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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l 17. 2022

#9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휴직자의 일상

07시 30분 기상. 

07시 40분 아이들 아침 준비.

08시 00분 아이들과 아침 식사.

08시 30분 등교하는 아이들과 인사 및 설거지.

09시 30분 여유롭게 맥심 커피 한 잔.

10시 00분 아내에게 깨우기. (조심히)


10시 30분 아내와 함께 카페로.

13시 00분 점심(또 아내와)

15시 00분 귀가(또 아내와)


15시 10분 아이들 귀가 후 말 걸어주기

16시 30분 아이들 태권도 학원가는 거 바래다 주기

17시 00분 저녁거리 생각하기 (그리고 공부하기)

19시 00분 아이들과 저녁 먹기


20시 00분 빨랫감 돌리기 (그리고 휴식)

21시 00분 빨랫감 건조기 돌리기 (그리고 책 보기)

23시 00분 빨랫감 정리하기 (그리고 TV보기)

24시 00분 일기 쓰기, 그리고 꿈나라 가기


 휴직자의 일상은 어느 가정주부의 일상과 완벽히 일치하고,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휴직자와 완벽히 불일치한다. 사실 너무 갑작스러운 휴직에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웠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나는 자주적인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그런 나의 일정은 '아이들'의 삶에 중심으로 이끌려 갔다. 저 위의 많은 일정 사이사이 충분한 휴식은 보장되었다는 것에 다소 안도감을 가질 뿐.


 사실 '휴직'을 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많이 놀랬다. 특히 이제야 '돈 맛'을 조금 알아가는 우리 첫째와 둘째는 이제 우리 굶어 죽냐고 걱정이다. 물론 아빠가 가지고 있는 자산과 현금에 대해 많은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한가보다. 첫째 녀석은 이제 소비를 아끼겠다고 선언했다. 이번 주말에 캠핑 가자는 말에 '쓸데없이 돈 쓴다'라고 핀잔도 던질 줄 알았다. 둘째는 분명 태권도 학원이나 학교 친구들에게 아빠가 집에서 쉰다고 말할게 뻔하다. 엄청나게 입이 싸다는 것. 입조심을 신신당부했지만 그래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 고 있다. 하지만 휴직 첫 주에 다녀온 캠핑에서 아이들은 걱정은 다소 안심으로 바뀌었다. 이제 아빠와 실컷 놀 수 있구나. 아니 아빠를 실 컷 부려먹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단다.


 사실 부산에 있는 아버지에게는 이 소식을 알릴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자식이 힘들어 쉰다는 말에 맘이 편한 부모가 누가 있을까. 나는 아버지가 걱정을 '한 다라이'로 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도저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형도 아버지에게는 굳이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도 같은 이유였을 거다. 우리는 아버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두 아들이니. 그래 다시 기차가 출발하면 그때 말하자. 아냐 평생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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