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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l 17. 2022

#8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퇴직과 휴직사이, 그리고 사람들 사이

 세상 만물이 봄을 움트기 시작하였고, 개나리는 만개하고 벚꽃은 싹을 틔웠다. 3월이었다. 사실 2월에 진즉에 그만두었어야 할 회사지만, 그만두지 못했다. 내가 그만두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잡아주었던 동료 성프로 덕분이다. 성프로는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같은 동료였다. 밀접하게 같이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나에게 먼저 다가왔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말이다. 내가 이 회사로 옮기고 정확히 1달 하고 10일 뒤에 그가 옮겨왔다. 이 회사로 옮겨온 이후 모 인사그룹장이 나에게 와서는 '성프로'를 아느냐고, 그가 어떠냐고 물어왔고 나는 그를 완전 적극 추천하였다. 다행히 회사 내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었고 내 추천은 나름 씨알이 먹혔던 것 같다. 나는 재차 그는 일도 잘하고 조직 적응도 잘하고 술도 잘 먹는다고 강조하였다. 회사는 덥석 그를 당겨왔다. 그렇게 그가 우리 회사에 오는데 나름 한 몫한 것이 나였다. 하지만 그게 이 지옥을 구렁텅이에 그를 빨려 든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지금은 남는다. 뭐 그것도 그의 선택의 몫이었지만.


 퇴직하려던 나를 그렇게 잡아두었던 게 성프로다. 매일 같이 하는 나의 투정이 힘들 법도 했지만 항상 그는 냉철하게 내가 1,2달 더 회사를 다님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3월이면 임금도 오르고, 성과급도 나오고, 우리 사주도 나누어주고. 그걸 다 받고 가라 한다. 정말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지옥보다 싫었지만 그가 해준 말들은 나의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나는 그렇게 드디어 '3월 1일'까지 일을 했다. 이제는 더 다닐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출근하는 버스에서 숨이 막혔고, 몸은 떨렸다. 아 이제 그만 다니라는 소리구나. 여기서부터는 나도 나의 상황을 한 걸음 멀리서 보기 시작했다. 이제 얻을 것도 다 얻었겠다.. 퇴직하기가 조금은 아까웠다. 퇴직과 비슷한 것은 없을까? 답은 '휴직'이었다. 사실 그 답을 찾기까지 JY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JY님은 퇴직보다 휴직을 계속 권하였고, 나도 그의 생각이 객관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휴직'선언은 회사에서 거의 '사표' 수준임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은 항상 진심이었고 나를 좋은 쪽으로 인도하였다. 그렇게 나는 3월 마지막째 주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사실 회사에 임원께 휴직 사실이 전해졌을 때는 두렵기도 했다. 그 임원은 나를 나약하다고 말할 것이 뻔했고(실제로 그랬고), 주변의 동료들은 내가 적응을 못해 튕겨져 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그대로 낙인이 찍혀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찍힘보다 내 삶의 지킴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주변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했다. 퇴직이나 휴직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겨낼 것 같아다. 그래도 휴직이란 것은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은 아니기에 안심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정없이 내리막길을 달리던 폭주 기관차를 '탈선'을 통해 멈출 수 있었고 드디어 그 기차에서 내려 땅을 디딜 수 있었다. 아마 내가 3월에 몸으로 반응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이미 회사를 떠났으리라 생각된다. 회사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라도, 다시 기차에 올라서거나 달리게 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내리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 삶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더 이상은 달릴 마음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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