, 참지 집에서 팁을 내면 소위 '눈물주'를 준다). 한 명당 5만 원 이상 하는, 룸이 있는 식당에는 보통 팁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아, 그 옛날 나이트클럽에도 팁 문화가 있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 배우께서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손님들에게 봉사하며 팁을 받는(팁을 내지 않고는 화장실을 나갈 수 없다) 연기도 했었다. 또, 따지고 보면 옛날 학교 선생님들께 돈이나 선물을 드리던 촌지 문화도 따지고 보면 팁과 비슷하다 (사실 촌지 문화를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주변 어른들께 들은 얘기다). 학기가 끝날 때 내는 것이 아니라 학기 도중, 혹은 스승의 날에 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니 팁과 비슷하다. 지금은 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되어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혹은 더욱 은밀하고 깊어졌다는 얘기도...).
팁, 촌지 같은 문화를 통해 볼 때 우리들은 의외로 애매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미국의 심리학자 크루글란스키는 '인지적 종결욕구'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고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이중 시스템 이론을 빌리면(응용하면), 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 부하가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그 상황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빨리 결론을 맺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 가격의 결정'과 같은 중대사안에 애매한 여지를 두는 팁 문화가 재미있다.
논란의 끝에, 만약 팁 문화가 사라진다면, 그에 대한 보상(compensation이 적절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팁으로 인해 결정된 가격 역시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상하지 않고 문화만 없앤다면 더 이상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은 시장 논리 상 맞지 않다. 팁과 마찬가지로, 촌지가 실재했던 게 사실이라면, 촌지가 없는 현재(진짜죠??)에는 그만큼의 보상도 교사에게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촌지가 '검은 뒷돈' 같은 것이 아니라 감사의 뜻을 전하는 관례의 성격이라면, 촌지로 받던 돈도 역시 인건비에 포함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문화만 없앤다면, 동일한 서비스 품질을 바랄 수는 없다.
다른 일상 속 애매함 들은 주로, 내몰려 없어지고 있는 편이다. 애매함을 단숨에 무력화할 수 있는 '증거 자료'가 값싸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의 각 점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도로에서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녹화 중이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와 매장에 늘 있다. 영상뿐 아니라, 거래를 비롯한 일상 활동들이 모두 전산화되어 기록되면서, 뭔가 애매하면 바로 기록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소위 영상 판독이나 센서 판독 기술로 스포츠 판도 조금씩 바뀌듯, 일상에도 이로 인한 변화들이 생겼다. 옷가게 같은 곳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모습, 차 사고가 나면 뒷목부터 잡는 모습이 점점 줄어든다. 가격은 온라인에서 적정 가격을 찾아볼 수 있고, 블랙박스 자료가 시시비비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택시도 스마트폰 앱으로 이용하고, 심지어 실시간 위치까지 공유된다.
그런데, 애매함을 내몰아 낼 것이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보상(compensation)도 고려했으면 좋겠다. 애매함이 맡던 역할이 있었을 텐데, 갑자기 애매함을 내몰면 그 역할과 기능은 어디서든 메꿔야 하지 않을까. 혹은 기존의 룰에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디지털 판독이 애매함을 몰아낸 스포츠의 각 경기들도 룰이 조금씩 바뀐 것들이 있다. 혹은, 예를 들어, 불륜을 어떨까. 불륜은 물론 나쁘지만, 일단 애매함으로써 매우 적합한 예다. 디지털화가 더 고도화되면(위치나 신체 상태에 대한 기록과 추적이 가능해진다면, 혹은 길거리에 더 많은 CCTV가 설치된다면) 지금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륜은, 그 욕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애매함을 몰아내려면 사람의 로맨스(혹은 사랑, 혹은 성욕, 혹은 인정 욕구 혹은..?)를 재발견해야 한다. 왜 한국의 기성세대는 낮은 이혼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불륜은 왜 그리 많은지, 왜 그토록 불륜 콘텐츠에 열광하고 소비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필요하다면, 결혼 제도도 손봐야 한다. 선진국 중 그나마 몇 유럽 국가나 미국이 출산율을 조금씩 회복하거나, 하락 속도가 늦춰지는 것은 혼외 출산,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인식 차이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본다. 내몰리는 애매함들이 원래 기능하던 것들을 결코 무시하지 말고, 보상하고 바꿀 것을 적절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8/2020050802424.html
여담으로, 비둘기를 비롯한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시들을 보면, 그럼 쟤들은 뭘 먹고살란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살만한가.. 비둘기 걱정을 다 하네). 그동안 사람들의 공급으로 배를 채우던 비둘기들은 그럼, 먹이를 안 주면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까. 개체가 줄거나, 활동 영역을 옮기거나 할 것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 미리 고려를 한 것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