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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28. 2022

(Take #3) 42세, 혼자만의 제주

걷고 먹고 자고 걷고

 눈을 떴다. 핸드폰의 시계는 아침 8시를 가리킨다. 어제의 뜨밤의 후유증인지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 아! 아니다. 어제의 걷기가 오늘의 나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게스트 하우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아직 성산일출봉에서 본 광경, 그리고 진푸른 색 바다와 연하늘색 하늘이 만난 수평선의 오묘한 색도 눈에 선하다. 아마도 제주 여행을 하며 느끼고 싶었던 게 그러한 수평선이 아닐까 싶다. 바다는 마치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의 삶 같았고, 하늘은 내가 바라는 행복한 삶 같았다.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은 수평선처럼 아득히 멀고, 가도 가도 수평선처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수평선이 있는 이유는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겠지. 현실의 바다에서 아무리 아무리 노를 저어 가도 둥근 지구는 나에게 그 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뿐. 누리호처럼 하늘로 가지 않는 이상에야. 수평선은 못 잡더라도 바다에서 빠지지나 말아야겠다. 


 숙소를 나와 아침거리를 찾아 헤맨다. 그래도 제주에 온 이상 여느 아침식사와는 조금은 다르면 좋지 않겠는가. 주변 식당을 둘러보니 가격도 만만하고 적당히 제주스러운 성게 미역국 집을 찾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관광객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5~6분이 엄청난 수다를 떨고 있다. 흥겨웠다. 나는 조용히 식당 구석 한 켠에 앉아 성게 미역국을 시킨다. 얼마 뒤 나온 뜨끈한 미역국은 나의 속을 풀어주었다. 사실 성게 미역국이라 하지만 성게는 미역국의 2%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면 이런 국 이름을 지을 때는 들어간 주요 성분을 중심으로 이름을 지어야 맞지 않을까. 미역 성게국처럼. 아니다. 그래도 통념상 미역 성게국이라 하면 이상하게 미역보다 성게가 많이 들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제주에 오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 2일차 아침인 성게 미역국 >


 전날 뜨밤을 같이 보낸 친구들은 옆방에서 곤히 잠들고 있었다. 작별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꼰대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인스타 친구사이로 발전한 만큼 작별인사는 인스타에서 하는 것으로 하고 길을 떠났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고민도 잠시 했었지만, 그냥 발 길 닫는 대로 가기로 했다. 그냥 걷다가 지치면 다시 버스 타고, 버스 타고 심심하면 다시 걷기로. 그렇게 걸어갔다. 걷다 보니 성산일출봉 옆의 광치기 해변이 나온다. 마친 해변을 따라 올레길도 나있었다. 광치기 해변에 진입한 순간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제주 4.3 사건 기념비. 그 사건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기념비를 만나니 또 새롭다. 기념비속의 글들은 그날의 사건이 얼마나 처참했으며, 지금 서 있는 광치기 해변이 피로 물들었다는 사실을 기록해주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 군인, 경찰이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사살했다는 사실은 기억해주고 싶다. 갑작스레 그간 성당도 잘 안 가던 내가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고 있었다. 



 피로 물들었던 광치기 해변에는 올레 1길이 아름답게 나 있었다. 역시 제주. 그 길을 따라 나는 정처 없이 걷고 싶었다. 해변에는 어린아이를 둔 가족들이 게 잡이를 하면 놀고 있었고, 어느 아주머니는 작은 문어(?) 같은 생물을 잡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자연은 아름답고 가족은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또 걸었다. 걷다 보니 많은 생각도 들었다. 잠시 열차에서 내려오기를 선언하고 휴직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 무엇이 나를 열차에서 내리게 했는지, 무엇이 그토록 회사를 다니기 싫게 했는지 이상하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일하기 싫었던 건 아닐까? 2007년 2월에 회사에 입사해 앞만 보고 왔던 것 같다. 교대근무 생활을 할 때는 그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사무직으로 옮기고 나서도 직장생활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 했던가. 이런 고통의 연속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고통을 견디어 내며 살아가는 것인가? 고통받는 만큼 월급이 채워지는 것인가? 물론 그건 절대로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제 본 수평선처럼 고통과 행복이 만나는 수평선은 어디 즈음 일까 아마도 우리들은 그 지점을 찾기 위해 배에 노를 저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작년에 본 밀라논나 유튜버의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가 생각난다. 내 삶은 귀하다. 누구에게나 존중받아 마땅하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충분히 있다. 내 삶의 주인은 누구도 아닌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귀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고통이야 없을 수야 없지만 행복의 크기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행복 / 고통 = 1'인 상황이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사실 말도 안 되게 0.1일 수 있지만- 어찌 되었던 분자의 크기를 늘리던 분모의 크기를 줄이던 해야 한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올레길을 걷는다.


   

< 광치기 해변의 올레 1길 >

  

 길을 걷다 걷다 보니 광치기 해변의 끝자락의 오른쪽에 페러글라이딩 같은 게 보였다. 아니 산도 아니고 바다에서? 나는 그 페러글라이딩(?) 같은 물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씩 가까워져 가보니 바로 섭지코지 바로 옆에 붙은 신양섭지 해변이 나왔다. 해변에는 중년의 남성들이 바다 위에서 발에는 보드, 어깨에는 줄을 매어 하늘에 낙하산을 띄우는 게 아닌가. 나중에 찾아보니 그게 카이트 서핑이란다. 바다와 하늘을 둘 다 즐길 수 있는 레저스포츠. 해변에 앉아 담배를 한대 피우며 바라보았다. 한 50대 후반의 남성이 해변으로 걸어와서 친숙한 듯 카이트 서핑을 준비하는 노년의 아재에게 '오늘도 나오셨어요? 안 힘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 노년의 아재는 '나 아직 팔팔해~'라고 답을 한다. 딱 봐도 은퇴하고 제주에서 카이트 서핑이나 즐기면서 노년을 보내는 아저씨 같았다. 아직 팔팔하다는 말과 같이 그는 힘차게 낙하산(?) 같은 것을 하늘로 띄우고 바다로 향한다. 그 뒷모습은 청춘같았다. 나도 노년의 삶은 퍽퍽한 도시보다는 제주 같은 자연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아내와 함께 작은 '스테이'나 카페를 하며 자연도 보고, 사람도 보고, 가끔 육지에서 힘들고 치친 아이들이 제주에 와서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이상하게 제주에서는 그런 치유가 가능할 것 같다.


< 신양섭지 해변 >

 이튿날에도 햇볕은 따가웠고 내 등에는 땀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제는 서귀포로 가야겠다. 섭지 해변에서 서귀포 가는 버스를 찾아보니 걸어서 20분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다. 열심히 태양을 뚫고 걸어갔다. 그리고 정류장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내 교통카드가 뒷좌석에 떨어졌다. 뒷좌석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잽싸게 나에게 주워주는 게 아닌가. 정말 재빨랐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이상하게 이러한 친절을 받아서 그런지 기분이가 좋았다. 친절은 이런 거구나. 다른 사람의 기분 좋게 하는 것. 나도 오늘 서귀포에서 친절함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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