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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Jun 05. 2017

파주의 6월, 채집 바구니


동네와 텃밭 주변, 뒷산에서 자른 꽃들로 바구니를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바구니에 꽃을 꽂았다. 바구니는 10년 전 피지에 갔을 때, 바나나 잎으로 전통 엮기 체험을 하고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만든 이 꽃은 100% wild. All foraged.



찔레열매 또는 로즈힙을 닮은 연두색 동글동글이들은 산사나무 열매다. 그 옆에 초롱 모양을 한 길쭉한 꽃들은 이름 그대로 초롱꽃. 시장에서 파는 캄파눌라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매력적이다. 얼핏 귀여워 보이나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기괴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들어 가는 모습도 그렇고. 뱀파이어 소녀의 정원에 피어날 법한 꽃.



손잡이를 타고 감아올라가는 것은 인동덩굴, honeysuckle 이다. 풀숲이나 산기슭 임도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다. 어릴 때 외할머니는 산에서 인동덩굴을 끊어 말렸두셨다가 내가 감기에 걸리면 파뿌리랑 같이 끓여 주시곤 했다. 나한테 인동덩굴은 꽃보다는 약재 느낌이라, 인동 꽃이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꽃은 처음에 하얀색으로 피어나는데, 시들 때는 노란색이 된다. 단순히 '갈 때가 되어' 변하는 것이 아니다. 꽃가루받이에 성공하면 색을 바꾸어 곤충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난 이제 열매 맺을 준비를 할 거야. 그러니까 오지 않아도 돼" 이렇게. 어쩐지 상냥한 느낌!



인동덩굴 줄기를 조금 잘라 꽂아도 선이 참 곱다. 꽃술은 우아하고.



다시 바구니로 돌아와서, 보라색 꽃은 엉겅퀴. 예전에는 흔했는데 요즘은 귀해졌다. 텃밭 뒤 풀숲에서 작은 군락을 발견하고 몹시 반가웠다. 동네에도 엉겅퀴 비슷한 꽃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다 엉겅퀴가 아니라 지칭개다. 지칭개는 엉겅퀴보다 색이 흐리고 송이가 작다. 그리고 무엇보다 엉겅퀴만큼의 존재감이 없다. 들꽃이 소박하다는 건 절반은 틀린 말이다. 풀숲 사이에 큰 키를 쑥 올리고, 보라빛으로 활짝 피어난 엉겅퀴꽃은 감탄이 나올 만큼 화려하다. 생각지 못했던 달콤한 향기가 난다. '1년에 딱 한 번, 두 줄기만 자를게!'라고 (엉겅퀴들에게) 약속하고 조심조심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자연이 만든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조형적인 이것은 산딸나무꽃. 나무를 하얗게 뒤덮듯이 피어난다. 몇 년 전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산딸나무 꽃을 처음 봤는데, 깜짝 놀라서 내가 헛걸 본 줄 알았다. 저렇게 얼굴이 큰 꽃이, 티아레만큼 이국적으로 생긴 꽃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에 피어 있다니! 동네 뒷산에는 지난주부터 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산딸나무를 dogwood라고 하던데, 직역하면 '개나무'? 어원이 궁금해진다. 우리나라보다 종류가 다양한 것 같고, 어레인지먼트에도 흔하게 사용하는 듯. 외국 꽃 책들 보면 도그우드는 꼭 나온다. 아무튼 나는 산딸나무 꽃이 너무나 좋다.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 그대로, 이 세상 꽃이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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