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는 김에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에 늘 제대로 쉬지 못했다. 명절을 휴일로 지낸 것은 이번이 4년째 인 듯하다. 기억이 맞다면, 지난 3번의 추석 날씨가 내리 좋았다. 그래서 나는 추석이 좋다. 아마 1년 중 가장 날이 좋을 때인 듯싶다.
추석의 또 다른 이름인 한가위는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으로, 음력으로 8월의 가운데 날(15일)을 의미한다. 주식인 쌀을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극동아시아권은 대체로 이 날을 명절로 한다. 대만과 중국에는 중추절이 있고 일본에는 오본이 있다. 벼의 수확 시기와 맞물려 먹을 것이 풍족하고, 날이 선선하고 달이 밝아 저녁까지 놀아도 무리가 없으니,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이 날에 즐거웠을지..(한 잔 해~)
이런저런 이유로 제사를 지내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명절과 제사와 관련된 이슈에는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 누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만 부치다 하루가 간다고 하는데, 먹을 게 넘쳐서 문제인 현대(한국) 사회에서, 품을 들여 특별히 제사 음식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제사는 예이고, 귀한 우리 문화이긴 하나, 추석 같은 기쁜 날에 굳이 부정적인 경험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요즘은 평소에도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가 많아서 명절 음식이 주는 기쁨도 그렇게 크지 않을 텐데.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명절 음식이 주는 기쁨이 워낙 크고, 이 음식 먹을 날을 손을 꼽으며 기다렸을 것 같다. 이렇게 열량이 높고 맛있는 음식을 구경할 기회가 평소에 많진 않았기 떄문이다. 추석에 먹은 음식 맛을 입 안에 머금고, 또 다음 명절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그야말로 축제가 아니었을까.
진중권 작가의 <춤추는 죽음>을 보면, 죽음에 대한 인식과 예우(appreciation)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특히, 시대를 거듭하며 죽음은 축제였다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권은 죽음(죽은 자)을 공경한다. 현생을 사는 이들에게도 먹을 것이 귀한 시절, 망자를 기리는 것이 귀한 음식을 낼 명분이 된 것을 보면 과거에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연장자를 높이고, 죽은 자를 두려워하고 기리는 문화는 농사를 짓기 위한 소규모의 끈끈한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아교 역할을 했다. 같은 조상을 모시는 후손들 간에는, 같은 대상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이들은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갖춘 훌륭한 팀워크를 보일 수 있고, 죽음의 문턱과 가장 가까운 노인에게도 공경을 품어 질서 또한 지킬 수 있었다 (질서를 수호하는 어르신들).
자원의 분배를 '생산성'에 기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 더 이상 혈연에 기대지 않아도 일상의 필요가 모두 채워지는 현대 도시인들.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추석을 앞두고 성묘를 하며 조상을 모신 자리를 정성스럽게 가꾸는가 하면, 제사에 올릴 음식을 만드느라 품을 들인다 (약간 힙해 보이기도 한다). 한 편으로는 정신을 잇는 모습이 멋있어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다. 죽은 자를 공경하는 제사가 이제는 화합보다는 갈등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더 좋았으면 한다. 달이 밝은 김에, 가족이 모인 김에 즐거운 추억이 많이 쌓였으면 한다. 맛있는 음식 먹고, 산책도 좀 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최고의 날이 되기를. 날씨도 좋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