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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훈 May 26. 2024

비를 기다리며

난 이기적인 놈

접히지 않는 우산을 억지로 구겨서 움켜쥔다. 꽉 쥔 손에 빗물이 뚝뚝 흐른다. 버스가 전후좌우로 흔들린다. 이대로 내릴 때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 놓칠 수 없다. 손에서 흐르기 시작한 빗물이 어느새 바지를 적신다.

버스가 멈춘다. 하차문과 정거장 사이 찰나에서 흠뻑 젖는다. 손과 바지 밑단은 이미 흥건하다. 이젠 어깨와 머리까지 젖었다. 비구름이 오후를 삼켰다. 거리는 이미 한밤중이다. 가로등은 켜지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렸지만 여전히 우산을 움켜쥐고 있다. 서서히 놓는다. 팡하고 펼쳐진다.


우산 위로 빗방울이 부서진다.

그건 물속에서 나누는 대화.

몸을 붙이고 나누는 담뱃불.

젖은 손잡이에 포개지는 손.


전철역으로 내려간다. 젖은 계단을 한 칸씩 천천히 딛는다. 모두들 우산을 가지런히 접는다. 다시 우산을 꼭 움켜쥔다. 화장실 앞에서 남녀가 헤어진다. 남자가 먼저 나온다. 기약 없이 여자를 기다린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와도 그는 여전히 기다린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 화장실 앞에 있자. 젖은 손도, 기다림도 모두 당연한 이곳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움켜쥐고 있을 수 있다. 비가 그치면 우산을 버리자. 여자가 나온다. 남자와 함께 떠난다. 그렇게 몇 쌍을 더 보았다. 우산을 든 사람이 줄어들었다. 움켜쥔 손도 거의 말랐다. 거리로 나온다. 여전히 어둡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다. 얕은 웅덩이에 가로등이 비친다. 첨벙. 일렁인다. 움켜쥔 손을 편다. 팡. 펼쳐진다.

우산이 가로등 빛을 가린다.

얕은 웅덩이 속으로 틴트 묻은 꽁초가 보인다.

다시 한번 첨벙. 일렁인다.

건조한 손으로 우산을 움켜쥔다.


짱유- 솔지 리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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