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일한다는 것 -1-

오해는 언제나 생길 수 있다.

by 영화스탭

드라마 촬영을 오랜만에 나갔을 때였다. 영화 촬영의 시작인 크랭크인을 한 두달 남짓 남겨둔 시점에 도와달라는 연락이 와서 나가게 되었는데 다소 낯선사람들과 일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올해로 촬영을 시작한지도 10년이 되었는데 이 좁은 바닥에서 아직도 이런 경우들이 종종 있다.

드라마는 항상 느끼지만 피로도가 높은 작업이다. 안그래도 영화를 하다가 들어가게 되어서 그런지 여유도 없고 기계처럼 찍어대는것 처럼 느껴졌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가 많이 적어졌다고들 하지만 제작환경에서 차이는 아직도 많이 크다. 예를 들어 영화는 보통 4~5씬을 들고 간다고 하면 드라마는 거의 평균 10씬이상을 하루안에 쳐내야한다. 그러다 보니 제작환경은 영화가 훨씬 여유롭고 키스탭들에게 주어진 생각할 시간도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일 할때는 영화현장을 더 선호한다.


무튼 오랜만에 드라마 현장에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많은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는데 처음엔 무리없이 잘 해내었던것 같다. 초점을 맞추는 일이 조금 빡세기는 했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리허설이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초점을 한 번에 감각적으로 맞춰야되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쓰는 렌즈로 한번에 맞추기가 쉽지않았다. 특히나 B카메라팀으로 갔기때문에 망원렌즈로 찍는 경우가 많았고 저녁씬은 거의 조리개를 개방으로 가져갈때가 많아 더욱 쉽지 않았다. 특히나 나는 포커스를 엄청나게 잘맞추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내가 해온던 팀은 초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았냐를 중점으로 하기보다 언제 어떻게 초점을 넘겨 주느냐가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았나 안맞았나를 두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도 않던 나였다. 그래도 해온게 있었어서 엄청 못하는 편도 아니었고 왠만한 컷들이 내나름대로는 쓸수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촬영 감독님이었다. 며칠간 쉬는날이 생겨서 쉬고있던 와중 휴차 마지막날 저녁에 걸려온 전화였다. 촬영 감독님 번호도 없을 때여서 누구지 싶어 받은 전화였는데 촬영 감독님이어서 무슨일이 생긴건가 싶어서 굉장히 놀랐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더욱 놀라웠지만 말이다.

"지금 어디니? 내가 너 있는곳으로 갈게"

처음에 이 말을 듣고 굉장히 엥?! 스러웠는데 정신을 차려보며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아직 나를 이시간에 찾아올만큼 친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당장 내일 아침 촬영인데 지금 이시간에 여기까지 온다니...?!

일단은 근처에 있는 카페주소를 알려드리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향하는 동안 여기저기 전화를 엄청 돌렸는데 나를 불러준 친구에게 제일 먼저 전화해서 무슨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같이 일했던 형한테도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 카페가는 잠깐 사이에 8명 정도와 전화했던거 같다. 그러다 같이 일하는 포커스풀러와 전화하면서 어느정도 알게되었는데 일단 자초지종은 촬영감독님에게 듣으라 했다. 너무 안알려주길래 "좋은일은 아니죠 형님?" 하니깐 좋은일은 아니라고 미안하다는 말이 돌아왔다. 나한테 좋은일은 아니구나.. 근데 왜 여기까지 오시는거지 하며 별의 별 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 촬영 감독님이 카페안으로 들어오셨다.


촬영 감독님의 첫마디. "내가 왜 왔는지 아니?"


"잘은 모릅니다만 좋지 않은 일일거라고 예상만하고 있습니다."


촬영 감독님의 다음 질문. "포커스 한지 얼마나 됬지?"


"2~3년 정도 되었습니다."


촬영 감독님이 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작품 좀 말해줄래"


"이작품 저작품 어쩌고 저쩌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생각보다 경력이 있음에 놀라시는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드라마도 했고 영화도 했기 때문에 경력으로는 나도 딱히 부족할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이야기는 포커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내가 반응이 조금 늦을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나도 알고있던 부분이었고 사실 초점의 심도가 엄청 얇은 상태에서는 어쩔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뭐 누군가는 엄청나게 감각적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정도는 아니었으니깐 말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인 부분이니깐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포커스가 크게 문제가 있던건 아니었는지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했고. 나의 태도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촬영 감독님의 팀과 나의 스타일이 맞지않다고 결론을 내리셨다고 했다. 짧은기간 도와주러 온 상황이다보니 스케쥴잡히기 전에 있던 해야할 일들 때문에 이런 저런것들에 신경을 많이 못썼는데 그런 부분 때문인지 내 태도가 방만하다고 생각하셨나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런 이유에는 내가 잠깐 지원나온게 아니라 아예 이 팀을 들어왔다고 생각하셨던 것도 있었던것 같다. 설명이야 충분히 드릴 수 있었지만 이미 촬영감독이 정한 이상 별반 달라질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신경 못쓴 부분들도 분명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이런적이 한 번도 없었어서 혹시 내정자가 있는데 스케쥴이 안맞아서 못데리고 오다가 다시 스케쥴이 맞아서 나를 내치는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내정자는 없었고 정말 오로지 내가 팀의 성향과 안맞는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아직 사람이 없어서 다음주까지는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마 촬영 감독님 입장에서는 자존심에 내가 나갈거라고 예상하셨던것 같지만 나는 반대로 일주일 동안이지만 그동안은 더 잘해보겠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렸다. 내 반응이 감독님은 조금 의외로 생각하신거 같다. 그리고는 이때부터 조금은 걱정을 해주셨는데 본인도 일을 하면서 잘린 경험이 있어서 이런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안다며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꿋꿋하게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좀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리고 가는것이 저에게도 더 좋은 모습일 것 같다며 너무 걱정하지마시라고 말씀드렸다. 막상 드라마의 피로도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방만한 태도로 그만두게 되는 것은 너무 치욕스러웠기 때문에 그럴수 없었다. 이 일을 안할거라면 모를까 계속 해나가야되는 입장에서 더욱 그럴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가 되었고 마지막 한주를 앞두고 일을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정말 눈물의 응꼬쇼를 하기 시작하는데 새삼 미움받을용기가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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