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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명 Nov 29. 2023

              달

                              미국 하늘 한국 달

   전쟁 직후의 세대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겐 특별한 어려움을 겪으며 특별하게 살아왔던 특별한 경험들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국민학교 졸업도 못하고, 일찌감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야 했던 삶의 체험들 말입니다. 

   미국에 와서도 특별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온몸으로 치를 떠는 사람들도 만났고, 그렇게 치 떨리는 고난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성공담을 격렬하게 토해내며 으스대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글 쓰기를 좋아한다는 나를 위하여 선심을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라고 종용했습니다. 못해도 소설책 열 권은 나올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업을 성공시킨 대단한 비결에는 지혜로운 꼼수와 슬기로운 편법이 상당했습니다. 치가 떨리는 배고픔과 추위는 나도 겪어 본, 그 시절의 있을법한 과거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의 큰 상처보다 내 손톱밑의 가시가 더 아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도미하셨다는 마리(말희) 권사님이 그랬습니다.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새댁 말희는 외국인들이 가득한 비행기에 오르던 순간부터 눈앞이 캄캄해지더랍니다. 군인부대 근처의 작은 집에서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찾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짧은 기지촌 생활에서 배운 토막 영어는 남편만 알아듣는 콩글리쉬라서 누가 와도 인사조차 제대로 나눌 수 없었으니까요. 

   대중교통수단이 전무했던 미국의 시골은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꼼짝없이 갇힌듯 지내야 했습니다. 출장이라도 떠나면 며칠을 그렇게 지내야 했습니다. 사람도, 음식도, 거리도, 산천도, 모두가 낯설기만 한 곳에서 남편바라기만 하는 삶은 눅눅하고 어둑했습니다. 헐벗었던 고국산천이 못 견디게 그리웠습니다. 원수 같았던 부모형제들도, 투닥거리며 다투었던 동무들도, 모두들 가슴 아리도록 그리운 얼굴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무심코 창문밖의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마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달이다! 한국달이다!"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둥그런 보름달,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그 달님이 미국 하늘에 둥실 떠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으며 힘껏 뒤꿈치를 들어 올렸습니다. 토끼와 절구공이에 손이 닿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반가움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자기도 보름달 뜨면 자세히 봐봐. 한국 달하고 똑같아, 참말로 똑 같이 생겼다니까!!"

   마리 권사님은 대단한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가 아끼는 제자에게 자랑하듯 열심히 얘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는데, 그분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웃음기가 얼른 숨어버렸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권사님의 얼굴은 환희와 감동으로 일렁거렸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매운 추위와 치 떨리는 가난을 회상하며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타인들의 마음을 열고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헐벗은 두메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열두 살에 가출해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다는 구구절절 인생사보다 한국 달을 보고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더 뜨겁고 감동스럽다는 것을. 

 

   태어나 4년이 지난 후에야 출생신고가 되었다는 여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딸부자집의 막내딸로 태어난 게 죄였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 운명이 저지른 실수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그녀는 출생일과 전혀 무관한 생년월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미국은 나이를 물어보는 것조차 실례가 되지만 한국은 대뜸 민증부터 까자 하고, 한 살이라도 어리면 아랫것 취급을 하던 사회였습니다. 

   실제로는 3, 4년이나 늦게 태어난 계집애들이 반말을 하고 심부름을 시키고 폭력을 행사하던 따위의 애환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보다 다섯 살, 때로는 여섯 살이나 어린 나이로 살아왔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미국생활을 얘기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출산을 담당했던 의사의 서명날인이 있어야 출생증명서가 발급되는 미국인들은 출생일과 호적의 생년월일이 다르다는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한 미국인 남자는, 사실은 설흔 여덟 살이 아니라 마흔두 살이라고, 나름 심각하게 털어놓은 그녀의 고백에 웃음부터 터트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많이 어리게 보였던 그녀 외모도 한몫을 했지만, 40대보다는 30대의 신부가 훨씬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는 절대다수의 의견에 따라 마흔두 살의 여자는 다소곳 설흔여덟살의 신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 미국땅을 밟았답니다.  

   국민학교 이외의 정규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그녀에게 영어는 온전히 낯 설기만 한 외국어였습니다. 남편과의 의사소통도 어려워 집안 구석구석에 한영사전들을 비치해 놓아야 했습니다. 침실, 거실, 식당, 화장실, 하다못해 현관의 신발장 위에까지 손을 내밀면 바로 펼쳐볼 수 있도록 사전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언어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기는 했답니다. 화가 나서 다투고 싶은데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사전을 뒤적거려 가장 그럴듯한 영어단어를 찾아내 그것을 입 밖으로 내려고 하면 풋! 웃음이 터졌답니다. 그렇게 바보처럼 계속 살았으면 더 좋았을지 모른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러나 바보와 바보처럼은 같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바보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겠기에 외국인들을 위한 ESL: (English Second Laguage) class에 나갔습니다.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몇 학년 과정에서 시작을 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시험을 봤습니다. 결과는 제로였습니다. 마음씨 좋게 생긴 여선생님이 아이들의 그림책 같은 단어사전을 준비해 주셨답니다. 페이지마다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가득했고, 그림들의 이름을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로 표기해 놓은 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그림이 있는 페이지에는 Family-가족, father- 아버지, mother-어머니, sister-누나..... 그리고 건물들이 있는 그림 페이지에는  school-학교, post office-우체국, bank-은행 등등의 단어들이 씌어 있었습니다. 마흔 살 넘은 중년의 나이에 남의 나라 말과 글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읽기와 쓰기를 즐겨했던 그녀에게는 더구나 그랬습니다. 좌절감이 밀려올 때마다 그녀는 자신을 토닥이며 말했습니다.

   "하루에 두세 마디씩만 배우자. 일 년이면 천 마디는 되잖아. 5년이면 5천 마디, 6년이면 6천 마디, 그 정도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되겠지."   

  영어를 공부한 지 몇 달이 되어도 실력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남편을 의식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유창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40년 넘게 한국말로 굳어버린 혀도 문제였지만, 뛰어났던 기억력도 형편없이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화가 나면 사전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울어버리고 말자는 자포자기는 더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뒷마당으로 나가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고국이 그립고 같은 언어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호수에 잠긴 둥그런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계수나무 그늘아래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보름달이 물속에 떠 있었습니다. 

   "호수에 잠긴 달은~~~ 당신의 고운 얼굴~~~"

   울얼웅얼 노래를 되풀이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호수에 잠겨있던 보름달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더랍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서글퍼질 때, 태양을 우러르며 향수에 젖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국 하늘에서 반짝이던 그 별이라고 환호하며 반기는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태양과 별은 계수나무와 토끼를 키우지 않는 때문일까요? 

    문득, 마리권사님과 함께 바라보았던 어느 밤의 보름달이 생각납니다. 

    "내 말이 맞지? 한국 달하고 똑같지? 안 그래?" 권사님은 의기양양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정말로 한국달이랑 똑 같이 생겼네요!" 나는 몹시 감탄스러운 어조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세상에 뜨는 모든 달은 같은 하나의 그 달이라는 얘기는 입밖에 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출생한 날과 출생신고한 날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지가 아니듯, 나라마다 각각 다른 달이 뜬다는 권사님의 믿음도 결코 무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 드렸을 것입니다. '달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뜨는 달이 미국에도 뜨고 캐나다에도 뜹니다. 세상에는 오직 한개의 달이 있을 뿐이랍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습니다. 말희의 하늘에는 한국달이 뜨고 마리의 하늘에는 미국달이 떴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의 하늘에는 넷째 날에 창조된 에덴동산의 그 달이 떠 올랐을것입니다. 

   세 개의 달을 품고 있는 그분은 갈수록 둥그런 보름달을 닮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햇빛처럼 너무 강렬하지도 않고 흐린 밤의 별빛처럼 쉽사리 가리워지지도 않는 온화하고 적당한 밝음이 그랬습니다. 그리울 겨를조차 주지 않는 태양과 별이 아니라 잊힐까 두려워질 때쯤이면 찾아와 주는 보름달의 고요로운 여유가 그랬습니다. 

   나도 권사님을 닮을 수 있을까 질문해 보았습니다. 오직 한 개의 달만 떠 오르는 빈곤한 가슴으로는 결코 말희도 마리도 권사님도 될 수 없다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안에서 들리는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도 부드럽고 온화한 밝기의 보름달, 동포의 서러운 향수를 달래주는 미국의 한국달을 닮아갈 수 있으리라는 가만한 소망을 품어봅니다. 미국달도 뜨고 한국달도 뜨고 하나님의 달도 뜨는 넉넉한 가슴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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