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적 사고, 버클리의 관념론적 경험론, 흄의 회의적 경험론
근대 인식론의 아버지 로크는 경험을 통해서 대상이 주어지고 또한 대상에 대한 지식도 주어진다는데 착안하여 경험론적 지식이론을 밀고 나아간다. 그런데 로크는 경험이 두 단계로 나누어짐을 알았다.
즉,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이다.
모든 의식 내용은 외적 및 내적 경험이라는 두 가지 원천에서 형성된 산물이다.
a) 외적 경험 <sensation : 감각작용(感覺作用)>
외적 경험 = 지각되는 사물
로크의 외적 경험이란 보통은 우리가 자연이나 사물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본 자연 혹은 사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같은 사물이라도 그것이 그냥 “있다”라고 말하는 방식과 내게 보이는 사물, 지각되는 사물이라고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게 바로 반성적 태도이다.
따라서 이런 감각은 우리가 (나 밖의) 사물이라고 하는 것인데 로크적인 표현으로는 “단순한 관념(감각)을 외부로부터 의식에 도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부의 사물은 감각을 통해서 눈을 통해서 (뇌를 통해서) 우리 마음에 들어온다. 외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사물의 여러 속성을 알 수 있다. 이런 속성에는 외적 경험을 통해서 알려지는 물질의 속성으로는 연장이나 형태, 견고성, 운동, 정지 등의 범주가 있다. 가령 “이 도형은 삼각형이다”에서 삼각형이라는 형태의 범주를 (개념을) 인식한다.
외부적 경험에 의해서 파악되는 물체의 성질들은 '객관적이다'라고 한다. 즉 대상과 인식의 일치가 일어난다.
b) 내적 경험 <reflexion 반성(反省)>
내적 경험이란 의식이 일차적으로 받아들인 관념(감각 혹은 사물)들을 소화하고 정리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흔히 '첫 사람의 추억 같은 것'을 생각하면 반성 혹은 내적 경험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또는 “A와 B는 같다” 혹은 “A는 B보다 키가 작다”라고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A라는 사람에게 “~보다 더 작다”라는 속성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교(Comparison)의 개념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붙이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반성 개념(Reflexionsbegriff)이라고 한다.
비교를 비롯한 내적 경험의 범주에는 인식(지각, 기억, 구별, 비교)과 의욕 등이 있다.
내적 경험 -> ① 인식(지각, 기억, 구별, 비교)
-> ② 의욕
근대 인식론의 아버지인 로크는 위에서 말한 소박실재론의 세계를 철학적, 반성적으로 분석하여 경험적 지식을 추구했다. 그러나 로크는 외부 대상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정신적 해석을 추구했기 때문에 여전히 실재론의 지반 위에 머물고 있다. 그런 만큼 로크의 철학은 상식과 일치된다. 따라서 필자는 로크의 경험론을 실재론적 경험론이라고 명명한다.
버클리 역시 경험론에 근거하여 철학을 한다. 그는 로크의 상식적인 경험론을 좀 더 철저히 밀고 나간다. 즉 로크가 말한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의 구분을 붕괴시킨다. 즉 외부 경험도 내부 경험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내부 경험과 외부 경험의 구분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의 그림들을 보자.
사람은 외부의 존재인 사과를 본다. 그 사과가 통째로 우리 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영상이, 혹은 사과 표면의 빛이 눈으로 들어감으로 해서 보여진다. 그러나 눈동자로 들어간 사과의 영상(빛, 색깔)은 눈의 망막을 지나고 마지막에는 신경을 따라 뇌로 들어가서 우리의 의식에 “저기 빨간 사과가 있다”라고 인지된다. 마치 색이 전파와 디지털 코드로 바뀌어 다시 색으로 변환되는 TV를 연상하면 된다.
원래 3차원의 입체인 사과가 2차원의 스크린 영상으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뇌에서 3차원으로 구현이 된다. 이는 마치 영화나 TV를 보는 이치와 같다.
(C)에서 (A)가 있다고 믿는 것이 로크의 경험론이고 (A)란 것은 없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C)뿐이다라고 하는 것이 버클리의 경험론이다. 이를 관념론이라고 한다. 버클리는 경험론에서 출발했으나 관념론에 도착했다. 이를 버클리는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
Esse est percipi 라는 명제로 요약한다.
버클리 :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
Esse est percipi.
그러면 문제는 모든 사람이 (C)뿐이라면
사람들 상호 간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성직자였던 버클리는 전지전능한 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상을 심어줌으로써 사회생활이 가능해진다라고 엉뚱한 대책을 내놓는다.
즉, 신이 모든 컴퓨터에 같은 이미지 파일이나 칩을 꽂아두기 때문에 컴퓨터(사람)끼리 충돌이 없이 소통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사람들 밖에, “외부세계에 사과가 있다”라고 하면 간단히 끝날 문제이지만 이런 소박한 실재론이 이론적으로는 설명이 더 어렵다.
영화 인셉션의 세계는 버클리의 관념론의 세계와 같다.
꿈속에서 사람들은 엄청 활동적이다. 또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 같다.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내 꿈을 꾸는지 모른다는 경지가
버클리의 관념론적 경험주의이다.
버클리나 그 뒤에 오는 흄 등의 관념론적 경험론이 상당히 건전한 상식과 불일치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첨단 뇌과학의 학설을 보면 상당히 경험론과 비슷한 면이 있다.
가령 뇌 역시 바깥의 사물을 혹은 바깥세상을 있는 대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뇌가 일종의 관제탑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뇌는 계속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즉 사람의 뇌는 의식 독립적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다. 세상은 뇌의 해석을 거쳐서 비로소 인식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UC San Diego) 지각 심리학자(perceptual psychologist)인 Stuart Anstis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가까운 사물을 크게 보는 것도 실은 뇌의 작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빛이 위에서 아래로 오는 것, 그래서 그림자가 물체 아래에서 생기는 것도 뇌의 작용이라고 한다.
“세상은 아마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인식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나’란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내가 되지 않은 세상은 내겐 불투명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인풋(input)’이 아니라 뇌의 해석을 이미 거친 ‘아웃풋(output)’이기 때문이다”. [중앙선데이] 2015.03.29 기사
위의 그림을 보자. 설명처럼 상하의 두 블록은 모두 같은 색이다.
그러나 사람의 뇌는 이를 다른 색으로 보게 만든다. 그림의 설명처럼 두 블록이 서로 만나는 선에 손가락을 놓아보면 이들이 같은 색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첨단 뇌과학은 관념론적인 사고가 옳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은 사물을 정신 독립적인 존재로 혹은 소박-실재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신 혹은 뇌의 통제를 받아서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흄은 역시 로크와 버클리 등 경험주의 철학을 계승한다.
그는 로크와 버클리의 경험론을 종합시킨다. 버클리의 내부 지각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런 한계 내에서도 로크의 이론을 모방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지각이 있다고 한다. 인상과 관념이다. 이는 로크의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에 상응한다.
흄은 “모든 것은 나의 지각이다(Esse est percipi)” 원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좀 더 세분화시킨다. 즉 지각도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지각(경험)은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s)으로 구분된다.
인상이란 확연하게 주어진 지각이고 관념이란 기억이나 환상력에 의하여 얻어지고 인상을 통해서 모사된 흐릿한 지각이다. 즉 인상은 생생하고 관념은 흐릿하다. 인상은 우리가 보고(see) 듣고(hear) 느끼고(feel) 사랑하고(love) 미워하고(hate) 욕망하고(desire) 의지하는(will) 등의 강한 지각이다.
흄은 단순한 관념들이 연합하여 복잡한 관념을 이룬다고 한다.
simple ideas vs complex ideas
이를 관념의 연합(association of ideas)라고 한다. 관념 연합은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즉 유사성의 원칙과 인접성의 원칙과 인과의 원칙이다.
유사성의 원칙(principle of resemblance)은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의 사진을 보고서 그 나무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서의 인접성의 원칙(principle of contiguity)은 우리가 한 아파트를 언급하면 다른 아파트도 토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과의 원칙(principle of cause and effect)이란 우리가 상처를 생각하면 그 뒤에 따라올 고통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이다.
In section III, Hume discusses the connections that exist between ideas, asserting that all ideas are linked to other ideas. Hume lays out three principles by which ideas might be associated: resemblance (where a picture of a tree might make us think of the tree), contiguity in time or place (where mention of one apartment might lead us to discuss others), and cause and effect (where the thought of a wound makes us think of the pain that follows from it).
(인터넷 Sparknote :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이러한 흄의 관념 연구가 가져온 후폭풍은 우선 종래 형이상학의 중요한 개념들, 즉 신이나 실체(영혼, 물질) 등의 실재성을 부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인과율을 부정하게 된다. 즉 태양이(A) 지구를 덥게 한다(B)는 과학적 사실도 엄밀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A)와 (B)가 연결되므로 해서 생기는 강한 인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흄의 회의적 경험론은 종교와 과학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