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명 Feb 06. 2024

신데렐라는 영원히

늙어가는 육신에게 정신을 맡기지 않으리     

   어릴 때, 작은언니는 내가 동화 속에 사는 아이라며 못마땅해 했다. 아침이 오지 않는 나라에서 꿈만 꾸는 아이라고 윽박질렀다. 현실로 나오라며 야단도 치고 꿈 깨라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계모가 데리고 온 나쁜 언니처럼 굴었다.

    나는 신데렐라였고 콩쥐였다. 역경 뒤에 성취되는 완전한 삶은 내 것이었다. 언젠가 나의 왕자가 유리구두를 들고 찾아올 것을 나는 믿었다. 종교보다 강하고 하나님보다 거룩한 믿음이었다.


   또래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나는 일찌감치 세상에 진출했다. 수 많은 계모와 의붓언니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내게 식모살이를 시키고 식당과 다방에서 허드레일을 하게 했다. 공장에서 밤샘도 시키고 리어카도 끌게 했다. 별의별 일을 다 맛보게 했다. 인생고단함을 배우고 생존의 냉혹함 체험하며, 눈꺼풀을 여며 눈물을 가두는 법도 터득하게 했다.  


   왕자를 만났다. 진이라는 이름의 왕자였다.

  동화보다 아름답고 가슴 절절한 사랑을 했다. 그러나 그만큼의  부피와 무게만큼의 아픔이기도 했다. 왕자의 유리구두는 내 발에 맞지 않았다. 내 것이 아니었다. 구두의 주인이 나타나면 그는 떠날 것이었다. 고통의 상상은 터무니 없이 강렬하고 위협적인 것이었다. 여미고 앙다물어도 감출 수 없는 눈물의 근원이 되었다.   


           기지개를 켜는 언덕, 하품을 하는 계곡. 호돌이가 만나는 아침은 경이롭다.   


    나의 부모님은 다투고 미워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다. 누가 더 모멸과 위협을 가할 수 있나 경쟁이라도 하듯 입씨름을 하다가 종내는 격렬한 몸싸움으로 진격해 나갔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그들 사이에 없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씨알로도 노출되지 못하는 봉인된 단어였다. 그들의 자녀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고 사랑하는 법은 더군다나 알지 못했다. 


   “명아야, 너는 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나?”

어느 말다툼 끝에 진이가 그랬다. 아주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내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훅 들이마신 호흡을 한동안 내쉬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사람의 말을 하면서도 해야 할 말은 할 줄 모르는 내가 무슨  인간이냐 싶었다.


   혼자 있을 때면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사과도 하고 감사도 하는 연습을 했다. 한 번도 안해 본 짓을 하극도의 어색함이 몹시도 가련해 보였다.

   진심이 느껴지는 표정과 어투를 찾느라 넉넉한 주일을 소모했다. 그리고 드디어 진이 앞에 섰다. 자꾸만 추락하려는 시선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그의 두 눈에 고정시켰다. 기도를 하듯 경건하게 우러르며 연습할 때와 가장 닮았을 표정과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때, 지난 번에 내가….. 정말로 미안해.”

   시작은 어려웠지만 진행은 한결 수월 해졌다.

   “다시는 안 그러도록 노력할게.”

   진이가 와락 나를 껴안았다. 그가 그렇게까지 감동할 줄은 몰랐다. 땅속으로 꺼지는 듯 현깃증이 일었다.

            __________    ______________    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여자는 결코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그걸 알았다. 떠돌이와 법대생의 조합도 애당초 일치가 불가능한 난제였다. 보내주는 것보다 그를 더 사랑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보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용기가 필요했다. 달아나는 것이 조금 더 쉬웠다. 


   떠나간 나보다 남겨진 그가 더 많이 힘들었다고 훗날 진이의 동생은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짐작이나 하냐고 따지지는 않았다. 내가 바라던대로 그는 유리구두의 주인을 만났고 이제는 행복한 왕자가 되었으니 된 것이었다.

나도 비로소 행복해졌다. 너무 아파서 그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지만, 그가 행복한 것을 행복해 할 수 있었다. 그가 떠날 것을 겁내지 않고 마냥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여전히 이야기 속 나라에서 꿈 꾸는 아이였다. 배경은 업그레이드되었지만 주인공은 그대로였다. 그 안에 있으면 세월도 환경도 변화시킬 수 없으니 꿈나라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왕자는 날마다 찾아왔고 신데렐라는 기쁨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한 번도 그를 보내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를 잃을까 겁내지 않아도 되고 달아날 필요도 없었다. 아침만 계속되는 하루, 저녁이 오지 않는 종일을 함께 하며 끝 없는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소설 속에 산다고 혀를 찰 것이다. 나이 값 못한다고 비웃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화같은 이야기 속에서만 사랑하며 살 수가 있다.

  아프도록 그를 사랑하며 날마다 간절하게 그를 기다리지만, 정작 그가 찾아오는 현실과 맞닥뜨린다면 더 멀리로 달아나 이야기 속으로 숨어버릴 것이었다. 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달아날 것이었다. 때문에 나는 소설이나 꿈나라에서만 살아갈 수가 있다.

  나의 소설과 동화는 내세로 향한다. 죽음 이후에 만날 영혼의 세상으로 이어진다. 

   

  신데렐라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나만 아는 사실이다.

                    서부의 겨울 황혼  

   

  

 


작가의 이전글        낯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