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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란 Dec 24. 2021

김씨의 덕질일기 2 : 노래방에서

♪ 오마이걸 - 불꽃놀이


코로나 이전, 나는 언제나 가슴 속에 현금 5천원을 품고 다녔다. 노래방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코인노래방이 대중화되기 전에도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면 한 시간씩 기본으로 불태웠고, 동네와 학교 앞에 코노가 생길 무렵부터는 못 해도 매주 한 번씩은 꼭 들렀다. 오죽하면 고2 땐 노래방이 너무 가고 싶어서 담임선생님께 전화로 허락을 받고 야자 1교시 시간에 친구들과 노래방에 다녀온 적도 있다.


학창시절 내 별명은 '김뮤직뱅크'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 가히 아이돌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던 때에 나는 지상파 3사와 엠넷까지 도합 네 곳의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보곤 했다. 본래 유재석에 버금가는 댄스곡 중독자라 아이돌 음악이 취향에 잘 맞기도 했다. 일종의 반복학습을 거치며 자연스레 아이돌 노래와 안무에 빠삭해졌는데, 노래방에서 그간의 학습효과를 뽐내는 게 참 재미있었다.


덕분에 유쾌한 추억을 정말 많이 쌓았다. 특히 고등학교 동아리 친구들과는 수도 없이 노래방을 들락날락거렸다. 그 친구들도 나 못지 않은 흥부자라 자리에 앉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앉으면 혼내는 애도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마자 인기차트를 켜고 몇 곡 예약해두면 알아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마이크도 필요없이 쌩목으로 떼창했다. 동방신기의 주문을 부를 땐 응원법을 따라했고, 엑소의 늑대와 미녀를 부를 땐 우루루 나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생명의 나무를 만들었다. 가수마다의 쪼를 따라하며 그 사람인 척 부르기도 했다. 팔꿈치나 물통으로 방송국 카메라인 척 하는 법은 그때 익혔다. 수련회나 축제 장기자랑에 나갔던 애들도 많아서 그 곡을 예약해두면 창피하다며 욕하다가도 센터로 나와서 최선을 다해 춤을 췄다. 나는 거의 고정 멤버였다.


이 친구들과는 성인이 되어서도 수시로 노래방에 갔다.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어떤 버튼을 누르면 클럽 비트가 흘러나오는 기능이 있다는 것도 이 친구들 덕분에 알았다. 술집 한복판에 있는 테이블에서도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친구들이어서 동네에 스탠딩 마이크가 설치된 노래방이 생겼을 땐 아주 환장했다. 그리고 당연히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불렀다. 아, 참고로 우리는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육봉사동아리였다.


대학교 친구들과 노래방을 갈 땐 첫 곡으로 거의 언제나 오마이걸의 불꽃놀이를 선택했다. 노래 중간중간 우리들만의 포인트가 있는데, 어쩌다 그 부분을 놓쳤을 때 친구 한 명이 진심으로 서운해한 적도 있다. 항상 그 멤버가 그 멤버라 공용의 노래방 쿠폰도 만들어놨는데 한 판 꽉 채워놓고 여지껏 못 가고 있다.


사실 '불꽃놀이'라는 노래가 들을 땐 그저 신나는 노래 같지만, 뮤비를 보면 먼 미래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우리를 떠올리는 내용이란 걸 알 수 있다. 요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이 노래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갑자기도 쉽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나이가 들다보니 예전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각자의 삶이 벅차서 못 만났을 거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슬프다.


하지만 서로의 불꽃놀이 같은 순간을 함께 공유했음엔 변함이 없다는 걸 안다. 과거만 마냥 추억하고 있기에 당장 각자의 앞에 놓인 삶이 치열하다는 것도, 또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예전 그때를 떠올리며 언제든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쓸쓸해보이기만 했던 불꽃놀이 그 이후의 시간들 역시 잔잔하고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부르던 노래를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덥고 좁은 공간에서도 맘 편히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그 순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서로가 있어서 마냥 좋았던' 우리들만의 축제가 '계절이 되돌아와도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으로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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