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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29. 2022

(Take #4) 42세, 혼자만의 제주

걷고 자고 먹고 걷고

 서귀포 올레시장에 들어서자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시장 골목에는 제주 올레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여러 음식이 나를 불렀다. 흑돼지 김치말이 1인분과 전복 흑돼지 볶음밥 1인분을 사서 의자에 앉아 허기를 달랬다. 양은 적은데 가격은 1인분에 9천원.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로 물가도 올랐고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산물(?)이기에 기꺼이 가격을 지불했다. 흑돼지 김치말이를 보며 우리 아들도 좋아할 건데...라는 미안함도 조금 든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그간 가보고 싶었던 이중섭 미술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중섭. 미술 관련 책에서 이중섭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돈이 없어서 담뱃갑 안의 은박지로 그림을 그렸던 천재 화가. 생전에는 너무 가난해서 먹고살기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의 손바닥 만한 그림이 수억을 호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왜 유명한 화가들은 죽어서야 그 가치가 더해지는 걸까. 더 이상 그의 그림이 추가될 수 없는 희소성 때문일까? 만약에 나도 죽으면 내가 남긴 일들은 그 가치가 더해질까?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여러 의문과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올레시장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 이중섭 미술관은 자리했다. 이중섭이 생전에 살던 생가 근처. 그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사전에 인터넷 서칭으로 미술관의 보유 점수를 확인한 덕분에 큰 기대는 없었다. 입구에서 표를 사서 들어간다. 여느 미술관과 똑같이 생겼지만 전시관 입구의 기증자 명패에서 반가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의 오너 일가가 바로 기증자였던 것. 일개 직원인 내가 그분과 인연이 있을 리 없지만 여기서 본 그의 이름은 이상하게 나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전시장에는 미술 교과서에서 보던 엄청난 황소 그림은 없었다. 약간의 기대도 있었지만 그 그림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분명 엄청난 부호의 미술 창고에 들어가 있던지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중섭이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구구절절한 편지는 내 가슴을 울렸고, 가족을 생각하며 아들과 노는 모습을 은지화에 그린 것에 감동했다. 아들과 게잡이를 하던 모습이 너무 좋아 이중섭의 은지화에는 '게'가 자주 등장했다. 얼마나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었을까. 전화도 영상통화도 없던 시절 얼마나 가족들의 목소리, 그리고 살결이 그리웠을까. 나는 이중섭만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나 반문한다. 그리고 문득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집을 떠난 지 2일차이지만 2주가 된 것 같았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미술관을 나와 근처의 천지연 폭포로 향한다. 이곳 또한 약 20년 전 대학생 시절 아내와 한번 와 본 적은 있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제주도로 오기 전 TV에서 천지연 폭포에 자연 서식하는 무태장어가 바닥에서 확인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이상하게 천진연 폭포에 와보고 싶었다. 뭐 내가 무태장어를 잡아서 먹을 것도 아니고 한데, 그래도 이상하게 한번 가보고 싶었다. 미술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니 폭포 입구의 주차장이 나왔다. 태양이 너무 뜨겁고 나도 조금 지쳤기에 화장실 앞 벤치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벤치에 앉아있자니 그 앞에 관광버스 1대서 주차되고 어르신들 20여분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네 어르신들끼리 제주 관광을 오셨나 보다. 어르신들 관광버스에는 항상 한 두 분씩 다리가 아프신 분들이 있다. 이 버스에도 거동이 불편하셔서 버스에 내리는 것조차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계셨다. 지난번 터키에 가서도 다리가 아파 관광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는 부부가 계셨는데, 뭣하러 이 먼 곳까지 오셨는지 주위에서 물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버스 타는 것도 힘들어질 것 같아 죽기 전에 와보고 싶어 터키를 왔다고 한다. 여행은 두 다리가 멀쩡할 때 많이 다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천지연 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시원했다. 널찍한 인도도 편안했고 울창한 나무들은 여행자들에게 자연 에어컨이 되어주었다. 폭포에 도착하자 시원한 물줄기가 바닥으로 내리꽂는다. 예전에는 물의 양이 더 많았다는 주변 어르신들의 말도 들렸다. 나는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계단에 자리를 틀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가슴까지 청량해지는 모습이다. 그렇게 30분을 멍을 때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금까지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던 것 같다. 이왕이면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최근에 직장생활이 평탄치 않으면서 과거가 많이 생각났다. 예전 신입사원 시절, 그리고 대리/과장 시절, 차장 시절. 힘겨운 기억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아마도 지금의 내 상황이 녹녹지 않음에 나도 모르게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못 걷겠다. 마침 2일 차 게스트 하우스가 서귀포시내 근처라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거친 오르막길을 20여 분간 걷고 물어 드디어 도착한다. 오후 4시라 다소 이른 시각의 체크인이지만 지쳐서 오늘 여행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내 방은 204호 6번 침대. 방에 들어서자 190 정도 되어 보이는 외국인이 나를 반긴다. 독일인 백패커였다. 그리고 옆 침대에는 21살의 군입대 2달을 남긴 대학생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는 나의 대학 후배였고 심리저 바이오공학과에 다니고 있단다. 그 친구가 말하기 자기도 선배님처럼 IT회사도 다니고 바이오 회사도 다니고 싶단다. 자신의 롤모델이란다. 난 아니라 했다. 



 짐을 풀고 땀에 젖는 몸을 씻어 내었다. 상쾌하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의 객실 컨디션은 어제보다는 좀 Bad 한 것 같다. 아마도 6인실이라 더 좁아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뭐 오늘이 인생 마지막 게하일지도 모르니 참기로 한다. 오늘도 저녁 파티를 신청해놨기에 7시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시 눈을 붙인다. 참 기적과 같이 정확히 7시에 눈을 떴다. 마침 옆자리의 대학생이 같이 파티에 가자고 한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야외로 향한다. 식사자리에 도착하니 총 3 테이블이 있는데 제일 오른쪽 테이블에 약간 연로하신 분들이 앉아 계셨다. 나머지 테이블은 20대들만 앉아 있는 듯한 포지션. 나는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연로하신 분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한데 옆자리에 계신 여자분은 어제 뜨밤을 같이 보낼 때 계셨던 누님. 서로 다음날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헤어진 터라 웃음을 짓는다. 어제는 말 수가 적었지만 오늘 밤은 작정하고 말을 하려는 심산이다. 테이블의 나머지 구성은 30살의 직장인 여성(기혼), 그리고 나와 동갑이고 포항에서 직장을 다닌다던 애둘 아빠가 있었다. 나와 함께 온 대학생 친구는 연로하신 테이블에 있다가 옆의 20대 테이블로 옮기고 싶어 하는 눈치라 내가 먼저 가라고 했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해가지면 자연스레 뭉쳐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나를 포함해 연로하신 4분은 미친 듯이 소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각자 사는 이야기, 왜 여기온 것이고 무엇을 할 것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우리는 떠들어 대었다. 그 2일 연속 같은 게하에 머무는 누님은 오늘 날을 만났는지 많은 말을 쏟아낸다. 


 게하 사장님이 해주신 바비큐는 최근의 원자재값 인상으로 삼겹살보다는 목살과 닭고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뭐 내가 캠핑 가서 구워 먹는 고기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안주로는 적당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9시까지 먹고 떠들었고, 해가지자 모닥불 주변으로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독일인 친구가 화제의 중심이었고 20대 친구들도 서로 인사하며 얼굴을 텄다. 20대 대학생인 여성분이 맛있는 마시멜로를 구워서 주었는데 참 친절해 보였다. 친절함만 봐도 그녀의 평소의 삶, 그리고 약간의 앞날로 추측은 된다. 잘 살 것 같다고. 아까 같은 테이블의 30살 직장인 여성분은 내일부터 제주도에서 회사 교육이 있는데 하루 먼저 와서 게하에서 자는 거란다. 성격은 밝았고 붙임성은 좋았다. 그 친구랑도 이런저런 직장인의 삶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모닥불에서 제주의 밤을 느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남매인데 같이 여행을 왔단다. 대단하다. 남매가. 자기들은 남매인데 여행을 다니면 계속 연인으로 오해를 받아 너무 기분이 나쁘단다. 더러워도 어쩔 수 없는 오해라 참고 다니고 있다고. 서로에게 손가락 욕을 날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 쿨한 남매. 나의 아들, 딸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둘째 날 밤의 파티는 비 오는 속에 조용한 캠프파이어. 서로 조용히 삶을 공유했고 서로를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밤은 깊었고 11시가 되자 다들 잠자리로 들어갔다. 나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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