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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이 마박사 Mar 31. 2022

젊은 여성들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다

민주평통 지회장의 기쁨조가 된 것에 우리 아버지가 감사할 일도 아니다


지난해 10월 28일, ‘대통령 문재인’의 이름과 도장이 찍힌 위촉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장인 대통령 직속 통일자문기구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민주평통)’의 베트남협의회 하노이지회 소속 해외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다. 그리고 정확히 50일 뒤 나는 하노이지회장에게 “내 기쁨조”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은 하노이지회 청년분과위원회의 송년회 자리였다. 민주평통에선 성별에 상관없이 만 45세 미만 위원들을 ‘청년’으로 분류한다. 하노이지회에만 20여명의 청년위원들이 있고 그날 자리에도 10명이 넘는 남녀 위원들이 모였다. 지회장 P씨도 함께 자리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을 놓고 몇 차례 꺾어 마신 나와는 달리 P씨는 기분이 좋았는지 연거푸 술을 마셨다.


시간이 지나 잔뜩 들뜨고 얼굴도 시뻘개진 지회장 P씨는 자신의 왼쪽, 나와 다른 위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여성위원  명을 지목해 “여기가 아주  기쁨조들이다.   덕분에 내가 아주 즐겁고 힘이 솟아라고 했다. 나와 다른 여성 위원  명은 졸지에 다른 위원들 앞에서 지회장의 기쁨조가 됐다. 우리  모두 ‘지금 무슨 소릴 한거지 표정으로 당혹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지회장 왼쪽에 앉아 있던  남성위원이 화들짝 놀라 “그건 아닌  같다 했고  여성위원은 테이블 위로 시선을 떨궜다.  그렇듯 불쾌하지만   없이 혼자 삭이려 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지회장님 지금 여성위원들을 기쁨조로 지칭하신 것이냐. 기쁨조가 어떤 조직인지는 아실텐데, 알고 한 말씀이어도 문제고 모르고 했어도 문제가 되는 표현이다. 즉시 사과하시라”고 말했다. 지회장 P씨는 “기쁨조인게 왜”라고 되물었다.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게 육체적, 정신적 향락을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 끌어다 조직한 집단이고 이게 성적으로나 인권적으로나 문제가 되는 표현이라 생각하지 않으시냐. 다른 조직이나 다른 자리에서 했어도 문제될 발언을 어떻게 민주평통에서 여성위원들을 기쁨조라 부를 수 있느냐”라고 답한 내게 지회장은 “어이구 그래”라고 답하고 말았다.


“딸이 대통령 위촉장 받고 민주평통엘 들어갔는데 거기서 지회장에게 기쁨조란 표현을 들은걸 알면 아버지가 참 좋아하시겠다”고 말하니 지회장은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영광으로 생각하셔야지”라고. 그리곤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다시 신나서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불쾌함을 넘어서 너무나도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 있나. 제대로 듣지 못한 옆테이블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하하호호 웃었고 지회장 P씨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해 보였다. 당장 바로 옆옆에서 나는 혀를 씹으며 손을 떨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


무슨 정신으로 뭘 먹었는지 기억도 안나는 자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조금 기다렸다가 나가려는 지회장 P씨를 잡았다. “지회장님 아까 그러신 거 여기서 여성위원들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가세요” 지회장 P씨는 “내가 뭘 사과를 하냐”고 했다. 나는 또다시 기쁨조 발언이 왜 문제인지 설명했고 “상당히 부적절하고 문제되는 발언이다”라고 하니 지회장 P씨는 “그래그래 미안하다. 됐지?”하며 자리를 떴다.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지회장 P씨는 “하여튼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한다니까. 아주 비선실세야 비선 실세”라고 들으라는 듯 말했다.


다른 여성위원은 자기는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라며 용기있다, 고맙다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같은 테이블에서 그 말을 들은 몇몇 위원들이 정신 나간 것 아니냐며 함께 화를 내고 같이 지회장 P씨를 씹어준 것, 그것이 기쁨조 소리를 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난해 12월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 이후, 3월 중순까지 3개월동안 나는 아무런 연락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3개월여간 나는 어떤 말도 듣지 못했지만 지회장 P씨와 다른 사람들은 참 많은 말을 했다. 지회장 P씨는 다른 피해 여성위원에게 자기가 임원으로 있던 포스코에서는 아무런 문제될 말도 아니었는데 왜 유난이냐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 위원(당연히 청년위원 모임 자리에 없었다)은 나에게 “리나씨, 기쁨조란 말이 문제야? 우리 세대들은 다 그냥 농담처럼 하는 말이고 칭찬처럼도 하는데~ 지회장님도 리나씨가 예쁘고 잘하니까 한 말이지~”라고 했다. 여성인 자기도 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고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내게는 ‘같은 여자인 나도 문제 아니라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래?’라는 말로 다가왔다. 머스마 같이 생긴 나에게 그런 불순한 의도로 말을 했겠냐는 말도 들었다. 그런 “불순한 의도의 말”을 듣는데도 조건이 따라붙는 모양이다.


지회도 아니고 협의회에  명뿐인 상임위원  A씨는 내게 지회장이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다함께 식사를 하자고 했다. ‘기쁨조사건 전에 벌어졌던 노태우씨 국가장 기간  열린 출범식 이후 진행된 정기회의 자리(무려 국가예산으로 보조되는 자리)에서 술에 취한 지회장이 다른 위원에게 욕설과 함께 의자를 집어 던지려 했던 사건(국가장 체어샷 사건) 등과 함께 엮어 “분열을 획책하려는 무리가 있다 넘어가지 말라는 말과 함께. 기쁨조란 말을 들은 것은 나고, 기쁨조란 말을  것은 지회장 P씨인데  다들  대신 기쁨조란 말을 좋게 받아들이려 애를 쓰는지,  지회장 P 대신 일을 수습하려 드는지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 다른 상임위원 B씨가 국가장 체어샷 사건과 함께 기쁨조 사건에 대해 지회장 P씨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지회장 P씨는 그제서야 상임위원 B씨에게 “앞 뒤 내용이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모욕감을 주는 대화가 아니고 노력하고 고생했다는 표현의 일부”라고 답했다.


기쁨조는 북한 김씨일가로부터 강제 노동과 성착취를 당하며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특정인에 대한 (성적인) 봉사의 목적으로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조직이란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지회장이 다른 위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특정 청년여성위원들을 가리켜 나의 기쁨조라고 지칭한 것이 정말 그 여성위원들의 아버지가 감사히 여기고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일인가? 더군다나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 그것도 평화통일을 목표로 한다는 조직에서 어떻게 같은 조직 내 여성위원들을 ‘기쁨조’라 부르고 그것이 노고를 치하하는 표현이 될 수 있나?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사람이 대통령 위촉장을 받아 대통령 자문위원이라 그러고 다니며 지회의 장까지 맡아 교민 주요 단체장으로 대접 받아도 되는 것인가?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모욕감을 주는 말인지 아닌지 여부도 말을 뱉은 지회장 P씨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이 판단할 문제다. 지회장 P씨가 이것이 정녕 노력하고 고생한 것에 대한 칭찬과 고마움의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성인지감수성은 물론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서의 자격과 자질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문제 아닌가. 지회장 P씨는 하여튼 그런 것이니까 “이해를 바란다”고 했다. 여전히 사과조차 받지 못한 당사자들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 상임위원 B씨에게.


이달 중순, 그러니까 올해 3월 중순 상임위원 B씨와 다른 위원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상임위원 B씨는 사무처(본부)에 내가 관련해 기사를 낼 것 같다고 언질을 줬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사무처에서 협의회장에게 연락을 했고 협의회장이 부랴부랴 지회에 연락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전에도 그랬듯 몇몇 위원이 직간접적으로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내가 기쁨조라 불렸을 때 부적절한 표현이라 느꼈고 모욕감을 느꼈는지. 왜 그것이 칭찬이나 고마움을 나타낼 때 쓸 표현이 아닌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지. 왜 나만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설명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그날을 수도 없이 다시 떠올리고 곱씹어야 하는지. 그날그날 바로 기록을 해둬서 똑같은 이야길 반복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해도 수개월 내내 그 사건을 계속 반복적으로, 주기적으로 떠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고 밤잠을 설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멀쩡히, 즐겁게 유지해보려 애쓰는 것 역시도.


쨌든 본부와 협의회장이 뭐라 한 모양인지 지회장 P씨가 다른 위원들에게 여기저기 전화를 했단다. 같은 피해 여성위원에게도 전화를 해 나는 그날 일이 잘 기억이 안난다 무슨 일이 있었냐, 어디 너는 그날 일을 제대로 기억하느냐 라는 식으로 물었다. 진술을 받으려 취조하는 식으로 물었다는 느낌이었다. 해당 위원이 자신도 부적절한 발언이라 느꼈다는 말에 어쨌든 그렇게 느꼈다니 미안하다는 식으로 지회장 P씨는 사과를 했단다. 통화 내용을 들으며 나는 나를 몰아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위원들에게 전화는 해도 내게는 전화가 없었다. 피해 여성위원에게도 그건 아무 문제가 없는 표현이다 란 점을 세뇌시키고 싶은가? 내가 받은 느낌은 그렇다. 아, 지회장 P씨는 되려 자기가 불쾌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내가 자신을 멈춰 세우고 대뜸 사과하라고 하니 아주 불쾌했단다…그럼 우리는?


그후에 지회장 P씨는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이미 본부에서 연락이 갔고, 그래서 다른 위원들에게도 전화를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몇 개월 전 일을, 그간 아무런 사과도 없다가 왜 이제서야 이러시느냐 물었다. 당연히 본부 얘기는 하지 않고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우선은 알았다고 답하고 끊었다.


기쁨조 사건 이후 간사팀이었던 내가 점점 업무에서 확실히 배제되고 있단 느낌을 받았지만 이것은 굳이 부연하지 않겠다. 어쨌든 지회장 P씨의 말대로 “지회장의 권한과 결정”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간사팀에서 나가고 일반 평위원으로 돌아가면 되는” 문제니까. 나도 이미 “분열을 획책하려는 무리”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정작 국가장 체어샷·기쁨조와 예산안 협의 등 자잘한 문제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비(非)민주폭력분열자문회의’가 됐고, 자문위원들이 그렇게 자조하고 있어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럴 조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월 중순, 그렇게 사과답지 않은 사과 이후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지회장 P씨는 여전히 지회장이다. 기자 신분으로 민주평통 사무처 공보에게 전화를 했다.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있는지,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는지, 이런 사건에 대한 본부의 판단이나 입장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주무관은 공보 담당자가 교육 중이라 답했다. 그럼 공보 과장에게 전화를 할까요 되물었다. 자신에게 말하면 공보과장(책임자)에게 전달하겠다고 해 다시 한번 정리해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사무처에서 전화가 왔다. 나를 “위원님”이라 불렀다. 베트남협의회 담당 사무관이었다. 기자 신분으로 공보에게 연락을 했는데 위원 담당자가 위원님이라 부르며 전화를 하는 것이 무슨 상황이지 싶었고 이 점도 얘기했다. 기쁨조 건은 사무처에서도 3월 중순에 인지하고 협의회장 등에게 연락해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하라고 얘길 했단다. 그리고 나선 사실 정확한 상황은 잘 모르니 상황을 들을 수 있겠냐고 했다.


민주평통 사무처는 해당 사건을 인지해 놓고도 상황이나 사실 파악을 못하고, 안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내가 그나마 기자 신분이라 취재로 연락하니 그제서야 나를 붙잡고 상황청취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취재를 하는 것인가 사무처가 나를 취재를 하는 것인가. 사건을 인지했으면 바로 연락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자 신분으로 공보한테 연락을 했는데 공보가 회신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 사무관이 위원님~하며 전화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아닌가.


사무처는 지회장 P씨에 진심어린 사과를 하라고 우선 얘기를 했고, 사과를 했다고 연락을 받았고 여튼 내부적으로 (후속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내게는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통화한 사무관도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고 이럴 줄도 몰랐을 것이고, 사무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사무관 개인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요구사항을 묻는 것이 맞나? 요구는 사무처에서 문제를 처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서 지회와 협의회에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늘 당한 사람들이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같은 말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


아직 사회경험도 없고 멋 모르던 시절 이런 질문에 답했다가 “거봐라 그럼 그렇지. 바라는게 있었구나, 작정하고 그랬구나”란 반응을 마주했다. 그 이후 한국경제 논설위원이 내 기자수첩(칼럼)을 표절했을 당시엔 내가 뭘 요구하고 할 게 아니라 먼저 처리하고 대안이나 결과를 가져오셔야 하는 것 아니냐 답했다. 다른 결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나는 한국경제로부터나 해당 논설위원으로부터나 한마디 연락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어린데다 메이져가 아닌 마이너매체 기자이니 기자수첩을 그렇게 베껴가도 된다 생각했을 것이고 그렇게 덮어도 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면전에서 기쁨조란 소리를 듣고 바로 지적했으니 나는 당찬 사람인걸까. 나는 무척이나 소심하다.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산다. 마트나 식당에서 계산이 잘못됐거나 뭐가 빠졌어도 그냥 돌아오거나 금액이 클 경우에나 수십 번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그런 나니까, 평소의 나였으면 기쁨조 소리를 들었어도 멋쩍은 웃음을 짓곤 집에 돌아와 조용히 혼자서 몇 주는 밤잠을 설치고 기분 나빠 했을 것이다. 다만 맞은편 자리에서 흔들리던 눈빛이 너무나 익숙한 듯 테이블 위로 떨어지고 한숨이 나오는 것을 본 순간 그냥 그런 (생에 다신 없을) 용기와 분노가 솟구쳐 얘기한 것이다.


말을 내뱉는 순간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혼자 조용히 설쳤을 밤잠을 지금은 몇 개월째 쿵쾅거리는 심장과 두통(혈압!)을 안고 격렬하게 설치고 있다. 가장 화나는 것은 이러나 저러나 또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란 경험적으로 반복되고 수도 없이 보고 들은 사례들이 주는 무기력함과 나도 여기에 푹 절여졌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또 배우기 위해 대통령 위촉장을 받은 셈일지도 모른다.


기자란 신분을 달고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인데, 이마저도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너무나 뻔히 보인다. 제대로 된 사과나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도 사실은 없다. 그럴 것이었으면 진즉 그랬겠지. 그러니 이런 글이라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글로라도 젊은 여성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싶어서. 기쁨조라는 표현은 남자들끼리는 다 하는 표현이라는 지회장 P씨, 젊은 여성들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당신의 기쁨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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